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점 골에 기뻐하는 그리즈만과 메시(오른쪽) ⓒ연합뉴스/AP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축구는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하는 것이다." 지난 시즌 K리그에서 가장 뚜렷한 전술 색을 보여준 강원FC 김병수 감독의 말이다.

축구의 지상 목표는 승리다. 다만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감독의 전술적 지향, 선수 구성, 처한 상황 등에 맞게 전술 혹은 전략을 준비하는 것이다. 모두가 FC바르셀로나처럼 공격적인 경기를 할 순 없고,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이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처럼 수비에 무게를 두는 것을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폴리SSC와 바르사의 맞대결은 축구의 진면목을 보여준 한판이 아니었을까. 나폴리와 바르사는 26일(한국 시간) 이탈리아 나폴리 스타디오산파올로에서 열린 2019-2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1-1로 비겼다. 상반된 전략을 들고 나선 두 팀의 경기는 화끈하지 않았지만 분명 흥미로운 경기였다.

◆ 나폴리 10백

"수비적으로 실수를 저지른 점에 실망스럽다. 바르사가 우리를 잘 공략했다. 확실히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다." - 젠나로 가투소 감독(SSC나폴리)

나폴리는 젠나로 가투소 감독이 부임한 뒤 이전보다 분명 수비적인 팀이 되긴 했지만 전방 압박도 병행하는 팀이었다. 하지만 극단적인 수비적 전술을 들고 나섰다.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드리스 메르턴스까지 11명의 선수가 모두 나폴리의 골문 앞에 진을 쳤다. 바르사는 나폴리의 밀집 수비 속에서 공간을 만들지 못했다. 풀백인 주니오르 피르포와 넬송 세메두가 전진하며 측면을 쓰려고 하자, 나폴리는 호세 카예혼과 로렌초 인시녜가 수비를 가담하며 사실상 6백 같은 형태를 꾸리기도 했다.

극단적인 수비의 문제는 공격적으로 나왔다. 공을 빼앗더라도 전방에서 공을 받을 선수가 없었다. 수비에 성공한 뒤 전방으로 연결하더라도 곧장 바르사의 수비진에 공을 내주는 경우가 잦았다. 전술적인 패착이었을까?

▲ 11명 선수 모두가 수비에 나선 나폴리

전반전까진 확실한 성공이었다. 나폴리는 전반전 34%의 낮은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슈팅 수에선 3-2로 앞섰다. 여기에 드리스 메르턴스가 전반 30분 득점하면서 리드도 잡았다. 인내심을 발휘한 덕분이었다. 바르사의 공격을 견디고 또 견뎠고, 바르사가 실수를 저지르길 기다렸다. 피르포의 실수 한 번을 피오트르 지엘린스키는 놓치지 않았고, 메르턴스의 환상적인 감아차기는 골망을 흔들었다.

바르사가 전반전 기록한 유효 슈팅은 0개였다. 후반전 초반까지도 바르사가 공격에서 활로를 찾지 못했다. 나폴리는 분명 바르사의 장점을 제어하는 '수비'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다.

▲ 메르턴스(왼쪽)의 득점에 신이 난 나폴리 ⓒ연합뉴스/EPA

◆ 바르사 점유율 축구

"나폴리는 자신들의 지역 바로 앞에서 10명이 수비했다. 찬스를 만들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내심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꾸준하게 공간을 찾아야 했다." - 키케 세티엔 감독(FC바르셀로나)

바르사의 축구는 '점유율'로 대표된다. 공을 점유한다면 공격 횟수를 늘리고 수비할 시간은 줄일 수 있다는 철학이 팀을 관통한다. 밀집 수비를 펼치는 팀들을 만나더라도, 확률이 떨어지는 롱패스보단 짧은 패스와 움직임으로 세밀하게 풀어가려는 것이 특징이다. 나폴리의 10백을 만났을 때? 이번에도 바르사는 경기 스타일을 유지했다.

나폴리의 수비는 견고했으나 바르사는 계속 공을 좌우로 돌리면서 틈을 엿봤다. 바르사가 시도한 패스는 818개로 430개를 비롯한 나폴리의 거의 2배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후반 12분 찾아온 단 한 번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바르사가 좋아하는 움직임과 패스로 만들어낸 득점이었다. 전방에서 아르투로 비달이 후방으로 내려오자, 나폴리 센터백 니콜라 막시모비치가 따라붙었다. 세메두는 벌어진 수비 사이를 노려 침투했다. 세르히오 부스케츠의 패스 한 방에 견고한 나폴리 수비가 무너졌다. 경기 내내 고전했지만 득점만큼은 전형적인 바르사다운 패턴으로 만들어냈다.

인내심은 바르사도 발휘했다. 부정확한 공격 전개는 역습의 빌미를 줄 수 있었다. 점유율을 높일 수 있도록 최대한 세밀하고 정확하게 공격을 전개한다는 철학은 유지됐다. 그리즈만의 득점 이전까지 57분 동안 슈팅 2개만 기록하고 있었지만 절대 방식을 바꾸지 않고 나폴리 수비진의 집중력이 깨지길 기다렸다.

▲ 경기 결과에 아쉬워 한 가투소 감독

◆ 열린 경기로, 나폴리의 전진

1-1로 균형이 맞춰진 순간 나폴리의 전진이 시작됐다. 득점 없이 경기가 유지됐더라도 나폴리의 전진은 후반전 중반부터 전개됐을 가능성이 크다. 나폴리의 홈 경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예측이다. 바르사를 전방부터 압박하기 시작했고 확률이 떨어지는 긴 롱패스를 끊어내면서 역습 기회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로렌초 인시녜도 찬스가 있었고 아르카디우스 밀리크와 피오트르 지엘린스키도 마무리짓지 못했다. 아마도 그 상황을 조금더 잘 활용할 수도 있었다. 카예혼도 마찬가지였다." - 가투소 감독

다만 경기가 끝을 향할수록 나폴리의 역동성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비달의 퇴장 이후에도 나폴리가 전반전 수비에서 보여줬던 에너지는 볼 수 없었다. 점유율을 내주고 수비에 집중했던 전략의 이면엔 큰 체력 소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폴리는 90분 동안 111.7km를 뛴 반면, 바르사는 100.9km만 뛰었다. 마무리에서 여러 차례 아쉬움을 남긴 것 역시 공격수들의 체력 저하와 연관지을 수 있다. 물론 마크 안드레 테어 슈테겐의 선방과 나폴리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 부족도 원인이다. 

나폴리의 전진은 곧 바르사에도 기회였다. 나폴리가 공격으로 무게를 옮기면서 수비 간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바르사는 후반 12분까지 3번의 슈팅을 기록했지만 이후 33분 여 동안 4번의 슈팅을 기록했다. 공격적 기회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몇 차례 역습 기회에서 마무리에 실패한 것은 바르사로서도 아쉬웠을 대목이다.

▲ 변수가 될 비달(왼쪽)의 퇴장 ⓒ연합뉴스/AP

◆ 16강 2차전, 전술의 가치는 결과가 말한다

16강 2차전에서 바뀌는 것은 경기 장소만이 아니다. 우선 바르사가 조금 유리한 위치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원정 골을 기록했기에 0-0으로 경기를 마치면 바르사가 8강에 오른다. 바르사는 조금 더 느긋하게 경기를 할 수 있고, 나폴리로선 마냥 내려앉아서 기다릴 수 없다.

선수 구성도 달라질 것이다. 바르사는 비달과 부스케츠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며, 제라르드 피케 역시 경기 막판 발목을 다쳐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다. 나폴리도 메르턴스를 부상으로 잃으면서 변화가 예상된다. 달라진 선수 구성에 맞춰 감독들은 다른 전략과 전술을 들고 나올 것이다. 

물론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바르사는 선수 구성과 관계 없이 주도권을 쥐려고 할 것이다.

가투소 감독은 "넘어야 할 어려움들은 알고 있다. 헬멧과 갑옷을 살 것이다.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마련할 것이고 다음 경기를 치를 것이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두 팀의 감독은 2차전에서도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꺼내들 것이다. 하지만 전술과 전략의 성공 여부는 오로지 하나가 말할 것이다. '누가 8강에 진출했는가.'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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