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전설' 가네다 "맞혀 잡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작성일: 2015.01.09 15:59
신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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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V NEWS=신원철 기자] "맞혀 잡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일본 프로야구 400승 기록을 보유한 가네다 마사이치(한국명 김경홍)가 현역 시절을 회상했다. 먼저 점수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 그 결과가 최다 완투(365경기)와 최다 탈삼진(4490개)였다.
일본 야구 전문 주간지 '주간 베이스볼' 최신호 '레전드에 묻다' 코너 마지막회 주인공으로 가네다가 선정됐다.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가진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강의 투수. '주간 베이스볼'은 "엠페러라 불린 그 사나이는 처절할 정도로 프로페셔널했다"며 그의 야구 인생을 '한줄 요약'했다.
인터뷰는 고쿠테츠 스왈로우 시절 요미우리를 상대로 통산 65승(72패)를 거둔 기억부터 시작된다. 가네다는 당대 최고의 타자였던 '타격의 신' 카와카미 테츠하루를 상대로 단 1개의 피홈런도 내주지 않았다고. 게다가 1950년부터 1957년까지 고쿠테츠 홈구장인 고라쿠엔 구장은 1957년까지 홈부터 좌우 폴대까지 거리가 불과 78m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네다는 "카와카미라고 하면 '바가지 안타'라는 이미지만 있다. 그래도 1개도 안 내줬을 줄은 몰랐다"며 농담을 한 뒤 "요미우리를 상대로 65승을 했지만 당시 요미우리는 타선보다 투수가 훌륭한 팀이었다. 그래서 먼저 더욱 먼저 점수를 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삼진을 잡지 않으면 실책에서 실점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나는 맞혀 잡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 결과가 4490개의 탈삼진"이라고 이야기했다. 데뷔 2년차인 1951년부터 1964년까지 14년 연속 20승을 달성한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돈을 벌기 위한 일 아닌가. 당시에는 20승을 하지 않으면 연봉이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혹사'라 불릴 만한 일들도 만연한 시대였다. 그는 "완투하고 나면 다음날도 피곤하다. 그래도 6~7회가 되면 등판할 준비를 했다. 경기 후반에 1점 이기고 있는 상황이면 팬들이 '가네다를 내보내!'라고 소리치곤 했다"고 추억했다.
1965년 요미우리로 이적해 팀의 일본시리즈 9연패에 이바지했다. 고쿠테츠 시절 이어오던 14년 연속 20승 기록은 팀을 옮긴 뒤 끊어졌고, 그 역시 1969년을 끝으로 은퇴했지만 그의 프로 정신은 팀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가네다는 "내가 들어가면서 요미우리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며 "내가 9연패에 큰 힘이 됐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일본나이로)17살에 프로에 데뷔해 30경기를 던졌다. 프로라면 당연한 일이다. 투수의 본능은 이기는 것, 나는 지는 것 따위는 머리에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프로야구 400승 기록을 보유한 가네다 마사이치(한국명 김경홍)가 현역 시절을 회상했다. 먼저 점수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 그 결과가 최다 완투(365경기)와 최다 탈삼진(4490개)였다.
일본 야구 전문 주간지 '주간 베이스볼' 최신호 '레전드에 묻다' 코너 마지막회 주인공으로 가네다가 선정됐다.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가진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강의 투수. '주간 베이스볼'은 "엠페러라 불린 그 사나이는 처절할 정도로 프로페셔널했다"며 그의 야구 인생을 '한줄 요약'했다.
인터뷰는 고쿠테츠 스왈로우 시절 요미우리를 상대로 통산 65승(72패)를 거둔 기억부터 시작된다. 가네다는 당대 최고의 타자였던 '타격의 신' 카와카미 테츠하루를 상대로 단 1개의 피홈런도 내주지 않았다고. 게다가 1950년부터 1957년까지 고쿠테츠 홈구장인 고라쿠엔 구장은 1957년까지 홈부터 좌우 폴대까지 거리가 불과 78m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네다는 "카와카미라고 하면 '바가지 안타'라는 이미지만 있다. 그래도 1개도 안 내줬을 줄은 몰랐다"며 농담을 한 뒤 "요미우리를 상대로 65승을 했지만 당시 요미우리는 타선보다 투수가 훌륭한 팀이었다. 그래서 먼저 더욱 먼저 점수를 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삼진을 잡지 않으면 실책에서 실점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나는 맞혀 잡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 결과가 4490개의 탈삼진"이라고 이야기했다. 데뷔 2년차인 1951년부터 1964년까지 14년 연속 20승을 달성한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돈을 벌기 위한 일 아닌가. 당시에는 20승을 하지 않으면 연봉이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혹사'라 불릴 만한 일들도 만연한 시대였다. 그는 "완투하고 나면 다음날도 피곤하다. 그래도 6~7회가 되면 등판할 준비를 했다. 경기 후반에 1점 이기고 있는 상황이면 팬들이 '가네다를 내보내!'라고 소리치곤 했다"고 추억했다.
1965년 요미우리로 이적해 팀의 일본시리즈 9연패에 이바지했다. 고쿠테츠 시절 이어오던 14년 연속 20승 기록은 팀을 옮긴 뒤 끊어졌고, 그 역시 1969년을 끝으로 은퇴했지만 그의 프로 정신은 팀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가네다는 "내가 들어가면서 요미우리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며 "내가 9연패에 큰 힘이 됐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일본나이로)17살에 프로에 데뷔해 30경기를 던졌다. 프로라면 당연한 일이다. 투수의 본능은 이기는 것, 나는 지는 것 따위는 머리에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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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철 기자 sw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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