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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야구여행]박용택, 10가지 이별이야기 #3.오해택

작성일: 2020.10.22 11:00 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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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대 출신 동갑내기 아내가 예술적으로 그려준 남편. 아내 한진영 씨는 오늘날의 박용택이 있기까지 함께한 동반자다. ⓒ박용택 제공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한때 “놀기 좋아하는 선수”라는 오해의 딱지가 붙었던 적이 있다. “재능은 있는데 노력을 안 하니 항상 그 자리에 정체돼 있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적도 있다. LG가 10년 연속 가을잔치에 나가지 못할 때 “멋만 부리는 선수”, “암흑기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외모만 보고 지레짐작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저는 솔직히 말해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야구를 즐기면서 해본 적이 없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남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아버지의 주입식 교육이 저에게 영향을 많이 미쳤던 것 같아요.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도 열이 39도씩 올라가고 몸살감기가 나더라도 연습은 다 하고 집에 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나이에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야구를 즐겼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제 성격 자체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다시 태어나면 야구를 안 해요. 이렇게 노력하면 뭘 해도 잘하지 않겠어요?”

박용택은 자신을 ‘재능형’으로 보는 것도 오해라고 했다. '재능형'보다는 ‘노력형’으로 분류했다.

20대 젊은 날은 바람결에도 물결치는 강물 같은 시절이었다. 노력을 해도 앞이 안 보이고, 벽에 부딪히고, 좌절하고, 눈물짓던 시간들. 그러나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레시피는 결국 ‘땀의 대답’이었고, ‘눈물의 응답’이었다.

▲ 2017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박용택. 그의 패션 감감은 야구계에서 독보적이다. 그래서 오히려 "멋만 부린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LG 트윈스
“아버지는 직업 운동선수가 가져야 할 가치관이 확실한 분이셨죠. 아버지 친구분들 만나서 말씀 들어보면 아버지 같은 노력파는 없었다고 해요. 그런 독종을 못 봤대요. 아버지는 지금도 운동선수는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는다고 믿는 분이죠. 저도 어쩌면 그런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건지 몰라요.”

1편 ‘약속택’에서 설명했듯, 그의 부친 박원근(74) 씨는 실업농구 시절 한국은행에서 명가드로 활약한 농구선수 출신이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선수생활을 30대까지 이어갔다.

신인 시절부터 박용택을 쭉 지켜본 LG 류지현 수석코치는 박용택에 대해 “늘 한결같은 친구”라는 말부터 꺼냈다.

“용택이는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게임도 소홀히 대하는 것을 못 봤어요. 특히 대부분 나이가 들다보면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어디가 뻐근하면 뻐근하다고 훈련하지 않을 핑계를 찾기 마련이잖아요. 박용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자기가 해야 할 훈련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입니다. 후배들에게 훈련부터 지고 싶어 하지 않아요. 야구를 귀하게 대한다고 할까? 그런 자기관리와 꾸준함이 있으니까 이 나이가 되도록 롱런을 하는 것이겠죠.”

▲ 박용택은 어떤 패션이든 소화하는 패셔니스타다. ⓒ곽혜미 기자
박용택을 둘러싼 다른 오해들도 많다. “까칠하다”, “정 없어 보인다”, “자기밖에 모른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만큼 속정이 깊고, 눈물 많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 깊은 선수도 드물다.

일화 하나. 과거 잠실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본 LG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달마아저씨(박제찬 씨)’가 있었다. 어릴 때 사고로 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LG를 뜨겁게 응원한 열성팬. 늘 LG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응원단장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잠실구장 관중석 사이를 뛰어다닌 달마아저씨는 특히 박용택을 좋아했다.

그런데 2014년, 시즌이 한창이던 6월 어느 날에 갑자기 달마아저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박용택은 그 소식을 접하고는 검은 양복까지 갖춰 입고 직접 고인의 빈소로 달려가 조문을 했다. 입관식에도 참석해 “좋은 곳에 가시라”며 자신이 사용하던 배트를 관속에 함께 넣어 마지막 선물을 전해줬다.

▲ 박용택은 과거 잘 웃지 않아 "까칠하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요즘엔 웃음이 헤플 정도로 잘 웃는다. 세월의 흐름 속에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박용택 제공

연말이면 불우이웃에게 연탄을 배달하는 ‘연탄택’. 알게 모르게 선행을 많이 하는 박용택은 KBO 선수 중 지금까지 ‘사랑의 골든글러브’를 두 차례나 받은 유일한 선수다. 야구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착한택’.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은 팬들 덕분”이라며 ‘팬덕택’이라는 별명을 더 좋아한다.

선배들의 은퇴식이나 LG가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때면 늘 우는 남자. 그래서 ‘눈물택’, ‘콧물택’, ‘울보택’이다. 정이 많다는 방증이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 자신에게 붙어 있던 오해의 딱지들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박용택은 이에 대해 “세월 덕에 다행”이라며 웃는다.

“어릴 땐 야구가 잘 안 풀려 스스로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잘 웃지도 못했고요. 그래서 까칠하게 보이고, 정 없어 보이고 그랬는지 모르죠. 그런데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고, 야구도 어느 정도 되기 시작하면서 여유도 조금 생긴 것 같아요. 요즘엔 오히려 웃음이 헤퍼요. 잘 웃죠. 이천웅이 그래요. ‘용택이 형 화내는 것 못 본 것 같다’고. 그러면 고려대 시절 제 ‘따까리’를 했던 후배 정근우가 그래요. ‘니가 이 형 오래 안 봐서 그렇다’고. 모두들 한바탕 웃죠. 이게 요즘 우리 팀 분위기입니다.”

#박용택 #엘지트윈스 #안타왕 #은퇴 #이별이야기

<4편에서 계속>

■ '안타왕' 박용택, 10가지 이별이야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 공평한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에게 또 한 명의 레전드와 작별을 강요하고 있다. 2002년 데뷔해 2020년까지 줄무늬 유니폼 하나만을 입고 19시즌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LG 트윈스 박용택(41). 수많은 기록과 추억을 뒤로 한 채 그는 약속대로 곧 우리 곁을 떠난다. 이제 선수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를 그냥 떠나 보내자니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허전하다. ‘한국의 안타왕’ 박용택이 걸어온 길을 별명에 빗대 은퇴 전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은 2018년 월간중앙 기고문과 기자의 SNS에 올린 글을 현 시점에 맞게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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