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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금메달 신화, 영웅과 벌써 첫 이별이라니… 김민재 코치 투병 끝 별세, 야구계 충격 빠졌다

작성일: 2026.01.14 19:30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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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올림픽 ‘전승 금메달’ 영웅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하늘로 떠나 야구계가 비통에 잠겼다. 롯데는 “롯데자이언츠 김민재 코치(드림팀 총괄)가 별세하였음을 알려드린다”고 14일 공식 발표했다. 항년 53세.  ⓒ곽혜미 기자
▲ 베이징 올림픽 ‘전승 금메달’ 영웅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하늘로 떠나 야구계가 비통에 잠겼다. 롯데는 “롯데자이언츠 김민재 코치(드림팀 총괄)가 별세하였음을 알려드린다”고 14일 공식 발표했다. 항년 53세.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한국 야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르네상스에 접어들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승 금메달’로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높임은 물론,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로 프로야구 흥행 가도의 발판을 놨다. 당시 멤버들은 여전히 많은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전승 금메달’ 영웅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하늘로 떠나 야구계가 비통에 잠겼다. 롯데는 “롯데자이언츠 김민재 코치(드림팀 총괄)가 별세하였음을 알려드린다”고 14일 공식 발표했다. 항년 53세. 아직 펄펄하게 현장을 누벼야 하는 나이임에도 고인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야구계가 충격에 빠졌다. 김 코치가 몸 담았었던 한 구단 관계자는 “그래도 최근에 건강이 많이 회복됐다고 들어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각 구단 관계자들은 물론, 김 코치와 생전 인연이 있었던 야구계 선·후배들이 서둘러 조문 일정을 잡는 등 하루가 분주하게 지나가고 있다. 한 구단 단장은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말로 착잡한 심정을 대변했다. 

김 코치의 건강 이상설이 들린 것은 2024년이었다. 당시 김 코치는 2024년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인 롯데로 복귀했다. 새로 부임한 김태형 롯데 감독은 김 코치에게 수석 코치를 맡겼다. 롯데라는 팀에 대해 잘 알고, 선수단을 잡는 지도력이 검증된 김 코치가 롯데에 낯선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적임자로 생각했다.

▲ 아직 펄펄하게 현장을 누벼야 하는 나이임에도 고인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야구계가 충격에 빠졌다. 김 코치가 몸 담았었던 한 구단 관계자는 “그래도 최근에 건강이 많이 회복됐다고 들어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롯데 자이언츠
▲ 아직 펄펄하게 현장을 누벼야 하는 나이임에도 고인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야구계가 충격에 빠졌다. 김 코치가 몸 담았었던 한 구단 관계자는 “그래도 최근에 건강이 많이 회복됐다고 들어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롯데 자이언츠

하지만 스프링캠프 당시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고, 급히 귀국해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담낭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수석 코치 몫을 수행할 수 없게 돼 김 코치는 잠시 그라운드를 떠나 치료에만 전념했다. 다만 항암 치료 이후 몸 상태가 점차 회복되자 김 코치는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1·2군을 오가며 후배들과 함께 했다. 

김 코치는 올해도 선수단과 함께 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갑자기 병세가 다시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일종의 합병증이 겹치면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가족도 구단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을 정도로 병세가 급히 악화됐다. 최근까지도 지도자 경력을 의욕적으로 임하고 있던 김 코치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야구계가 충격에 빠진 이유다.

1973년생인 김 코치는 부산중앙초-경남중-부산공고를 나와 1991년 롯데에 입단했다. 고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1991년 1군 무대에 데뷔했고, 1992년에는 83경기에 나가 팀 내 입지를 확장했다. 물론 백업 선수이기는 했지만, 롯데의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기도 했다. 이후 안정된 수비력을 인정받아 유격수와 2루수 등 내야에서 활약하며 롯데의 주축 선수로 거듭났다.

김 코치는 2001년까지 롯데에서 뛰며 부산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모은 선수였다. 타격에서 도드라지는 활약을 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수비에서는 뛰어난 역량을 선보여 꾸준히 주전으로 나갔다. 2001년 시즌 뒤에는 생애 첫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SK와 4년 10억 원(인센티브 미공개)에 계약해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 김민재 코치(오른쪽)는 롯데의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기도 했다. 이후 안정된 수비력을 인정받아 유격수와 2루수 등 내야에서 활약하며 롯데의 주축 선수로 거듭났다. 김 코치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그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선수 명단에 합류하며 오랜 기간 전성기를 누렸다. ⓒ롯데 자이언츠
▲ 김민재 코치(오른쪽)는 롯데의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기도 했다. 이후 안정된 수비력을 인정받아 유격수와 2루수 등 내야에서 활약하며 롯데의 주축 선수로 거듭났다. 김 코치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그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선수 명단에 합류하며 오랜 기간 전성기를 누렸다. ⓒ롯데 자이언츠

김 코치는 SK에서도 주전 선수로 활약했고, 베테랑의 관록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수비력을 인정받아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2006년 시즌을 앞두고는 다시 FA 자격을 얻어 한화와 계약, 개인 두 번째 이적을 하기도 했다.

김 코치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그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선수 명단에 합류하며 오랜 기간 전성기를 누렸다. 화려한 주전 선수는 아니었지만 내야 어느 포지션이든 출전시킬 수 있는 활용성을 바탕으로 주전 선수들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는 베테랑으로 선수단 무게중심을 잡는 등 그라운드 외에서도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코치는 KBO리그 1군 통산 2113경기에 나갔다. 2025년 기준으로 KBO리그 역대 1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김 코치보다 더 많은 경기에 나간 선수는 강민호 최정 최형우 박용택 정성훈 김현수 황재균 손아섭 이진영 양준혁 박한이까지 11명에 불과하다. 통산 타율은 0.247, 통산 출루율은 0.309, 통산 장타율은 0.331을 기록했고 2113경기에서 친 홈런은 71개로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공격력을 빼어난 수비력과 활용성으로 만회했으며, 무엇보다 성실한 자기 관리로 매 시즌 많은 경기에 나서며 코칭스태프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다. 김 코치는 1995년 122경기에 나간 뒤 현역 은퇴 시즌인 2009년까지 15년 연속 100경기 이상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성적의 기복은 다소 있었을지 모르지만, 몸 상태의 기복은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완벽주의자이기도 했다.

▲ 김 코치는 KBO리그 1군 통산 2113경기에 나갔다. 2025년 기준으로 KBO리그 역대 1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김 코치는 1995년 122경기에 나간 뒤 현역 은퇴 시즌인 2009년까지 15년 연속 100경기 이상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곽혜미 기자
▲ 김 코치는 KBO리그 1군 통산 2113경기에 나갔다. 2025년 기준으로 KBO리그 역대 1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김 코치는 1995년 122경기에 나간 뒤 현역 은퇴 시즌인 2009년까지 15년 연속 100경기 이상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곽혜미 기자

김 코치는 2009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고졸 신인으로 입단해 철저한 자기 관리로 36세까지 현역 생활을 했고, 그 경험을 자양분 삼아 지도자로서도 좋은 역량을 보여줬다. 특히 자신의 현역 시절 장점이었던 수비와 작전에서 큰 강점을 가진 지도자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0년 한화의 1군 수비·작전 코치를 시작으로 2013년에는 두산의 1군 수비 코치를 맡았으며, 2014년에는 KT의 수비 코치를 거쳐 2017년에는 친정팀 롯데의 1군 수비 코치로 부임하기도 했다.

이후 두산의 1군 작전 코치를 거쳐 2021년에는 SSG로 자리를 옮겨 김원형 현 두산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2022년에는 1군 수석 코치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2023년까지 SSG에서 지도자 경력을 이어 간 김 코치는 2024년 시즌을 앞두고 다시 친정팀 롯데로 가 왕성한 지도자 생활을 했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한 끝에 많은 이들을 슬프게 했다.

김 코치는 카리스마와 열정을 모두 갖춘 지도자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지도자였고,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직접 시연을 보이며 주위를 감동케 했다. 현역 시절부터 후배들에게 엄할 때는 엄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는 등 인기가 많은 야구인이기도 했다. 실제 김 코치는 1991년 프로 데뷔 후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하며 휴식 시간이 없는 야구인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그만큼 항상 많은 이들이 찾는 야구인이었고, 그래서 야구계의 슬픔은 더 크다.

▲ 김 코치는 1991년 프로 데뷔 후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하며 휴식 시간이 없는 야구인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그만큼 항상 많은 이들이 찾는 야구인이었고, 그래서 야구계의 슬픔은 더 크다. ⓒSSG랜더스
▲ 김 코치는 1991년 프로 데뷔 후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하며 휴식 시간이 없는 야구인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그만큼 항상 많은 이들이 찾는 야구인이었고, 그래서 야구계의 슬픔은 더 크다. ⓒSSG랜더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 중 가장 먼저 하늘로 떠났고, 롯데의 1992년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엔트리에 포함됐던 선수로는 6번째로 세상을 떠났다. 김 코치의 빈소는 부산시민장례식장 40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26년 1월 16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영락공원이다.

김 코치의 친정팀이자, 마지막 소속 구단이기도 한 롯데는 구단 SNS를 통해 “롯데의 영원한 거인, 김민재 코치님을 기억하며.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신 뜨거운 열정과 선수들을 향한 진심 어린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었던 만큼 롯데는 김민재 코치의 장례 절차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선수단은 오는 15일 조문에 나설 예정이며, 야구계 인사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 중 가장 먼저 하늘로 떠났고 김 코치의 빈소는 부산시민장례식장 40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26년 1월 16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영락공원이다. ⓒSSG랜더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 중 가장 먼저 하늘로 떠났고 김 코치의 빈소는 부산시민장례식장 40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26년 1월 16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영락공원이다. ⓒSSG랜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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