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왕조가 숨겨놓은 유산…KBO리그 수놓는 ‘해태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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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에는 우승 트로피만큼이나 쟁쟁한 슈퍼스타들이 많았다. ‘우승 청부사’ 김응룡 감독을 필두로 선동열과 이종범, 김봉연, 김성한, 이순철, 장채근, 조계현, 이강철, 임창용 등이 왕조를 수놓았다. 또, 가을만 되면 유독 강해졌던 김정수와 박철우, 신동수, 송유석 등은 한국시리즈 불패 신화를 뒷받침했다.
이러한 업적을 바탕으로 왕조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해태도 세상의 모든 이치처럼 영원한 제국일 순 없었다. 1990년대 말 IMF 금융위기로 모기업이 어려워지면서 존폐 위기를 맞았다. 왕조를 지탱했던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로 내보내며 명맥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결국 2001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화려한 영광을 뒤로하고 퇴장한 해태 왕조는 그러나 KBO리그 곳곳으로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겼다. 전설 속의 선수들은 이제 지도자와 행정가 등으로 변신해 여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한국시리즈 불패 신화는 후신인 KIA 타이거즈 선수들에게도 전수돼 2009년과 2017년 우승을 낳았다.
해태 왕조의 유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 세대의 DNA를 물려받은 해태 주니어들이 이제 어엿한 주축으로 성장해 KBO리그를 수놓고 있다.

야구인 2세로 먼저 이름을 알린 둘은 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2017년 데뷔한 이정후는 3년 연속 3할 타율을 앞세워 키움은 물론 국가대표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했다. 박세혁 역시 마찬가지. 그간 양의지라는 그늘 아래서 가려져 있던 박세혁은 지난해 주전 안방마님으로 도약한 뒤 통합우승을 이끌면서 야구인 2세 열풍을 선도했다.
그리고 최근 KBO리그에선 또 하나의 해태 주니어가 뒤늦은 등장을 알렸다. 주인공은 ‘이순철 아들’ 이성곤(28·삼성 라이온즈). 2014년 두산에서 데뷔한 뒤 좀처럼 빛을 보지 못하던 이성곤은 26~28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잠재력을 꽃피웠다.
사실상 ‘이성곤 시리즈’로 불려도 될 만큼의 활약이었다. 시작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이성곤은 동료 내야수 박계범이 26일 1차전 도중 허리 통증을 호소하면서 1루수로 급히 투입됐다. 그리고 0-0으로 맞선 6회초 롯데 댄 스트레일리를 상대로 프로 데뷔 후 첫 홈런을 터뜨리면서 이성곤 시리즈의 서막을 알렸다.
활약은 주말 내내 계속됐다. 이성곤은 5번 1루수로 선발출전한 27일 경기에서 2회초 다시 한 번 솔로홈런을 때려내면서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이어 안타와 2루타도 추가해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4번 1루수로 나온 28일 경기에선 1회초 1타점 우전안타를 기록하고 주전 입지를 굳혔다.
1~3차전 내리 선제 타점을 올린 이성곤을 먼발치에서 묵묵히 지켜본 이는 이순철 SBS 해설위원이었다. 이 위원은 28일 스포티비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아들이 7년간 고생을 참 많이 했는데 뜻깊은 홈런을 기록해서 기쁘다. 이 감각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오래 유지하면서 좋은 선수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이성곤은 이번 3연전 활약을 통해 자신 역시 해태 왕조의 자랑스러운 유산임을 증명해냈다. 이정후와 박세혁 그리고 이성곤은 나이는 물론 소속팀과 포지션도 모두 다르지만, 이제 해태 주니어라는 교집합 안에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가게 됐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벌써 20년이 되어 가는 해태 왕조. 영광의 잔상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지만, 해태 왕조의 숨결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머물고 있다.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말이다.
스포티비뉴스=부산, 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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