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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만-일본, 또 시작된 아시안게임 야구 삼국지

작성일: 2018.06.11 12:48 신명철 편집 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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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호(맨 앞줄 가운데) 서재응 김병현 조인성 홍성흔 진갑용 김동주 이병규 임창용 박한이 박재홍 강봉규 신명철 등 메이저리거를 포함한 프로-아마추어 혼성 팀이 나선 1998년 방콕 대회 야구 결승에서 한국은 일본을 13-1, 7회 콜드게임으로 꺾고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처음 우승했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사상 가장 많은 나라 출전이 확정됐다.11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따르면 한국 일본 대만 중국 홍콩 파키스탄 태국 홍콩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라오스 등 11개국이 아시아야구연맹(BFA)에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종목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전 아시안게임 야구 최다 출전국은 8개(2010년 광저우 대회 2014년 인천 대회)다. 이번 대회에는 개최국 인도네시아와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야구를 보급한 라오스,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가 처음 출전한다. BFA 회원국은 2018년 현재 24개국이지만 국제 대회에 정기적으로 나서는 나라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1954년과 1955년 제1, 2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개최국으로 1970년대 초까지 아시아 야구 강호로 이름을 날렸던 필리핀이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 3개 대회 연속 출전 신청을 하지 않은 게 눈길을 끈다. 2010년 광저우 대회와 2014년 인천 대회에 연속 출전했던 몽골도 출전 신청을 하지 않았다.

몽골은 롯데 자이언츠 손승락이 넥센 히어로즈 시절 개인적으로 아시아 야구 저개발국 돕기를 할 때 베트남 캄보디아 스리랑카 등과 함께 지원 대상에 들어 있던 나라다. 손승락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몽골 대표 팀이 배트 한 자루로 참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이듬해 몽골에 야구 용품을 지원했다.

8개국이긴 하지만, 역대 가장 많은 나라가 참가한 가운데 자카르타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는 아시아 랭킹 하위 4개국이 예선을 치러 본선 라운드에 오를 1개 나라를 선정할 예정이다.예선을 통과한 나라는 나머지 7개국과 A, B 2개 조로 본선 1라운드를 치른 뒤 각 조 1, 2위 나라가 본선 2라운드인 '슈퍼 라운드'에 진출한다.

'슈퍼 라운드'는 본선 1라운드 각 조 1위 나라가 1승을, 2위 나라는 1패를 안은 상태에서 건너편 조 1, 2위와 경기한다. 슈퍼라운드 1, 2위 나라가 금메달을 다투고 3, 4위 나라가 동메달 결정전을 치른다.

참가국이 늘면서 대회 일정이 연장되고 일부 변경됐다. 하위 4개 팀은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예선 라운드를 치르고 24일과 25일은 훈련일로 잡혔다. 본선 1라운드는 26, 27, 28일 열리고 29일은 휴식일이다.슈퍼라운드는 30일과 31일 펼쳐지고 9월1일 결승전과 3위 결정전이 벌어진다. 

11일 최종 엔트리 24명을 확정한 한국 대표 팀은 오는 18일 소집돼 잠실 구장에서 합동 훈련을 한 뒤 8월 23일께 자카르타로 떠날 예정이다.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이 열리는 기간을 앞뒤로 8월 16일부터 9월 3일까지 KBO 리그는 휴식기를 갖는다.

출전국이 둘쭉날쭉하고 대회마다 ‘한중(대만)일 삼국지’가 펼쳐지는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종목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야구는 1954년 마닐라 리잘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린 이후 1989년 서울 잠실 구장에서 벌어진 제15회 대회까지 진행된 뒤인 1990년 베이징 대회 때 아시아경기대회 시범 종목으로 비로서 채택됐다.

이어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때 정식 종목으로 열린 이후 2014년 인천 대회까지 6차례 대회에서 한국이 우승 4차례와 준우승 1차례 3위 1차례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한국이 3위를 한 2006년 도하 대회에서 우승한 대만은 준우승 3차례, 3위 2차례이고 일본은 자국에서 열린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고 이후 은메달 2개와 동메달 3개를 보탰다.

시범 종목으로 열린 1990년 베이징 대회 야구 종목 내용은 2000년 펴낸 대한체육회 90년사에 없다. 그럴 만도 하다. 한국 대만 중국 일본이 출전해 조촐하게(?) 치른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경기는 그때 이미 정식 종목이 된 소프트볼 경기가 열린 베이징 근교 펑타이 구장에서 얹혀 열렸다.

1999년 간행된 한국야구사에는 이 대회 관련 내용이 11줄로 짧게 소개돼 있다.

한국은 정민태가 완투해 일본을 4-1로 꺾었으나 대만에 3-6으로 졌고 한국 대만 일본이 물고 물리며 2승 1패를 기록해 득실 차를 따져 금메달은 대만이 차지했고 한국이 은메달, 일본이 동메달을 기록했다고 적혀 있다. 이종범(유격수)~유지현(3루수)~박정태(2루수)로 이어지는 한국 내야 수비가 현지 관계자들의 찬탄을 자아냈다고 설명했는데 현지, 즉 걸음마 단계인 중국 관계자들에게는 눈부신 플레이였을 게 분명하다.

이 대회에 출전 선수한 선수 가운데에는 신세대 야구 팬들에게도 익숙한 이들이 꽤 있다. 정민태(한양대) 김홍집(단국대) 지연규(동아대) 김도완(경희대) 임창식(경남대) 김민국(건국대 이상 투수) 장광호(한국화장품) 강성우(단국대 이상 포수) 양준혁(영남대) 박정태(경성대) 유지현(한양대) 이종범(건국대) 김기태(인하대) 이민호(영남대 이상 내야수) 손동일(원광대) 고장량(상무) 이용석(단국대) 백재우(한국전력 이상 외야수) 등이다.

처음 정식 종목으로 열린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 한국은 일본에 5-6으로 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 대회 멤버는 문동환 임선동 박재홍(이상 연세대), 조성민, 손민한, 진갑용, 홍원기, 김종국, 조경환(이상 고려대) 전병호(영남대) 위재영(인하대) 최기문(원광대) 이병규 김재걸(이상 단국대) 강혁(한양대) 등이다.

이렇게 첫발을 뗀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종목은 발전 속도가 매우 더디다.

그런데 아시아 지역 야구 대회 역사는 아시아선수권대회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아시안게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제1회 극동선수권경기대회(Far Eastern Championship Games)가 1913년 마닐라에서 열렸다. 극동(極東·Far East)은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 말로 유럽 쪽 시각에서 아시아를 본 표현이다. 아무튼 제1회 대회에서는 축구 한 종목만 열려 미국인과 영국인, 스페인인 등으로 구성된 미국령 필리핀이 중국(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다른 나라)을 2-1로 누르고 우승했다.

제2회 대회는 1915년 상하이에서 열렸는데 중국 일본 필리핀이 출전해 육상 수영 사이클 축구 배구 테니스 그리고 야구에서 기량을 겨뤘다. 야구가 종목에 들어 있는데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제3회 대회는 1917년 도쿄에서 열렸는데 이 대회를 관전한 일제 강점 아래 우리나라 체육 관계자 기록이 있다.이 기록 가운데에는 “(전략) 너희들은 왜 아니 왔느냐? 적수가 없어서 아니 왔느냐? 일이 바빠서 못 왔느냐? 아, 슬프다. 우리도 권리가 있고 능력이 있다. 우리도 할 것이다. 굳세고 힘 있게 할 것이다. 방 안에 망을 치고라도 야구와 정구를 연습하리라. 개천 물에라도 들어가 수영을 숙달하리라”라는 내용이 있다. 필립 질레트가 이 땅에 야구를 전파한 지 10여년 뒤의 일이다. 이 내용을 보면 제2회 대회에 이어 제3회 대회에서도 야구 경기를 한 것이 분명하다.

1923년 제6회 대회는 오사카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는 육상 수영 야구 테니스 축구 농구 배구 등의 경기가 열렸다. 일본이 육상 수영 테니스에서 우승했고 필리핀이 야구 농구 배구에서, 중국은 축구에서 우승했다. 1930년 5월 24일부터 31일까지 도쿄에서 열린 제10회 대회에는 일본 중국 영국령 인도 필리핀이 출전해 육상 수영 농구 배구 축구 야구 테니스 필드하키 복싱 체조 등 10개 종목에서 경쟁했다. 경기 종목을 볼 때 제법 국제 종합 경기 대회의 틀을 갖췄다.

이 대회 야구 경기는 1926년 개장한 메이지진구구장에서 열렸다. 야구 종목 일정을 7일로 잡은 걸 보면 더블 리그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극동선수권경기대회는 1934년 제10회 대회(마닐라)까지 열렸다. 1938년 예정됐던 제11회 대회(오사카)는 제2차 중일전쟁으로 취소됐고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 대회 전체를 살펴보면 구기 종목에 상당한 비중을 뒀던 것으로 파악된다. 야구는 일본과 필리핀의 영향으로 꾸준히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야구는 아직도 세계화 수준에서 축구나 농구 등에 크게 뒤지지만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1910년대에 이미 국제 대회를 치를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1세기가 지난 현재 그때 수준이 거의 그대로다.

글쓴이는 1990년 6월. 일본 도카이대학교가 지어 기증한 모스크바대학교 야구장에서 열린 제2회 모스크바국제대회를 취재하면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옛 소련 야구를 볼 기회가 있었다. 이 대회에는 한국의 연세대와 일본의 도카이대, 모스크바대, 소련 대표 팀 등 4개 팀이 출전해 연세대가 우승했다.

그때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소련은 1987년 야구를 시작했고 2년 뒤인 1989년 국내 선수권대회를 열었다. 1990년 현재 소련에는 그루지아(오늘날 조지아), 리투아니아 등 당시 연방국까지 합쳐 20여 개 클럽이 있었다. 소련 국가 대표 팀은 소련 육군 팀과 모스크바화학대학교 팀으로 구성됐다. 대표 팀이었지만 국내 중학교 정도 수준이었다.

그때 만난 소련 국가 대표 팀 알렉산더 알다토프 감독은 자동차 회사인 모스코비치사에서 9∼16세 주니어 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성인이 되면 국제 무대에서 해볼 만하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 뒤 러시아는 2001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강호 네덜란드에 이어 준우승했다.

이후 유럽 야구 판도에 어떤 변화가 있나 살펴봤더니 러시아는 4강 명단에서 보이지 않고 유럽 야구의 전통 강호인 네덜란드와 이탈리아가 여전히 우승을 주고받는 가운데 스페인 독일 영국 그리스 등 서유럽 나라들이 4강권을 이루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꽤 됐지만 유럽 야구 무대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

아시아를 비롯해 야구의 세계화가 더딘 데에는 금지 약물 문제 등과 관련한 메이저리그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신경전은 물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넓은 경기장을 쓰는 같은 실외 종목인 축구의 아성을 깨뜨리지 못하는 한계성 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중일 야구 삼국지’는 다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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