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상화 칼럼니스트]주: 약간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구독자들이 애타게 기다려온 넷플릭스 '더 글로리' 파트2 (극본 김은속, 연출 안길호)가 드디어 공개되었다. 지난 10일 총 8편의 이야기를 보기 위해 일시에 접속자가 몰려 에러 메시지와 더불어 한때 정상 재생이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사람들은 두달여 동안 이야기의 결말을 만나기 위해 목마름 속에 이날만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표물로 향하는 과정에 대한 호불호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이것 만큼은 확실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결말로 완성되었다. 바로 '권선징악'. 파트2에 이르러 '더 글로리' 속 인물과 사건들은 거미줄 마냥 얽히면서 끝내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때론 위험 천만한 위기가 문동은(송혜교)에게 찾아오지만 그대로 물러설 주인공이 결코 아니었다.
파트1에서 조금씩 뿌려졌던 김은숙 작가의 떡밥은 하나 둘씩 수거가 이뤄졌다. "이 사람이 왜 나왔을까?"라는 의구심들은 파트2의 9~16편의 전개와 더불어 풀리기 시작했다. 총 7시간 반 가량의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잠시도 플레이 버튼을 멈출 수 없게 만들면서 '더 글로리'는 잔혹한 학교 폭력에 분노하던 시청자들의 기대를 100% 충족시켜줬다.
◆ "기어이 여는구나, 상자를..."(연진)
은밀하게 숨겨왔던 박연진(임지연)의 비밀은 이제 남편 하도영(정성일)도 알게 되었다. 적어도 연진에겐 그간의 잘못을 빌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최소한의 죄의식 마저 망각한 연진의 앞에는 이제 가시밭길만이 남았다. 조금씩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동은을 향해 반격을 시작하지만...
연진과 더불어 폭력을 일삼던 이사라(김히어라), 전재준(박성훈), 최혜정(차주영) 사이의 관계는 이미 금이 간지 오래였다. 거칠 것 없던 그들에게 남은 건 생존, 그리고 배신 뿐이었다. 애초부터 서로에 대한 믿음없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재미 속에 살아왔던 집단의 우정은 그저 모래알에 불과했다.
내가 살기 위해선 너를 짓밟아야 하는 생존 게임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따름이었다. 그 주위를 둘러싼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식의 잘못을 덮어두기에 급급했던 연진의 엄마, 사라의 부모 등도 자식과 더불어 심판의 대상이 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복수심 하나만으로 살아온 건 동은 뿐만이 아니었다. 연쇄 살인마에게 아버지를 잃은 주여정(이도현), 폭력 남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강현남(염혜란), 연진과 그 일당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윤소희의 엄마, 그리고 아내의 실체를 확인한 하도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정은 제각기 달랐지만 그들이 원했던 결과를 얻으면서 '더 글로리'는 기나긴 총 16부작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 "판은 내가 깔았지만 폐허는 스스로가 만들었고..." (동은)
동은에게 집중되었던 파트1의 이야기는 파트2에 돌입하자 마치 세포 분열을 일으키듯 다양한 인물들의 갈등을 극한으로 끌어 올린다. 덕분에 잠시도 화면에서 우리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선공개 영상과 예고편 등을 통해 구독자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동은의 엄마(박지아), 현남의 남편(류성현) 등이 새로운 갈등과 위협을 야기하는 존재로 모습을 드러낸다.
연진 패거리와는 또 다른 댓가를 치뤄야 하는 캐릭터들은 극중 인물간 연결 고리 역할을 하면서 예측불허 속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준다. 김은숙 작가의 치밀한 설계에 힘입어 잠깐의 등장임에도 불구하고 얽히고 섥힌 악인들의 단죄를 위한 기폭제로 쓰여진다. 복수를 위한 밑그림은 분명 동은이 그려냈지만 벌을 내리기 위한 지옥불은 그들 스스로가 만든 셈이었다.
옥죄어 왔던 모든 굴레에서 끝내 벗어난 동은이었지만 지난 18년 동안 그녀에겐 자신의 삶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원했던 복수극이 완성된 순간 찾아온 허무함이 지찻 동은 자신을 망가 뜨릴 수 있는 위험요소이기도 했다. 이때 뜻밖의 인물이 동은의 손을 붙잡았고 세상 사람들이 지켜주지 못했던 어린 소녀의 고통은 뒤늦게나마 치유되고 극복해나간다.
◆ 이 세상 모든 동은이들을 위한 응원
지난해 12월 30일 '더 글로리' 파트 1의 공개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잠시 주춤했던 넷플릭스의 인기를 되살렸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학교 폭력의 무자비함을 상기시켜줬다. 동시에 2023년 현실세계 속 박연진을 벌하기 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터져 나온 것이다. 최근 쏟아지는 기사에서 소개된 것처럼 '더 글로리'는 피해자가 숨어지내고 가해자는 버젓히 명문대 진학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세태에도 경종을 울렸다.
그리고 '더 글로리'에는 더 나아가 그동안 비겁하게 외면했던 주변의 동은이들을 위한 응원이 담겨 있었다. 자칫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순간 "그를 붙잡아준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면?" 같은 반성의 심정을 갖게 만들었다. 김은숙 작가의 변신과 더불어 고뇌가 담긴 '더 글로리'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드라미의 재미 이상으로 많은 의미를 던져줬다. 그리고 숨 죽여 진행해왔던 18년에 걸친 복수극을 꽉 닫힌 결말로 매듭짓는다.
"봄에 죽자는 말은...봄에 피자는 말이었다는걸요"
마지막 16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동은은 싼 값으로 집을 내줬던 빌라 주인 할머니(손숙)에게 편지 한장을 남겼다. 거기엔 위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는 처절하게 짓밟히고 아무도 손 내밀어주지 않았을때 서로의 위안이 되어준 사람임을 뒤늦게 알게 된 동은과 할머니의 진심이기도 했다. 끝까지 버텨 봄 기운과 더불어 만개한 꽃들처럼 세상의 모든 동은이들도 이제 활짝 피어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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