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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축구결산③] '도쿄까지 간다' 비주류서 국가대표된 '학범슨' 인간승리

작성일: 2018.09.02 09:00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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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김학범 감독 ⓒ연합뉴스
▲ 김학범 감독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한준 기자] 김학범(58)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은 흔히 말하는 비주류다. 성남에 오랫동안 몸담았지만, 감독 직함으로는 꽤 오래 떠돌아다녔다. 국가 대표 감독이 되기엔 충분하지 않은 전력과 이력의 소유자였다.

연령별 대표와 국가 대표 경력이 없는 선수 출신. 명지대와 국민은행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직후 첫 직업은 은행원이었다.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코치로 참가했는데, 이떄의 짧은 이력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감독으로 부임하는 데 도움이 됐다. 

김학범 감독에게 찾아온 기회는, 한국 축구가 위기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다. 2018년 1월 중국에서 열린 AFC U-23 챔피언십에서 부지한 경기력으로 4강에서 탈락한 뒤 비판여론을 이기지 못한 김봉길 전 감독이 경질됐다. 대회가 5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로 평가될 어려운 미션을 맡아야 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 감독이 고사하면서 김학범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김학범 감독은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과 면담에서 이미 23세 이하 대표팀의 경기를 모두 살피고 분석한 결과를 프리젠테이션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늘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한 김학범 감독은, 그 스스로 기회를 얻었고, 결과를 냈다.

김학범 감독은 온전히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은퇴 이후 국민은행 은행원으로 일하며 국민은행 코치로 일했는데, 1997년 IMF 위기로 국민은행 축구단이 해체되어 다시 은행원 생활을 했다. 1998년 성남일화 코치로 일하면서 축구계 중심의 길을 걷는다. 2001년~2003년 이어진 차경복 감독의 K리그 3연속 우승을 지원한 과정에서 김학범 감독의 지도력이 빛났다. 

2004년 차 감독 경질 이후 감독 대행직을 거쳐 정식 감독이 되어 2006년 K리그 우승 및 최우수 감독상을 이뤘다. 이때부터 그의 리더십과 전술 운영 능력을 인정 받아 학범슨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성남에서 성공에도 김학범 감독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중국 허난전예(2010~2011), 강원FC(2012~2013), 성남FC(2014~2016), 광주FC(2017) 등 지원이 부족한 팀, 강등 위기에 놓인 팀에서 위기 상황에 불렀다. 성과도 냈지만 결국 팀의 자체적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떠났다. 

2020년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은 많은 지도자들이 원한 자리다. 하지만 당면한 아시안게임은 목표가 높고, 준비과정에 촉박해 모두가 꺼렸다. 김학범 감독이 금메달을 따지 못할 경우 올림픽 감독을 노리는 이들이 많았다. 김 위원장은 김학범 감독과 도쿄올림픽까지 가고 싶다고 했지만, 아시안게임을 통해 평가받을 것이라고 했다. 김학범 감독은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달성한 과정도 좋았다.

23세 이하 연령대 선수들의 프로 출전 기회 문제, 풀백 자원의 부족 등 불균형 속에 스리백 전략을 구상했다가 대회 기간 중 포백으로 전환해 위기를 극복했다. 말레이시아전 패배, 키르기스스탄전 졸전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 우승후보를 연파한 뒤 우승했다. 논란이 된 와일드카드 황의조는 대회 9득점으로 인맥논란을 일축했다. 

김학범 감독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태극마크를 유지한다. 항상 심판대 위에서 단기 성적을 내야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할 수 있었던 김학범 감독에게 적지 않은 준비 시간이 주어졌다. 2년 더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일하게 된 김학범 감독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전성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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