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키워드 키워드 기준 i금일 기준 많이 본
뉴스 기사의 키워드 수집

'불혹의 수호신' 우에하라, "롱런 이끈 8할은 투쟁심"

작성일: 2015.06.18 11:33 스포츠팀 기자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펜웨이파크의 수호신' 우에하라 고지(40, 보스턴 레드삭스)가 자신의 롱런 비결을 '가난을 통해 습득한 투쟁심'이라고 밝혔다. 대학 시절 야구장 안팎으로 어려웠던 주머니 사정이 투쟁심은 물론 야구에 대한 예의와 인내까지 가르쳐줬다고 했다.

한국 나이로 41세. 불혹의 나이에도 우에하라 고지는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호투를 이어가고 있다. 17일(이하 한국 시간)까지 2승 3패 13세이브 평균자책점 3.00을 거두고 있다. 지난 4월 불혹을 맞은 이 우완 투수는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주전 마무리로 나서고 있다.

자신을 스스로 '잡초'라고 표현하는 우에하라는 롱런을 위해서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늘 생각한다고 한다. 요미우리의 에이스에서 미국에 진출한 첫해 '선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며 방황했던 그였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바꿔 1승 2패 13세이브 평균자책점 2.86을 거뒀다. 도미 2년 만에 이뤄낸 훌륭한 연착륙이었다.

2013년 보스턴으로 이적했다.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했다. 당시 아들과 함께 인터뷰했던 행복한 '야구선수 가장'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우에하라는 고교, 대학 시절 통틀어 소위 '야구 엘리트'로 불리는 선수가 아니었다. 고교 시절에는 팀 내 두 번째 투수였다. 그를 지도했던 나카노 카즈히코 감독은 제자에 대해 "반골 정신이 강한 아이였다"라고 표현했다. 이어 그는 "'4년 후에 프로를 목표로 할거냐'고 물으면 우에하라는 '무리겠죠'라고 대답했다"라면서 "그러나 '언제까지나 야구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을 덧붙였던 기억이 있다"라고 제자와의 시간을 반추했다.  

우에하라는 도카이 부속 고등학교 재학 시절 3학년이 될 때까지도 주로 외야수로 출전했다. 마운드에 선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미래 체육 교사를 꿈꾸고 체대에 응시한 바 있다. 그 정도로 스스로도 '프로야구선수 우에하라'의 기대치는 낮았다.

체대에 응시한 첫해 우에하라는 낙방했다. 불합격 원인은 낮은 영어점수였다. 재수 학원에 다니면서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1년 후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우에하라가 입학한 오사카 체육대학은 지금은 사회인리그에도 많은 선수를 배출하는 도내 손꼽히는 강호지만 당시만해도 프로 스카우트들이 외면할 정도로 무명이었다.

오사카 체대에는 전용 야구장이 없었다. 다른 학교 소유의 연습장을 빌려 연습했다. 고작 직원의 점심시간 동안 약 30분으로 한정된 열악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팀이 원정을 갈 때마다 드는 비용은 대부분 본인 부담이었다.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경기에 나설 때마다 야구부원들의 주머니는 얇아져 갔다. 우에하라도 마찬가지였다 한밤중에 공사 현장으로 나가 경비원, 운송업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활동비를 저축했다. '언제까지나 야구를 계속하겠다'는 약속을 위해 그는 주경야독의 심정으로 야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과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렸던 그 무명 학교에서 훗날 일본 야구계를 대표하는 에이스가 되고 불혹의 나이에 메이저리그 손꼽히는 수호신으로 활약할 선수가 나올 줄 누가 예상했을까. 우에하라는 1997년 대학 3학년 때 처음으로 일본 대표팀에 뽑혔다. 대부분 프로 구단에 관심을 받은 거물급 선수들이었다. 이들과 첫 연습을 하고 우에하라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협회에서 제공한 유명 브랜드의 야구 장갑, 언더 셔츠 등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더군요. '지푸라기' 버리듯 용품들을 툭 던지고 돌아가는 광경에 매우 놀랐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우에하라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격지심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는 바로 그때 '이 녀석들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투쟁심이 끓어오른 것이다. 우에하라는 대학 시절 방망이가 부러지면 못을 박아 경기에 임했다. 그에게 배트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 사용하는 도구였다. 얼마나 야구를 잘하든 얼마나 유명하든 야구 공구를 소홀히 하는 선수는 절대 잘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야구 관련 용품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 우에하라가 말하는 야구에 대한 예의다. 지금까지 유념하고 있는 그의 가치이다.

[사진] 우에하라 고지 ⓒ Gettyimage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