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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 리우 올림픽 불참' 美 남자 농구, 그리운 '드림팀의 기억'

작성일: 2016.06.24 17:34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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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드림팀Ⅲ' 멤버였던 샤킬 오닐, 그랜트 힐, 앤퍼니 하더웨이(왼쪽부터) ⓒ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제임스 하든, 앤서니 데이비스, 크리스 폴, 스테픈 커리에 이어 르브론 제임스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나서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의 '드림팀 구성'이 요원해졌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진정한 드림팀이 이뤄졌던 적은 없다. 2000년대 들어 올림픽은 미국 프로 농구(NBA) 선수들의 구미를 당기는 대회로서 매력을 많이 잃었다.

그러나 농구 팬들은 여전히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의 소식을 궁금해 한다. 1990년대를 뜨겁게 달궜던 드림팀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 올림픽 역사상 가장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것으로 평가 받는 '드림팀Ⅰ·Ⅱ·Ⅲ'의 자취를 간략하게 살펴봤다. 전 세계 농구 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역대 최강 미국 대표팀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미국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드림팀' 첫선을 보였다. 프로 농구 선수의 올림픽 출전이 허용된 뒤 처음 구성한 당시 대표팀은 농구 역사상 가장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필두로 수많은 스타플레이어가 미국의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뛰었다.

존 스톡턴과 매직 존슨이 포인트가드를 맡아 경기 운영을 책임졌고 클라이드 드렉슬러, 크리스 멀린이 2~3번 포지션을 오가며 3점 라인 바깥에서 팀 승리를 거들었다. 'NBA 역대 최고의 스몰포워드' 래리 버드와 '불스 왕조 2인자' 스코티 피펜이 공수에서 살림꾼 노릇을 했다. 찰스 바클리와 칼 말론, 크리스찬 레이트너가 전투적인 박스 아웃과 부드러운 포스트업으로 파워포워드 포지션의 선수가 해야 할 플레이를 명확히 보였다. 센터진은 '리그 4대 센터' 가운데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이 차출돼 뛰어난 기량을 펼쳤다.

미국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올림픽 무대를 장악했다. 조별 리그부터 결승까지 8경기 동안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상대 팀들과 평균 점수 차가 무려 43.8점이었다. 척 데일리 대표팀 감독이 대회에서 작전 타임을 한번도 부르지 않았을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 흐름을 보였다. 매직 존슨과 조던이 경기당 평균 22.9점 4.7리바운드 10.3어시스트를 합작하며 미국의 전승 우승을 이끌었다. 바클리는 평균 18점 야투 성공률 71.1%를 올리며 로 포스트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1994년 캐나다에서 열린 FIBA(국제농구연맹) 월드컵에서 '드림팀Ⅱ'가 탄생했다. 샤킬 오닐, 래리 존슨, 숀 켐프, 마크 프라이스, 레지 밀러 등이 주축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4년 전 대표팀에 버금가는 '드림팀Ⅲ'가 구성됐다. 조던과 버드, 매직 존슨 등이 빠졌지만 바클리, 말론, 피펜, 로빈슨, 스톡턴이 2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새 얼굴들도 화려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가 미국의 2연속 금메달을 위해 합류했다. '더 글로브(The glove)' 게리 페이튼이 스톡턴과 함께 1번 포지션을 맡았고 미치 리치먼드, 앤퍼니 하더웨이, 레지 밀러가 슈팅가드로 뛰었다. 이밖에도 그랜트 힐, 하킴 올라주원, 오닐이 새로 들어와 올림픽 무대에서 펄펄 날았다. 미국은 평균 31.8점에 이르는 점수 차로 8전 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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