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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 야구 해설계 큰 별이 졌다

작성일: 2016.09.08 10:42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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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은 2006년 KBO 사무총장 시절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와 포장마차 토크에 참여하는 등 해설 분야 외에도 한국 프로 야구를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고인 오른쪽은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은식 시민기자. 사진 제공/오마이뉴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국내 야구 해설에 큰 획을 그은 하일성 씨가 세상을 떠났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56분쯤 하 씨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서울 삼성동 회사 사무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하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 씨는 아내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작성했지만 보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씨는 최근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아들을 프로 야구단에 입단시켜 달라는 부탁과 함께 5,0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돼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었다.

고인은 김계현 김동엽(이상 작고) 등의 뒤를 이어 1970년대 후반 이후 우리나라 야구 해설에 일가를 이뤘다. 프로 야구 초창기 해설 분야는 KBS 하일성-MBC 허구연으로 양분돼 있었다. KBS는 현직 KBO 사무차장으로 아마추어 실업 야구 시절부터 팬들과 친숙했던 이호헌 씨(작고)가, MBC는 1960년대 부산고~상업은행 시절 명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김소식 씨가 각각 보조 해설자로 활동했다.

고인은 경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친근감 있는 해설로, 허구연 씨는 정통 야구 용어를 앞세운 날카로운 해설로 각각 팬 층을 이루며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KBO 리그가 초창기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리는 데에는 두 해설가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고인은 1949년 2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나 성동고등학교에 다닐 때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 기준으로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뒤늦게 글러브와 배트를 쥐었다. 1967년 경희대학교 체육학과에 야구 특기생으로 입학했지만 곧바로 야구를 그만뒀다. 많은 야구인들이 '야구 선수 하일성'을 기억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고인은 1960년대 후반, 육군 백마부대에서 복무하며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고인은 생전에 자신의 군 생활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경희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뒤에는 경기도 김포 양곡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잊지 못한 아내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서울 환일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체육 교사의 길을 걸었다.

1979년 고인에게 야구 해설을 권유했던 유명 배구 해설 위원 오관영 씨는 고인과 환일고등학교 교사직 선후배 사이였다. 타고난 말재주가 있었던 고인은 TBC(1980년 KBS와 강제 합병돼 KBS2로 이름이 바뀌었다) 라디오로 방송에 입문하자마자 단숨에 인기 해설자로 떠올랐다. 

고인은 부지런히 야구 현장을 누비며 "야구, 모르는 겁니다" 등 야구 팬들의 귀에 쟁쟁한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고인은 2006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는 오랜 기간 몸담았던 해설계를 떠나 제 11대 KBO 사무총장을 맡아 행정적으로 KBO 리그가 발전하는 데 힘을 보탰다. 

고인의 애칭 '하구라'의 구수한 입담을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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