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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의 작전판] 김학범 金 플랜 복기: 리스크를 극복한 '모험'

작성일: 2018.09.03 06:00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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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범 감독의 아시안게임 대비 계획은 모험적이었지만 치밀했다 ⓒ연합뉴스
▲ 김학범 감독이 20인 엔트리 발표 당시 공개했던 플랜A. 대회 기간 중 4-3-3 포메이션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득점을 못 해서 진 적은 있어도 실점을 많이 해서 진 적은 없다.” (김학범 감독)

지난 7월 16일 축구회관에서 열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20인 엔트리를 발표하던 현장. 김학범 감독의 선택에 밀도와 균형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역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로 전체적인 중심을 잡아줄 수비수 혹은 미드필더가 빠짐없이 선발되었는데, 황의조와 손흥민 등 두 명의 공격수와 골키퍼 조현우를 택했다. 

공격수 포지션에 23세 이하로 월드컵에 다녀온 황희찬, 이승우를 선발했고, 골키퍼 포지션에는 2018년 AFC U-23 챔피언십에서 호평받은 강현무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포지션을 보강했어야 했지 않냐는 지적이 있었다. 일부 포지션은 K리그에서 꾸준히 경기를 뛴 선수가 아니라 거의 기회를 받지 못한 선수가 뽑혀 축구계 인사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할 때 이광종호는 무실점 우승을 했다. 꾸역꾸역 이겨나갔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여정도 쉽지 않았다. 7경기에서 7골을 내주며 수비는 흔들렸지만 무려 19골을 몰아쳤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승했다. 선수 풀이 다르고, 준비 과정이 달랐고, 리스크에 대처하는 김학범 감독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 선방 조현우, 캡친 손흥민, 킬러 황의조, 탁월했던 와일드카드 ⓒ연합뉴스
▲ 바레인전 포진도 ⓒ김종래 디자이너


◆ 20인 엔트리 발표 현장의 논란, 김학범의 설명이 ‘적중했다’

김학범호 20인은 공격진이 풍부하고, 묵직하지만, 중원과 수비진이 헐겁다는 불균형이 지적됐다. 이는 아시아에서 강호인 한국이 공격에 집중하다 역습 한방에 일격을 당할 수 있다는 구조적 우려로 이어졌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가 독일을 이겼던 경기 형태는, 아시아 무대에서 우리가 독일의 처지로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인을 높이고 정상적인 경기를 한 바레인을 6-0으로 잡았지만, 철저하게 수비하고 역습 자세를 취한 말레이시아에 1-2로 졌고, 키르기스스탄에 1-0으로 간신히 이겼다. 일본과 결승전도 상대가 수비에 집중하면서 어려운 경기가 됐다.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 정면 승부를 건 팀들을 상대로 득점이 수월했다.

기자가 명단 발표 현장에서 김학범 감독과 수비를 전담한 이민성 코치에게 물은 것도 그것이었다.

“공격과 비교하면 수비가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 월드컵에서도 강호가 역습에 고전하곤 했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선 그런 팀이 될 텐데?”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상대 역습에 대비해 중원에 수비력을 갖춘 자원을 뽑고, 수비 라인에도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베테랑을 뽑아 대비할 수 있다. 김학범호의 생각은 달랐다. 압도적인 강공으로 득점해 상대가 내려설 상황 자체를 주지 말자. 혹은 상대가 내려서더라도 부술 수 있는 공격력을 갖추자. 어설프게 수비까지 고려하다 화력을 둔화시키는 게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당시 질문에 이민성 코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우리도 스리백을 쓴다. 감독님이 요구하는 스리백은 공격적인 스리백이다. 앞선에서 공격수들이 수비 적극 해주는 걸 원하고, 역습 상황도 앞에서 수비를 적극적으로 한다. 뒤에는 스피드 있는 선수 김민재, 황현수의 수비가 좋다. 역습을 당하는 것은 많이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앞쪽에서, 공격 쪽에 더 주문을 해서 프레싱을 가하고, 거기서 끊는 걸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즉, 상대 역습에 대비해 뒤에 무게를 두기보다, 강공을 택한 공격수들에게 전방 압박과 역습 루트의 사전 차단에 더 공을 들이겠다는 것이다.

김학범 감독의 답도 그랬다. 

“우리가 역대로 아시안게임을 보면 큰 점수 차로 진 적은 없다. 득점을 못 해서 진 적은 있어도 실점 많이 해서 진 적은 없다. 0-1로 지거나, 승부차기로 지거나. 제일 우려하는 건 그 부분이다. 월드컵에서 봤지만 점유율 축구는 이제 필요가 없다. 크로아티아가 (프랑스와 결승전에) 전체적으로 보면 전반전 7대3, 후반전 6대4 경기를 했는데 그게 필요 없었다. 제일 우려하는 게 그 부분을 줄이는 것이다.  코칭스태프에 준비하는 부분도 그 부분을 어떻게 저지하고 막을 것이냐, 그런 부분이 제일 중점적으로 준비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 감독의 말은, 한국이 공을 점유하는 상황이 많겠지만, 의미가 없고, 점유한 상황에서 득점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러려면 공격 옵션을 늘리고, 다채롭게 둬야 한다. 양발 슈팅이 가능한 황의조, 설명이 필요 없는 손흥민, 돌파력이 좋은 황희찬, 번뜩이는 돌파와 한 방을 갖춘 이승우에 부지런한 움직임과 결정력을 갖춘 나상호 등 공격수를 많이 뽑은 것은 그래서다.

▲ 10번을 달고 활약한 황인범 ⓒ연합뉴스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도 패스 능력을 높이 샀다. 황인범은 플레이메이커, 장윤호도 공격 줄기를 만드는 선수다. 이진현도 왼발 킥이 강점인 공격형 미드필더이며, 김정민도 중앙 미드필더지만 볼 소유와 패스 플레이를 즐기는 유형이다. 이승모는 센터백을 오가는 선수지만 역시 그가 즐기는 플레이도 스루패스 등 공격 작업이다. 센터백 포지션까지 고려한 김건웅도 공격력을 갖춘 미드필더다. 김 감독은 미드필더 포지션에 수비 전문가를 뽑지 않았다. 

명단 발표 현장에서 3-5-2 포메이션이 플랜A라고 밑그림을 그렸는데, 사실 전문 풀백을 뽑지 않은 상태라 5명의 미드필더를 두는 형태였다. 

김 감독은 중원과 전방 자원을 많이 두는 대신, 선방 능력이 확실한 조현우를 뽑아 리스크에 대비했다. “사실 조현우 선수를 선발한 배경이 거기에 있다”며 조현우의 슈퍼세이브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먹을 수 있는 슈팅을 막아낼 수 있는 슈퍼세이브 능력은, 아시안게임에서 우리가 확실히 실점할 위기를 많이 내주지 않으리란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조현우의 월드컵 선방은, 우리가 전반적으로 선수비 후역습 자세를 취할 때 빛나서 우려가 있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상대 역습으로 배후가 열린 상황에서 맞이할 실점 위기에서도 선방이 가능할까 우려됐다. 아무리 골키퍼 능력이 뛰어나도 수비가 무너지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조현우는 아시안게임에서 다시금 놀라운 반사 신경과 집중력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 한국은 대회 7경기에서 7골을 내줬는데, 조현우의 실점은 단 두 골이었다. 이 두 골도 부상 회복 이후 치른 베트남, 일본전에 세트피스 상황에 프리킥과 코너킥에 이은 헤더로 내줬다. 조현우의 선방이 한국이 수비 실책과 중원 불안으로 허용한 위기 상황을 실점없이 넘길 수 있는 버팀목이 됐다.

▲ 황의조의 결정력은 '역대급'이었다. ⓒ연합뉴스


◆ 스쿼드 불균형 리스크 노출…황의조 결정력으로 극복했다

경기 내용을 살피자면, 명단에서 우려된 리스크가 대회 기간 노출됐다. 특이 조현우가 부상으로 빠진 우즈베키스탄전의 경우 3실점을 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다. 후반 30분께 우즈베키스탄의 헛발질로 얻은 기회에 황의조의 골로 동점골을 넣지 않았다면 그대로 한국의 여정이 끝날 수 있었다.

황의조의 결정력도 워낙 뛰어났다. 황의조는, 손흥민, 황희찬, 이승우가 조별예선 어느 시점에 합류할지 몰라 선발했다고 설명한 선수였지만, 7경기에 모두 선발로 뛰었고,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확실하고 치명적인 활약을 했다. 7경기에서 9골 1도움으로 10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22개의 슈팅을 시도했는데 이 중 14개가 유효슈팅이었다. 64.3%가 득점으로 연결됐다.

“득점을 못 해서 진 적은 있어도 실점 많이 해서 진 적은 없다”는 김 감독의 설명은, 황의조의 놀라운 결정력이 한국에 승리를 안겼다는 점에서 적중했다. 황의조는 기회가 오면 단호하게 결정했다. 

축구 경기에서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온다. 황의조가 이 기회들을 상대를 정신적으로나 구조적으로 흔들어 놓은 선제골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이 경기를 운영하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조별예선 말레이시아전, 일본과 결승전과 같이 선제 득점이 늦어지면 심리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상대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었다.

▲ 김학범 감독은 황의조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구조를 만들어 지원했다. ⓒ연합뉴스
▲ 우즈벡전 포진도 ⓒ김종래 디자이너


◆ 황의조의 9골은 우연이 아니다…김학범이 준비한 ‘2선 지원 계획’

황의조를 뽑은 것 만으로 화력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황인범이 빠진 베트남과 경기에서 황의조는 여러 차례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침투 기회를 엿봤으나 좋은 패스가 오지 않은 상황이 많았다. 미드필더 황인범, 장윤호, 이진현 등의 패스 능력도 좋았다. 이승모도 실수가 잦았지만 킬러 패스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센터백 김민재, 조유민이 단번에 찔러준 패스로 창출된 기회도 많았다.

손흥민이 2선에서 직접 슈팅보다 패스를 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손흥민은 대회 6경기에 나서 1골 5도움을 기록하며 조력자로 기능했다. 황의조가 고전한 베트남과 준결승에서 이승우가 넣은 선제골은 황희찬이 황의조에게 전달한 과감한 전진 패스가 시발점이었다. 김 감독은 황의조를 뽑은 것뿐 아니라, 황의조에게 좋은 패스를 공급할 선수들과 플레이 구조를 만들었다.

김 감독은 성남FC 시절 지도했던 황의조의 패턴을 잘 알고, 황의조의 플레이를 살려줄 수 있는 선수들을 2선과 3선에 배치해 콤비 플레이를 구축했다. 황의조가 지금껏 못하다 갑자기 각성한 것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도록 팀 플레이를 만든 것도 주효했다. 

감바오사카에서도 패스 능력이 좋은 일본 미드필더의 조력 속에 황의조의 강점인 좋은 위치 선정, 깔끔한 퍼스트 터치, 예리한 슈팅력이 극대화됐다.

우즈벡전, 일본전에 이승우를 투입하며 이승모, 김정민을 빼고 황인범을 뒤로 내려 중원 장악력을 유지하며 2선 창조성을 강화한 계획된 교체 전략도 효과적이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개인 공격력이 잘 구현된 것은 김 감독이 구조를 잘 만든 덕분이기도 하다. 2선에서 이타적 프리롤을 맡은 손흥민의 5도움은 우연이 아니다.

▲ 오른발잡이 윙어 김진야는 레프트백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다 ⓒ연합뉴스
▲ 베트남전 포진도 ⓒ김종래 디자이너


◆ 3-5-2 플랜A 폐기한 김학범, 약점으로 꼽힌 풀백의 성장과 진화

대회 내내 수비는 불안감이 있었고, 김 감독은 결국 조별예선을 마친 뒤에는 4-3-3 포메이션으로 기본 구조를 바꿨다. 공격적 스리백을 포기하고 포백에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배치해 4-2-3-1 포메이션의 형태를 구성했다. 전문 풀백 자원이 없어 준비한 3-5-2 포메이션이었는데, 레프트백 김진야, 라이트백 김문환이 생각보다 좋은 활약을 펼치며, 대회 기간 중 성장해 가능했던 전술 변화다.

오른발잡이인 김진야는 조별예선에서 왼발로 거의 크로스를 올리지 못해 패턴이 읽혔는데, 16강 이후에는 왼발 크로스를 과감하게 시도하며 상대를 현혹했다. 본래 윙어 출신이지만 7경기 모두 풀타임으로 뛰면서 36회의 볼 차단, 15회의 피 파울을 기록하며 투지 넘치는 수비와 영리한 경합 플레이로 왼쪽 측면을 안정적으로 지켰다.

라이트백 김문환도 윙어 출신으로 부산아이파크 입단 후 풀백으로 포지션을 바꾼 선수다. 김문환도 바레인전에 공격적 능력이 돋보이며 주목받았는데 대회를 치르면서 상대 측면 공격수와 힘 싸움과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포백의 풀백으로도 좋은 경기를 했다.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바꾸면서 조별예선에서 두드러진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의 불안정함이 숫자 보강을 통해 보완됐다. 

김 감독은 플랜A에 문제가 생기자 과감하게 수정했다. 자신이 훨씬 더 잘 운영해온 포백 기반 전술을, 경기 사이 사이 촉박한 시간 속에도 선수들에게 잘 이해시켰다. 김 감독의 전술가 면모가 드러난 대목이다. 

▲ 김학범은 자신이 왜 명장인지 증명했다. ⓒ연합뉴스
▲ 김학범 감독은 모험을 걸었고, 성공했다. ⓒ연합뉴스


◆ 5개월 만에 금메달 팀 제조...김학범이 옳았다

축구는 결국 결과론이다. 우즈베키스탄에 2-3으로 지고 탈락했다면, 우려된 리스크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고 지탄받았을 것이다. 김 감독도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느슨해진 우즈베키스탄전이 최대 고비였다고 돌아봤다. 결국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선수들의 강한 동기부여, 이를 끌어낸 김 감독의 리더십, 그리고 위기 극복을 위해 선택한 와일드카드의 특성이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열심히 해줘서 이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지만, 김 감독이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가진 기량을 120% 쏟아낼 수 있게 팀을 운영한 공로가 크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감독 김학범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학범호가 완벽한 팀은 아니었다. 하지만, 리스크가 확실한 상황에서 김 감독은 모험을 해야했다. 그 모험에 논리가 있었고, 결과를 냈다. 

▲ 한일전 선발 포진도 ⓒ김종래 디자이너


김학범 감독은 부임 5개월 만에, 조별 예선을 평가전 삼아 ‘우승팀’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준비되지 않은 팀을 우승시킨 김학범 감독은, 준비된 감독이었다. 김학범 감독의 선택이 옳았고, 기자의 우려가 틀렸다. 한국 대표팀은 금메달을 목에 걸 자격이 있었다. 

도쿄올림픽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시아 무대에서 라이벌이라 할 수있는 이란과 일본은 아예 올림픽을 겨냥한 어린 팀을 참가시키기도 했다. 김학범 감독에게 이제 2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아시안게임과 같은 불균형과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 병역 혜택을 받은 금메달 멤버 대부분은 올림픽 참가가 쉽지 않을 것이다. 김 감독은 새로운 팀을 만들어야 한다. 그가 새로 만들어갈 팀에 보내는 시선은 우려보다 기대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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