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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야구⑧

작성일: 2015.08.05 12:33 신명철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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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위원]그나마 19422월 조선체육진흥회가 발족해 조선체육협회도 경성부(오늘날의 서울시)를 비롯한 각 도 체육진흥회에 흡수돼 버렸다. 조선체육진흥회는 스포츠 진흥이 아니라 전쟁 수행을 위한 국방 체육 진흥만을 목적 사업으로 삼은 조직이었다. 이 땅에서 체육이 사라지는 암흑기가 온 것이다. 1941128일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해 제 2차 세계대전을 유럽에서 태평양으로 확대한 제국주의 일본은 전쟁 초반에는 필리핀과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을 차례로 점령하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1942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패한 것으로 고비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밀려 후퇴를 거듭하더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1945815일 무조건 항복했다. 이로써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우리나라 체육계도 암흑기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렇다면 야구계는 해방 직후 어떤 움직임을 보였을까. [7편에서]

먼저 일제 치하에서 중단됐던 전조선종합경기대회가 부활했다. 19451027일 경성운동장(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의 옛 이름)에서 자유 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가 막을 올렸다. 이 대회가 1920년 제 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기산점으로 해 제 26회 전국체육대회가 된다.

개회식에서 태극기를 든 기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야구와 육상, 축구, 농구, 배구, 정구, 럭비, 사이클, 탁구, 승마 등 10개 종목이 치러졌다. 1946129일 한강에서는 이 대회의 동계 대회가 열렸다.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야구를 비롯한 육상과 축구, 배구 등 주요 종목들이 각종 대회를 본격적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다. 조선체육회는 19461016일부터 닷새 동안 경성운동장에서 조선올림픽대회를 열었다.

아직 전국체육대회라는 명칭이 정착되지 않았던 때인데다 2년 뒤 런던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조선올림픽대회라는 대회 명칭으로 나타났다. 이 대회가 제 27회 전국체육대회다.

야구인들은 광복과 함께 부지런히 움직여 19463월 조선야구협회를 결성했고 그해 517일부터 사흘 동안 경성운동장에서 4도시대항대회를 개최했다. 1945년에 열린 자유 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에 야구 종목이 들어 있었지만 야구 단일 종목으로 해방 이후 대회가 열린 건 이 대회가 처음이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대회에는 경성과 부산, 대구, 인천이 출전했다. 이영민, 손희준 등이 활약한 경성은 부산과 대구를 각각 5-1, 인천을 9-8로 누르고 우승했고 대구가 21패로 3, 부산이 12패로 3위를 차지했다.

해방되자마자 활발하게 열린 각종 야구 대회 가운데 눈에 띄는 대회가 1946816일부터 사흘 동안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조미(朝美)친선대회다. 해방 1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하나로 자유신문사가 마련한 이 대회에서 조선 대표 팀은 미 24군단과 경기에서 3-4로 졌으나 번외 경기인 미 31부대, 308부대와 경기에서는 3-1, 10-6으로 이겼다.

이 대회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한반도 남쪽에 주둔한 미군과 한국 야구인들의 단순한 친선경기로 흘려 버릴 수 있지만 야구 국가 대표 팀을 해방 이후 처음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이룬 야구 국가 대표 팀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미군은 대회에 앞서 85일과 64개 팀이 출전한 가운데 미군 쪽 대표 팀을 뽑기 위한 경기를 치러 24군단이 우승했다. 24군단에는 미국 프로 야구 마이너리그 출신의 사병이 있었다. 페론으로 이름만 전해지고 있는 이 사병은 31부대와 치른 결승전에서 2회 말 솔로 홈런, 5회 말 3점 홈런을 터뜨렸는데 2회 말 홈런은 해방 이후 경성운동장에서 나온 첫 번째 홈런이다.

미군과 경기하기 위해 구성된 국가 대표 팀 명단에는 야구 올드 팬들의 귀에 익은 이름이 꽤 있다. 이들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1950, 60년대 한국 야구가 자리를 잡는 데 이바지한다. 당시 멤버는 *투수=오윤환 유완식 장종기 *포수=김영조 김일배 최중을 *내야수=조점룡 이영준 윤재준 박점도 정헌모 김봉강 장석화 장정석 손희준 김흥수 *외야수=노정호 한경열 이신득 배영암 배성수 나조화 홍병창 유복룡이다. 이들 가운데 유완식은 해방 전 일본 프로 야구 한큐 브레이브스(오늘날의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활약했다.

[사진] 경성운동장으로 불렸던,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옛 터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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