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인천 두산전에서 혼신투를 펼친 SSG 김택형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28일 인천 두산전을 끝낸 김택형(25)은 말 그대로 기진맥진했다. 스스로 “힘들다”고 인정하면서 “야구하면서 이런 경기는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이 어떻게 공을 던졌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김택형은 팀이 4-2로 앞선 8회 조기 투입돼 2이닝 동안 48개의 공을 던지며 끝까지 팀 마운드를 책임졌다. 팀 동료들의 실책 등 여러 악재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끝내 1점 리드를 지켰다. 4-3으로 앞선 9회 1사 만루에서 최용제와 박건우를 연속 헛스윙 삼진 처리한 건 백미였다. 

48구 이상 던진 경기는 개인의 경력에서도 제법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경기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팀의 치열한 순위 싸움도 그랬고, 경기 내용부터도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가득했다. 이런 상황에서 없는 힘까지 다 짜냈으니, 피로도는 ‘평소의 48구’와는 비교도 안 됐을 것이다. 

육안으로도 힘들다는 게 느껴졌다. 호흡은 거칠었다. 평소보다 인터벌이 길어졌다. 갈수록 릴리스포인트가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뒤로 밀렸다. 공이 날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밸런스를 찾으려 애썼다. 날리는 공이 있다가도, 어떤 공은 혼이 실려 똑바로 날아갔다. 각각 풀카운트에서 최용제 박건우를 삼진으로 잡아낸 그 패스트볼이 그랬을 것이다. 타자들은 공이 아닌, 기에 눌렸다.

경기의 중요성은 랜더스필드에서 모인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이기면 포스트시즌 진출에 가까워지고, 지면 반대로 탈락에 가까워지는 시즌 최대의 분수령이었다. 그래서 8회에 올라갈 수 있도록 미리 준비했다고 했다. 김택형은 “어떻게 보면 (시즌의) 마지막 경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올라왔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각오는 이 말에 다 담겨져 있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김택형 뿐만이 아니었다. 앞서 6회에 올라온 서진용도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두산의 흐름을 끊었다. 0-2로 뒤진 상황, 더 점수를 허용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서진용이 느꼈을 스트레스는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잦은 등판과 연투, 그리고 멀티이닝 소화로 서진용의 어깨 또한 무거웠을 것이다. 구속도 가장 좋을 때보다 떨어졌다.

그럼에도 서진용은 마운드에서 당당하게 버텼다. 피해가지 않았다. 정면승부를 했고, 결과를 만들어냈다. 기세에서 눌리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결과의 수월성과는 별개로 숨죽여 지켜볼 만한 승부였다. 최근 16경기 째 무실점을 이어 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 6회 결승 투런포를 때린 SSG 한유섬 ⓒ연합뉴스
타자들은 즉각 응답했다. 최고령인 추신수는 적시타를 치고 3루에 들어갈 때 머리부터 몸을 날렸다. 메이저리그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 베테랑조차, 슬라이딩 이후 상황을 파악했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앞만 보고 뛰었다. 한유섬은 이 팽팽한 긴장감을 이겨내는 장쾌한 투런포를 터뜨렸다. 홈런 이후의 세리머니는, 선수들이 이 경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렇게 SSG는 어쩌면 올 시즌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이겼다.

팀이 모토로 삼고 있는 ‘투혼의 랜더스’는 이런 선수의 몸짓에서 관중석의 팬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매일 수십 번도 더 외친 구호지만, 일상적인 관용구와 같았던 이 캐치프레이즈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팬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선수들과 같은 심정으로 싸웠다. 두 손을 모은 채, 공 하나에 박수와 탄식이 이어졌다. 

그리고 김택형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순간, 마치 자신이 김택형이 된듯 숨죽여 지켜보던 1루의 팬들은 본능적인 환호성을 내질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방역 수칙을 지키라고 강요하기 어려웠다. 선수들은 환한 미소로 팬들 앞에 섰다. 응원에 대한 선수들의 감사와, 끝까지 버텨준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감사가 네트를 사이에 두고 교차했다.

코로나19와 별개로 경기 자체가 무기력했던 지난해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기운이었다. 팬들은 관람료의 가치를 기대할 수 없는 경기에 등을 돌렸다. '설마 오늘은' 하다, '역시 오늘도'라며 일찌감치 관중석과 TV 앞을 뜨곤 했다. 원색적인 비난이나 조롱보다 차라리 더 무서운 건 무관심이었다. 2020년의 선수단은 이를 뼈에 사무치게 느꼈다.

그러나 27일과 28일은 완전히 달랐다. SSG가 다시 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기대할 만한 팀이 됐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SSG의 시즌이 어디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28일의 환호는, 2021년이 나쁘지 않게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팀이 됐다는 것은 당장 올 시즌의 성적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팬들은 그렇게 다시 모인다. 2021년의 중요한 스크랩이다. /SSG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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