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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일 칼럼] D-4 함서희, 세 번의 눈물과 네 번째 고비

작성일: 2016.11.23 06:40 고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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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서희는 최근 머리를 짧게 잘랐다. ⓒ한희재 기자
◆ 두 번의 충격

격투 스포츠 전문 기자로 지금껏 많은 선수들을 취재하고 만나 왔다. 그 가운데서 함서희(29, 부산 팀 매드/㈜성안세이브)와 첫 만남은 손에 꼽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난 함서희의 종합격투기 활동 초기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함서희를 만나기 전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몰랐다.

함서희를 처음 만났던 날, 두 번의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2008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사진 촬영이 주 업무였던 나는 이교덕 선배를 따라 함서희의 인터뷰를 따라나섰다. 홍대 앞 놀이터에서 함서희를 만나자마자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이 여자아이가 선수가 맞아?' 함서희는 내가 생각하던 여성 파이터의 외모와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바가지 머리(?)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앳된 외모, 이상하게 생긴 가방, 바지인지 치마인지 헛갈리는 하의 등 옷차림. 키는 아담했고 목소리 역시 소녀 같았다. 어디를 봐도 파이터의 분위기는 단 1%도 느끼지 못했다. 길거리 어묵까지 먹으니 동네 꼬마(?)가 따로 없었다. 중학생이라 해도 믿었을지 모른다.

인터뷰 후 사무실로 돌아와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링에서 화끈하게 싸우는 선수라는 평판이 자자하고 했지만, '그래봐야 여자 아니겠어' 하는 마음으로 경기 동영상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일종의 선입견이 있었다.

난 다시 충격에 빠졌다. 승리욕에 불타 이글거리는 눈빛과 광폭한 타격은 남성 선수에게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굵직한 허벅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하이킥도 그렇고, 사우스포의 깔끔한 왼손 스트레이트 펀치는 완성도가 꽤 높았다. 아까 봤던 스타일 특이한 앳된 아가씨와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함서희도 인정했다. "일본에서 경기를 치르고 나서 평상복을 입고 안경을 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못 알아봐요. 아까 경기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굉장히 놀라곤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귀염둥이 같다가도 링에만 오르면 반더레이 실바로 돌변한다. '두 얼굴을 가진 여자'라는 표현이 딱이다.

▲ 함서희는 UFC에서 1승 2패를 기록하고 있다. 재계약을 위해서 1승이 절실하다. ⓒ한희재 기자
◆ 세 번의 눈물

함서희는 피아노를 잘 치고 요리를 좋아하며 꾸미는 것도 즐긴다. 친한 친구와 커피로만 3차를 가며 온종일 수다를 떨기도 한다.

운동복을 입으면 분명 보통의 여성들과 다르다. 남성들과 오래 훈련하며 생활해서인지 중성적인 느낌이 든다. 머리를 짧게 자른 요즘 더 그렇다. 남자 선수들 사이에 껴서 찍은 단체사진에서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지도자면서 형부인 양성훈 팀 매드 감독은 말한다. "서희는 전사입니다."

호칭도 특이하다. 함서희는 오빠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오빠들을 형으로 부르고,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오빠들을 아저씨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크레이지 광' 이광희는 '광희 형'이고, '코리안 불도저' 남의철은 '의철이 아저씨'다.

그러나 가끔은 여린 여성이 된다. 함서희의 눈물을 세 번 봤던 것 같다.

함서희는 2013년 5월 스기야마 야호를 꺾고 쥬얼스 챔피언 벨트를 둘렀을 때 눈물을 보였다. 한동안 지지부진 활동하다가 그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한 훈련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지난해 11월 UFC 파이트 나이트 서울 대회에서는 코트니 케이시를 판정으로 이기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UFC 첫 승리를 따내고 인터뷰하는 순간 함서희는 "내 체격이 작아 걱정을 많이 했다"는 형부 양성훈 감독을 거론하며 울먹였다.

그리고 남은 한 번은 2014년 11월 UFC 계약을 했을 때 나와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였다.

함서희의 UFC 진출은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앞서 UFC에 입성한 남성 선수들의 계약도 가치가 있었지만, 함서희는 또 다르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생계와 먼저 싸워야 할 정도로 한국 종합격투기의 운동 환경은 열악했다. 이전에는 더 심했다. 국내 주요 단체가 쓰러지고 경기 기회를 한 번 갖기 어려울 정도로 암울한 시기가 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 포기한 이들도 적지 않다.

여성 파이터 함서희는 오죽했을까. 여성 훈련 파트너 한 명 없었고 무대 자체가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대회가 있어도 경기를 갖는 것에만 의미를 둬야 했다. 남성 선수들의 경우 메이저 단체 진출 희망을 보고 뛰었지만, 여성의 경우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성공과는 거리가 있었다. 꿈이 될 만한 목표점이 없었다. 캄캄하고 불투명한 앞날의 연속이었다. UFC와 계약한 함서희가 다른 국내 UFC 파이터들보다 대견해 보인 이유다.

그 말을 꺼내자 함서희는 아무 말 못하더니 한동안 흐느꼈다. "10년 세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고 말해 주시니 고생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네요. 남자들도 살아남기 어려운 바닥이었습니다. 포기하는 여성 파이터들을 많이 봤어요. 지난 10년 동안 주위 분들에게 신세만 졌는데 보답할 길이 열려 기뻐요. 포기하지 않길 잘했네요"라고 말했다.

▲ 함서희는 다니엘 테일러와 UFC 파이트 나이트 101에서 경기한다. UFC에서 자기보다 작은 상대와 싸우는 건 처음이다. ⓒ한희재 기자
◆ 네 번째 고비

입식타격기를 먼저 수련한 함서희는 2006년 종합격투기를 접하기도 전에 은퇴할 뻔했다. 킥복싱 경기에서 편파 판정의 희생양이 됐다고 한다. 큰 상처를 받아 운동을 그만둔 채 1년 동안 쉬고 있었다. 다시 뛸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함서희를 링으로 다시 불러낸 것이 바로 종합격투기였다. 당시 함서희는 "슬럼프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고 돌아본다.

2009년 종합격투기를 떠날 뻔했다. 함서희는 2008년 4월 후지 메구미와 경기 후 한동안 링에 오르지 않았다. 활동하던 무대인 일본의 여성 종합격투기 단체 스맥걸도 그가 마지막으로 출전했던 월드 리믹스 토너먼트 대회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후 출전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또 어린 나이에 너무 운동에만 매달렸다는 생각에 해 보고 싶었던 것을 하기로 결심했다.

선택한 것은 네일 아트. 20대 여성이라면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직업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격투기는 마약과 같았다. 친하게 지내는 임수정이 K-1에 출전하자 부러운 마음에 복귀하기로 마음먹었다. 2009년 9월, 1년 5개월 만에 가진 복귀전에서 다키모토 미사키에게 승리했다.

슬럼프는 오래 지나지 않아 또 찾아왔다. 이번엔 현실적인 문제였다. 운동에 집중하고 싶으나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때가 2012년. 함서희는 서울에서 일하다가 가끔 일본을 찾아 킥복싱 경기와 시범 경기를 뛰곤 했다. 정상적인 활동과 거리가 있었다. 그러다 정신 차리라는 양성훈 감독의 따끔한 한마디에 자극 받아 짐을 싸들고 부산으로 다시 내려갔다. 집중해서 훈련한 결과 일본 여성 격투기 단체 쥬얼스 챔피언에 올랐고, 6연승의 상승세로 UFC에 진출할 수 있었다.

2014년 12월 UFC에 데뷔한 함서희는 옥타곤에서 1승 2패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조앤 칼더우드에게 판정패, 코트니 케이시에게 판정승, 벡 롤링스에게 판정패했다. 그리고 오는 27일(한국 시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UFC 파이트 나이트 101에 출전해 메인 카드 1경기에서 다니엘 테일러와 대결한다. 생사를 결정짓는 중대한 일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겨우 3전을 치렀지만, UFC는 신인에게 관대한 편이 아니다. 2연패를 기록할 경우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계약상으로도 이번이 마지막 경기. 함서희의 파이터 인생에서 고비라면 고비다.

UFC에서 활동이 멈춘다고 선수 생활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함서희는 UFC를 자신이 활동할 마지막 단체로 정했다. UFC와 계약할 때 "5년 동안 옥타곤에서 경쟁한 뒤 여자로 살겠다"고 말했던 그였다.

함서희는 자신의 상황이 어떠하든 즐겁고 신나는 경기가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경기 내용이 어떠하든 꼭 이겨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함서희는 한국 여성 종합격투기의 자존심과 같기 때문이다. 두 번째 호주 원정, 이번에는 승리의 추억을 만들었으면 한다.

■ 필자 소개- 현 UFC 한국 공식 홈페이지(kr.ufc.com) 저널리스트. 전 엠파이트 팀장. 강원도 영월 출신.

<기획자 주> 스포티비뉴스는 매주 수요일을 '격투기 칼럼 데이'로 정하고 다양한 지식을 지닌 격투기 전문가들의 칼럼을 올립니다. 격투기 커뮤니티 'MMA 아레나(www.mmaarena.co.kr)'도 론칭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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