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의 가능성을 뽐내고 있는 곽빈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왔지만, 방망이를 아무리 휘둘러봐야 타이밍이 늦었다. 28일 인천 두산전 초반, SSG 타자들은 상대 선발의 힘 있는 공에 연신 고개를 젓고 있었다.

곽빈(22·두산)에게 유독 결과를 내지 못했던 SSG가 이 중요한 경기에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섰을 리는 없었다. SSG는 일단 곽빈의 빠른 공에 초점을 맞추고 공격적인 스윙을 가져 나가는 듯했다. 주무기를 힘으로 격파하며 한 번의 찬스에서 끝을 내겠다는 심산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곽빈의 공은 SSG 타자들이 준비했던 것 이상으로 힘이 있었다.

비록 2-0으로 앞선 6회 선두 최지훈에게 볼넷을 내준 것에 이어 추신수에게 우중간 3루타를 맞은 뒤 강판됐지만, 곽빈의 투구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최고 151㎞의 빠른 공을 앞세운 곽빈은 패기 있는 공을 던졌다. 다양한 레퍼토리보다는 자신의 공을 믿고 정면 승부를 즐겼다. 그 승부는 5회까지 완벽하게 통했다.

배명고를 졸업하고 2018년 두산의 1차 지명을 받은 곽빈은 2019년과 2020년 단 한 경기에도 뛰지 못했다. 고교 시절부터 너무 무리한 팔꿈치가 문제였다. 돌아오니 제구가 들쭉날쭉했다. 곽빈의 이름 앞에는 항상 ‘부상’과 ‘제구’라는 꼬리표가 달라붙었다. 실제 올 시즌 성적도 제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98⅔이닝에서 내준 볼넷만 79개였다.

그러나 28일은 분명 달랐다. 볼이 되더라도 스트라이크존에서 크게 벗어나는 공이 많지 않았다. 대다수는 공 1개 정도에서 놀았다. 제구가 흔들리면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이날은 SSG 타자들에게 그런 선택지조차 주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다 유리한 카운트를 잡으면 결정구로 강속구를 던지며 헛방망이를 이끌었다. 구속 이상의 묵직한 대포알이었다.

이영하 유희관 등 기대를 걸었던 선발투수들이 난조를 보인 가운데 곽빈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다. 우선 성공적으로 재활을 마쳤고, 다시 1군에서 100이닝을 소화했다는 자체가 고무적이다. 몸 상태에 이상이 없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올해 아주 많이 던진 것은 아닌 만큼, 내년 준비에도 큰 차질은 없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스태미너 문제야 정상적인 시즌을 치를수록 나아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호재도 있다. 스트라이크존이 너무 좁다는, 특히 상하로 좁다는 평가를 받는 KBO는 내년부터 존에 손을 대기로 했다. 타자 신장에 따라 선수 개인별 스트라이크존을 철저하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KBO리그 타자들도 예전보다 체구가 커졌다. 상하폭이 넓어지면, 전체적인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존이 넓어지면 모든 투수들이 혜택을 보지만, 힘 있는 하이패스트볼이 장점인 곽빈의 투구는 더 위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예전 같았으면 안 나갔을 정도의 높이에 타자들이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제구가 문제였던 곽빈이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을 확인한 순간, 더 편안하게 공을 뿌릴 수도 있다. 이런 안정감 속에서 제구를 차츰 잡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두산이 곽빈에 대한 내년 행복회로를 돌려도 괜찮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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