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시절 포수 김영진(왼쪽)과 LG 포수 유강남 ⓒ삼성라이온즈, 스포티비뉴스DB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어떻게 이런 일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귀신에 홀린 듯 황당한 일을 겪을 때가 종종 있는데, 야구라고 다를 건 없다. 난해한 규칙과 수많은 플레이로 둘러싸인 야구이기에 순간적인 착각으로 본헤드 플레이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당사자로선 잊고 싶은 악몽이지만, 잔인한 역사는 이를 잊지 않는다. 더군다나 승부와 직결되는 9회에 벌어진 일이라면…. 팬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KBO리그 역대급 본헤드 플레이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 21일 경기, LG의 9회말 수비 4차례 착각 재구성

LG가 9회초 극적인 홈런 두 방으로 5-4로 역전한 뒤 9회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SSG는 LG의 철벽 마무리 고우석을 상대로 1사 만루 찬스를 잡았다. 그리고 박성한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5-5 동점이 됐다.

이어 이재원의 3루쪽 강습 땅볼 타구. LG 3루수 문보경이 텀블링을 하듯 넘어지면서 잡은 뒤 재빨리 일어나 3루를 밟았다. 2루주자 한유섬은 포스아웃. 문보경은 3루 주자 추신수가 홈으로 달리자 포수 유강남에게 송구했다. 추신수가 도중에 멈춰 선 뒤 다시 3루로 돌아갔다. 런다운에 걸리는 상황. 유강남이 3루로 공을 던졌다면 손쉽게 추신수를 잡을 수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3루로 몰아갔다. 그 전에 3루수 문보경이 3루를 밟지 않고 홈으로 송구했다고 착각했을 수는 있다. <1차 착각>

▲ 2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LG-SSG전 9회말 문제의 장면. LG 포수 유강남(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이미 아웃된 한유섬(오른쪽)을 잡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그 사이 3루에 있던 추신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홈으로 달리고 있다. ⓒSPOTV 중계화면 캡처
여기서 일이 벌어졌다. 2루 주자 한유섬과 추신수가 3루를 함께 점유한 것. 추신수는 3루를 비워줄 의무가 사라졌기 때문에 3루를 밟는 순간 세이프가 되는 상황. 추신수는 한유섬에게 ‘2루로 돌아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미 아웃된 ‘유령 주자’ 한유섬은 2루로 달렸고, 유강남은 귀신에 홀린 듯 한유섬을 태그하기 위해 따라갔다. <2차 착각>

그 사이 추신수는 홈으로 달렸다. 그런데 유강남은 홈으로 공을 던지는 대신 갑자기 3루를 커버한 손호영에게 던져줬다. <3차 착각>

이때라도 손호영이 홈플레이트를 커버한 투수 고우석에게 송구했다면 추신수를 태그아웃시킬 수 있었지만, 손호영은 멍하니 홈까지 밟는 추신수를 바라만 봤다. <4차 착각>

연장전으로 몰고 갈 경기에서 LG는 무려 4차례나 어이없는 착각을 하며 허무한 5-6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공식 기록은 유격수 손호영의 끝내기 실책이었다.

◆ 삼성 포수 김영진, 9회초 관중석 공 투척 사건

9회에 터진 포수의 본헤드 플레이라면 올드팬들은 1997년 삼성 김영진의 관중석 공 투척 사건을 떠올릴 듯하다.

1997년 8월 23일 대구시민야구장. 쌍방울과 삼성의 더블헤더 제1경기에서 삼성이 4-1로 앞선 가운데 쌍방울의 9회초 마지막 공격이 펼쳐졌다. 2사 1·2루. 삼성 마무리투수 김태한은 볼카운트 1B-2S에서 4구째 원바운드 볼을 던졌고, 쌍방울 타자 장재중이 헛스윙을 했다.

모두가 더블헤더 제1경기의 종료를 생각하고 있던 상황. 타자 장재중 역시 삼진으로 판단하고 힘없이 덕아웃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김동앙 주심도 원바운드 공을 보지 못해 삼진아웃과 함께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삼성 포수 김영진은 경기가 끝난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공을 ‘팬서비스용’으로 관중석에 던져 버렸다. 그러나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이었다.

▲ 삼성 포수 시절의 김영진. 1996년 2차 1라운드에 지명될 정도로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삼성라이온즈
이때 쌍방울 김성근 감독이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장재중에게 ‘1루로 가라’고 손짓을 하면서 고함을 질렀다. 장재중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1루로 달릴 수밖에.

곧바로 김성근 감독은 바람을 가르며 김동앙 주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스트라이크아웃(삼진) 낫아웃’이라고 어필하면서 경기 종료 무효를 주장했다. 곧바로 4심 합의를 했다. 그리고는 ‘삼진 낫아웃’으로 판정을 번복해 경기 재개를 선언했다. 여기서 쌍방울이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6-4로 역전승을 거뒀다. 포수 김영진이 공을 잡은 뒤 돌아서는 장재중을 태그만 했더라면 아무 일 없이 승리로 끝날 경기였지만, 팬서비스로 관중석에 공을 투척하는 바람에 삼성이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 용덕한, 빠진 공 줍는 대신 어필만 하다가

2011년 5월 28일 잠실구장 한화-두산전. 두산이 10-9로 앞선 9회초에 승부를 바꾼 포수의 본헤드 플레이가 발생했다. 1사 2루 타석엔 한화 오선진이 들어섰다. 두산 마무리투수 정재훈은 여기서 볼카운트를 1B-2S로 유리하게 몰고 갔다. 이어 4구째 승부구로 포크볼을 던졌다. 오선진의 방망이가 돌았고, 공은 원바운드로 홈플레이트를 맞고 포수 뒤로 빠졌다. 심판은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상황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용덕한은 백스톱까지 굴러간 공을 주우러 달려가는 대신 심판에게 “배트에 공이 맞았기 때문에 파울”이라고 어필만 하고 있었다. 그 사이 2루 주자 추승우는 홈까지 달려 동점 득점을 올렸다. 용덕한은 억울한 표정으로 계속 어필을 했다. 1루에 진출한 타자 오선진은 이 모습을 보고 2루를 거쳐 3루까지 내달렸다. 투수 정재훈이 백스톱까지 달려가 공을 잡았지만 때는 늦었다. 사실상 3루타가 된 꼴. 두산은 강동우에게 적시타까지 맞고 10-11로 역전패했다.

▲ 넥센 히어로즈 시절 포수 박동원 ⓒ스포티비뉴스DB
◆ 안방을 비워버린 박동원의 지레짐작

포스트시즌에서도 패배를 부른 본헤드 플레이가 종종 발생한다. 2013년 준플레이오프. 목동에서 열린 2차전까지 넥센이 두산에 2연승을 거둬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10월 11일 잠실구장에서 펼쳐진 3차전. 3-3 동점으로 진행된 연장 14회말 무사 1·3루였다. 두산 이원석이 친 타구는 빗맞아 높이 떴다. 3루 주자 정수빈은 우익수 송지만이 바로 잡을 줄 알고 3루로 돌아가 태그업을 준비했다. 그런데 타구는 송지만 앞에 떨어지는 안타. 정수빈의 스타트는 늦었고, 전진수비를 펼친 강견의 송지만은 공을 잡자마자 홈으로 던졌다. 접전이 예상됐지만 정수빈은 여유 있게 끝내기 득점을 올렸다. 포수 박동원이 끝내기 안타라고 지레짐작을 하면서 안방을 비우고 덕아웃으로 걸어갔기 때문이었다. 박동원은 뒤늦게 송구가 오는 것을 알고는 공을 잡았지만 태그를 시도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넥센은 3-4로 패한 뒤 4차전(1-2)과 5차전(5-8)마저 내줬다. 2연승 후 3연패하면서 두산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바라보고 말았다.

◆ 1993년 PO, LG 윤찬의 ‘만세 주루’ 해프닝

포수의 수비뿐만 아니라 9회말 결정적 주루에서 본헤드플레이로 팀의 운명을 가른 사례도 있다. 그것도 포스트시즌이어서 기억이 더욱 선명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1993년 10월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LG의 플레이오프 2차전. LG는 2-3으로 뒤진 9회말 선두타자 김영직이 우전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마지막 희망을 살렸다.

LG 이광환 감독은 여기서 윤찬을 대주자로 투입했다. 다음타자 최훈재의 타구는 우익수 키를 넘길 듯한 기세로 날아갔다. 그러나 삼성 우익수 이종두가 펜스 쪽으로 달려가 잡아냈다. 그런데 윤찬은 ‘폭주 기관차’였다. LG 이종도 3루코치가 양 손을 들어 ‘돌아가라’는 시그널을 보냈지만, 2루를 돈 윤찬은 ‘계속 달리라’는 신호로 착각해 3루를 돌아 홈까지 내달렸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윤찬은 1루 덕아웃 앞에서 얼음이 되고 말았다. LG는 안방에서 1차전 패배에 이어 2차전까지 지고 말았다. 대구에서 이상훈과 정삼흠의 호투 속에 3·4차전을 잡았지만 5차전에서 3-4로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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