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키워드 키워드 기준 i금일 기준 많이 본
뉴스 기사의 키워드 수집

[스포츠타임 영상]배영수 "생각지도 못한 두산 입단 얼떨떨. 감독님 써주시는 대로 나갈 것"

작성일: 2018.12.01 06:00 이재국 기자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배영수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달구벌에서 시작해 한밭을 거쳤고, 이제 서울 잠실벌이다. 한화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현역 최다승 투수 배영수(37)가 두산에 새 둥지를 틀었다. 배영수는 11월 30일 잠실야구장 내 두산 사무실에서 김태룡 단장과 만나 연봉 1억 원 에 입단에 합의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프로 19년간 통산 462경기에 등판해 2122⅓이닝을 던졌다. 137승120패3세이브7홀드, 평균자책점 4.46, 1426탈삼진. 137승은 KBO리그 현역 최다승이자 역대 5위 기록이다.

두산은 “풍부한 경험, 다양한 구종 등 장점이 많아 선발과 불펜에서 쓰임새가 크다고 판단했다”며 영입 이유를 밝혔다. 두산의 젊은 투수들에게도 그의 경험과 관록, 노하우가 전수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억대 연봉으로 마지막 자존심은 세워줬다.

배영수는 이날 사인을 끝낸 뒤 스포티비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두산은 우승권에 있는 팀이다. 두산 외야수들이 대한민국 최고이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는 심적으로 편한 부분이 있다"면서 "보직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다. 내년 시즌 두산 베어스가 우승할 수 있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꼭 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배영수와 일문일답.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소감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얼떨떨하고, 한편으로 되게 기쁘다. 야인생활을 3개월 정도 했는데 직업이 생겨서 기쁘기도 하지만(웃음) 팀이 두산 베어스라서 기쁘다. 두산은 야구를 잘 하는 팀이고, 또 항상 우승권에 있는 팀이다. 타 팀에 있을 때에도 좋은 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됐나.

3일 정도 전에 두산에서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오늘(11월 30일) 최종적으로 사인하게 됐다. 김태룡 단장님을 뵈었는데 '아직 충분히 경쟁력 있고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정말 실력으로 봐주셔서 고마웠다.

-현역 연장에 대한 열망을 계속 가진 이유는?

현역 선수라면 유니폼을 최대한 오래 입고 싶은 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생각하는 부분이다. 또 한 가지는 몸 상태가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현역을 연장하고 싶었다.

-프로 데뷔한 지 20년이다.

몸 상태가 안 되면 당연히 관두는 게 맞다. 나 스스로 봤을 때 '아 여기까지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있을 것 같다. 그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은퇴할 생각이다.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20년 동안 프로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3개월 동안 쉬었는데, 쉬면서 몸 상태가 좋아졌고, 조금씩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몸 상태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게 우리 같은 베테랑들에겐 부상 방지다. 꾸준하게 한 시즌을 치를 수 있는 몸을 만들겠다.

-연봉이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깎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직장인이기 때문에(웃음) 5억원에서 1억원으로 깎여서 아쉽다. 내년에 충분히 잘 해서 그 다음 시즌에 꼭 보상받도록 하겠다.

-한화에서 나온 뒤 소속팀이 없어 불안하거나 다른 기분도 들었을 것 같다.

불안한 건 없었다. 한화 쪽에서도 굉장히 많이 배려해주셨고, 나도 배려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방출이 아니고, 방출이라기보다는 서로 합의 하에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주셔서 불안한 것도 없었고 답답한 것도 없었다.

-두산에 친한 선수나 코치가 있나?

투수 중에는 김강률 선수랑 한 2년 동안 겨울에 일본 돗토리에 가서 개인운동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었고, 김원형 코치님이나 김민재 코치님하고는 팀은 달라도 선수 생활을 같이 했었기 때문에 그런 코치님들하고 알고 있고…. 인성이 형도 있구나. 조인성 코치님도 평소에 잘 챙겨주셨다.

-두산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두산에서는 왜 배영수를 영입했다고 생각하나?

그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는데, 일단은 선발도 가능하고 중간투수 롱릴리프도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보직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다. 감독님이 써주시는 대로 나갈 수 있다. 그런 경험도 있다. 또 후배 선수들에게 조언도 하고 도움도 줄 수 있고, 그런 끈끈함도 있기 때문에 나를 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투수 친화적인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됐는데.

일단 잠실구장에서 좋은 기억이 많다. 한편으로는 두산 외야수들의 수비력이 대한민국 최고이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는 심적으로 굉장히 편한 부분은 있다.

-한때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장원삼이 먼저 잠실 라이벌 LG에 입단했는데.

안 그래도 몇 시간 전에 전화가 와서 통화를 했는데, 장원삼 선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잘 마무리해야할 시점이다. 두 자리 승수 기록하고 둘 다 잘했으면 좋겠다(웃음). 서로 잘 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

-장원삼과 잠실에서 맞대결을 펼친다면?

굉장히 재밌을 것 같고, 나도 두산에 새로 왔기 때문에 꼭 이기도록 하겠다.

-내년 시즌 목표와 현역 최다승 투수로서 선수 생활의 남은 목표는?

내년 시즌 두산 베어스가 우승할 수 있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꼭 하고 싶고, 한 번 더 나 자신한테 이기는 게 목표다. 승수도 그렇고 전혀 개인적인 욕심은 없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한테 이기는 게 최종 목표다.

▲ 배영수 ⓒ두산 베어스
배영수만큼 우여곡절을 겪은 투수도 많지 않다. 2000년 삼성 1차지명을 받고 프로 무대에 뛰어든 그는 이듬해 13승을 거두며 단숨에 영건 에이스로 도약했다. 23세인 2004년엔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하며 17승2패, 평균자책점 2.61의 호성적을 거두고 정규시즌 MVP(최우수선수)에 올랐다. 특히 그해 현대와 맞붙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노런(비공인)을 기록한 장면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국가대표 투수로 참가해 일본의 간판스타 스즈키 이치로의 엉덩이에 공을 던지면서 '배열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였다.

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팔꿈치 인대가 너덜너덜해진 상황에서 에이스의 책임감으로 2006년 한국시리즈 마운드에 올라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수술대에 올라 토미존서저리(팔꿈치인대접합수술)를 받았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재활이 쉽지 않았다. 시속 150㎞ 중반대를 찍던 강력한 구위는 사라지고, 시속 120㎞대까지 떨어진 직구로 1승12패(2009년)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끝없는 내리막길과 추락.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다. 바닥에서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는 일은 더더욱 힘들었지만,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전성기의 구위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지만 시속 140㎞대까지 회복된 직구로 2013년 14승으로 다승왕에 오르면서 힘든 시간을 버틴 보상을 받기도 했다.

2015년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한화로 이적한 배영수는 올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로 풀렸다. 6월 5일 잠실 LG전이 한화 1군 마지막 등판. 이튿날 엔트리에서 제외된 뒤 더 이상 1군에 호출되지 않았다. 리딜딩을 통해 세대교체를 시도하는 한화는 배영수에게 은퇴식을 제안했지만, 배영수는 현역 연장의 의지를 밝혔다. 양 측의 합의 하에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됐다.

차가운 겨울에 길거리로 나앉는 상황이 닥쳐올 수도 있었다. 이때 두산이 손을 내밀었다. 올해 연봉 5억 원을 받던 투수지만 1억 원에 사인했다. 돈 욕심을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공을 던질 수 있는 팀을 원했던 것이었다. 정상과 바닥을 모두 맛봤다. 추락과 부활도 경험해 봤다. 그렇기에 그의 야구인생은 뚝배기처럼 깊은 맛이 우러난다.

배영수는 1981년 5월4일생으로 두산 팀 내에서 현역 두 번째 최고령 선수다. 김승회(1981년 2월 11일생)는 흔히 말하는 '빠른 81년생'으로 나이는 같지만 학교로는 1년 선배다.

남은 선수생활이 길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일까. 배영수는 "선수생활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게 된 것 자체가 고마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