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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 축구 대표 팀 선전을 바라며 전세기를 띄운다고 합니다

작성일: 2016.11.24 13:03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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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캐나다와 평가전에 나선 한국 축구 대표 팀. 한국이 2-0으로 이겼다.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대한축구협회가 국가 대표 팀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22일 파주 NFC(축구 국가 대표 팀 트레이닝 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밝힌 국가 대표 팀 지원책 가운데 눈길을 끈 내용 가운데 하나가 전세기 투입이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에서 전세기를 타지 않는 팀은 시리아와 한국 뿐이다. 선수들을 위해 전세기를 제공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동안 전세기를 이용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시리아, 둘이라고 한다. 한국에 원정을 온 중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전세기를 타고 편하게 입국했다고 한다. 중국은 그렇다 치고 우즈베키스탄이 전세기를 띄웠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 축구 대표 팀에 전세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 ⓒ 대한축구협회
선수들이 지난 9월 말레이시아 원정(시리아와 제3 지역 경기), 10월 이란 원정에 일반 승객들과 함께 꽤 오랜 시간을 비행했다는 얘기다. 비즈니스석이었다고 하니 그나마 발을 약간 펴고 어느 정도 편했겠지만 은근히 속이 상한다.

대한축구협회에는 비행 시간이 2시간 이내면 이코노미, 2시간이 넘으면 비즈니스석을 이용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 대부분 도시가 2시간 이상 비행 시간이어서 축구 국가 대표 선수들은 외국 원정 때 비즈니스석을 탄다고 보면 된다.

야구 국가 대표 팀의 경우, 올림픽은 대한체육회가 계약하는 전세기를 이용하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은 미국에서 열리는 라운드에는 대회를 운영하는 WBCI가 제공하는 전세기를 이용한다. 한국 대표 팀은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 미국행 전세기에 올랐다. 2006년, 2009년 도쿄와 2013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1라운드에는 일반 항공편 비즈니스석을 이용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전세기를 띄운 최근 사례 가운데 하나가 2013년 6월 있었다. 레바논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6차전에서 1-1로 비긴 한국 선수단은 경기를 마치자마자 한국 시간으로 6월 5일 새벽 전세기에 올랐다. 한국은 레바논전에 이어 11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즈베키스탄과 7차전을 벌였고 상대 자책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원정과 홈이 곧바로 이어지는 일정인데다 베이루트~인천 직항편이 없어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를 경유하면 선수들 컨디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직행을 겨냥하는 한국은 내년에 2013년과 같은 빡빡한 일정은 없다. 6월 카타르 원정과 9월 우즈베키스탄 원정에 전세기를 띄울 만하다.

운동선수들의 전세기 이용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한국 체육사에 나오는 첫 국적 전세기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때 띄운 대한국민항공사(KNA) 비행 편이다. 이때 전세기는 홍콩까지만 갔고 선수들은 홍콩에서 외국 항공편으로 갈아탔다. 그 무렵 KNA는 DC-4 기종으로 서울~타이베이~홍콩 노선을 주 1회 운항하고 있었다. 1958년 김포국제공항이 개항하기 전에는, 민간 항공기들이 여의도공항에서 뜨고 내렸다.

전세기는 당연히 나라의 경제력과 연관이 깊다. 

전세기는커녕 항공편을 확보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절 얘기를 소개한다.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여름철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고 나선 뜻깊은 대회다. 당시 축구와 농구, 역도 등 국가 대표 선수들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배를 타고 요코하마로 건너갔다. 홍콩까지 여객선으로 이동한 선수단은 그곳에서 여러 차례 비행기를 갈아탄 끝에 런던에 이르렀다. 홍콩으로 가는 배에서 한국 스포츠 사상 첫 올림픽 메달(동)을 딴 김성집 선생이 역기를 드는 훈련을 했다는 얘기는 스포츠계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1954년 제5회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축구 국가 대표 선수단의 여정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도움을 받았지만 일종의 전세기인 미군 수송기 편으로 여의도공항을 떠나 일본에 도착했는데 유럽행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항공사를 찾아갔으나 예약을 하지 않아 출발 일정이 불확실하단 통보를 받았다. 선수단은 일본축구협회 협조로 운동장을 빌려 훈련하며 항공편을 기다렸다. 그러나 현지 시간 6월 16일 개막일은커녕 헝가리와 첫 경기를 하는 6월 17일에도 도착을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훈련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런 와중에 방콕에서 떠나는 영국행 비행기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문제는 방콕까지 가는 데 필요한 항공편이었다. 6월 11일 출발하는 비행기의 좌석이 9개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6월 12일 비행기에 11개의 좌석이 남아 후보 선수 9명을 먼저 출발시키고 주전 선수 11명이 이튿날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선수단은 단장을 포함해 22명이었다. 나머지 두 자리는 일본을 여행하고 있던 영국인 신혼부부가 “월드컵에 항공권이 없어서 출전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자신들의 일정을 늦춰 가며 양보한 덕에 해결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다시 스위스로. 이후 경기 결과는 열혈 축구 팬이면 모두 알 것이다. 헝가리전 0-9, 터키전 0-7. 머나먼 유럽 원정길이었다. 

축구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프로 야구의 대선배들이 겪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1954년 5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국과 일본, 필리핀, 자유중국(오늘날의 대만)이 아시아야구연맹을 결성했고 연맹은 첫 사업으로 그해 12월 마닐라에서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열었다.

한국은 일본에 0-6, 필리핀에 4-5로 지고 대만을 4-2로 눌러 1승2패로 3위를 했다. 이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은 미군이 제공한 수송기를 타고 마닐라로 향했다. 역시 도움을 받았지만 일종의 전세기였는데 비행하는 동안 결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때는 겨울, 여름옷을 구할 수 없어 선수들은 흰 옷감에 물감을 들인 단복을 입고 있었다. 비행기는 계속 남쪽으로 날았고 냉방이 되지 않는 수송기 안에서 선수들은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염색한 단복에서 흰 셔츠로 검은 물감이 배기 시작했고 셔츠가 얼룩덜룩 엉망이 됐다. 그렇지만 선수들은 비행기에 동승한 미군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워 땀을 흘리면서도 단복을 입은 채 견뎠다고 한다.

급유를 위해 중간 기착지인 홍콩에 내렸을 때 선수단 관계자가 시내에 나가 반소매 셔츠를 구입해 와 갈아입었고 선수단은 이 반소매 셔츠를 대회 기간 단복으로 삼았다. 주요 국제 대회에 나가는 선수들을 위한 단복 패션쇼를 하는 요즘과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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