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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일의 NBA 액션] 잊고 싶은 기억 ③ 닉 반 엑셀의 '심판 폭행 사건'

작성일: 2015.11.13 12:00 스포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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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조현일 해설위원]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던 일, 민망하고 황당했던 일, 차라리 겪지 않았으면 하는 사연들을 누구나 갖고 있다. 2015~2016 NBA 시즌이 한창인 현재, 선수들의 머릿속에 있는 몇 가지 '잊고 싶은 기억'을 정리해봤다.

세상엔 어떻게든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들이 존재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간 세계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들을 잃는 순간부터 인간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불꽃 튀기는 투쟁심이 난무하는 농구 코트 위에서는 이성과 합리를 찾아보기 힘들 때가 더욱 많다. 이번에는 닉 반 엑셀의 '잊고 싶은 추억'을 들춰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매직 존슨의 충격적인 은퇴 후, 레이커스의 분위기는 암흑 그 자체였다. 1992~1993시즌, 은퇴를 목전에 둔 제임스 워디의 분전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1라운드에서 피닉스 선즈를 5차전까지 물고 늘어진 것이 한계였다.

매직 존슨의 은퇴 후 2번째 시즌이었던 1993~1994시즌, 급기야 18년 만에 PO 진출에 실패하는 암담함을 맛봐야 했다. 해당 시즌 거둔 33승은 레이커스가 LA로 연고를 옮긴 1960년 이후 가장 나쁜 성적이었다. 시즌 중반 존슨이 레이커스 임시 감독으로 부임, 첫 6경기에서 5승 1패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기도 했지만 이내 9연패 늪에 빠지고 말았다. 레이커스의 회생은 당분간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암흑 속에 비친 서광이 있었다. 2라운드에서 3순위로 건진 닉 반 엑셀의 활약이었다. 데뷔 첫해 13.6점 5.8어시스트로 활약하며 올-루키 2nd 팀에 뽑힌 동시에 123개의 3점을 넣으며 레이커스의 신인 3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또, 입단 첫 해 1,000점 이상을 넣었는데 레이커스 역사상 제리 웨스트, 놈 닉슨, 제임스 워디, 매직 존슨만이 달성한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반 엑셀은 신시내티 대학 시절부터 "로터리 픽은 충분하다"는 평을 들었다. 문제는 성격이었다. 불같은 기질에 괴팍한 성향까지 지니고 있었다. 결국, 드래프트 지명 순위는 2라운드 후반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코트 위 활약은 지명 순위와 별개였다. 자신을 지나쳤던 팀들을 후회하게 하는 활약을 펼치며 레이커스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년 차였던 1994~1995시즌엔 세드릭 세발로스, 에디 존스, 엘든 켐벨, 블라디 디박과 환상적인 호흡을 과시하며 레이커스를 2년 만에 PO로 이끌었다.

젊은 선수들이 이끄는 레이커스의 화끈한 속공 농구에 언론은 기꺼이 '쇼타임'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레이커스의 리빌딩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비록 1995년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2-4로 패했지만, 엑셀의 활약만큼은 눈부셨다. 생애 첫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반 엑셀은 레이커스의 득점과 어시스트를 주도했다.

반 엑셀은 폭발적인 퍼스트 스텝, 두둑한 배짱 덕분에 반 엑셀은 'NICK THE QUICK', 'NICK AT NIGHT'라는 별명을 얻었다. 185cm에 불과한 신장으로 골 밑 돌파를 두려워하지 않는 반 엑셀은 단시간 내에 리그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로 자리매김했다.

1994~1995시즌, 반 엑셀과 레이커스에 가장 기억에 남을 하이라이트가 생겨났다. '전통의 라이벌' 보스턴에서 열린 보스턴 가든 마지막 원정경기에서 반 엑셀의 극적인 3점 버저비터로 승리를 따낸 것. 반 엑셀의 위닝샷과 함께 레이커스는 장구한 역사가 새겨져 있던 보스턴 가든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1995~1996시즌, 레이커스는 매직 존슨의 깜짝 복귀와 함께 무섭게 치고 나갔다. 엑셀은 시즌 중반 합류한 존슨의 가세로 리딩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줄어든 역할에 대해 불만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존슨이 합류한 레이커스는 우승까지 가능하다는 평을 들으며 조금씩 플레이오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포스트시즌 담금질에 들어가야 할 4월 11일, 덴버와 원정 경기에서 반 엑셀은 심판을 폭행하는 사고를 저지른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탓에 팀 분위기는 일시에 엉망이 됐다. 

폭행 사건은 경기 종료 3분 23초를 남겨두고 일어났다. 경기 내내 심판 판정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반 엑셀은 레이커스가 타임-아웃을 요청하자마자 당시 부심이었던 론 게럿슨 심판을 향해 거칠게 다가갔다. 반 엑셀을 제지하던 팀 트레이너의 만류도 아무 소용없었다. 반 엑셀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왼팔로 게럿슨 심판을 강하게 밀쳐버리자 그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스코어보드 방향으로 쓰러졌다. 반 엑셀은 그 즉시 퇴장 조치를 받았다. 레이커스는 그 경기에서 91-96으로 역전패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반 엑셀은 평정심을 찾지 못했다. "난 석연치 않은 게럿슨 심판의 판정을 비꼬아 'Good Call'이라는 말밖에 건네지 않았다. 그런데 게럿슨은 내게 테크니컬 파울을 부과했다. 그에게 사과할 마음이 있느냐고? 천만에. 게럿슨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면 모를까, 난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며 한참을 씩씩거렸다.

반 엑셀은 7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동시에 19만 달러에 가까운 금전적인 손해도 봤다. 그 해 반 엑셀의 연봉은 190만 달러로 약 1/10에 해당하는 큰 액수였다. 또, 연봉 외의 순수 벌금액이었던 2만5천 달러는 NBA 사상 최고액이었다. 당시 레이커스 사장이었던 제리 웨스트는 "어리석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약 한 달 전, 데니스 로드맨이 테드 버하트 심판을 머리로 받아버린 것. 당시 로드맨은 6경기 출장 정지 및 2만 달러 벌금을 부과받았다. 로드 쏜 NBA 부회장은 "엑셀의 행동은 로드맨보다 더 나쁘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일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로드맨 보다 더 강한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게럿슨의 아버지인 론 게럿슨은 오랜 시간 NBA의 심판으로 활약한 명판관이었다. 거기에 당시 NBA 심판 회장을 역임하고 있던 터였다. 반 엑셀에게 중징계가 내려질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사건 발생 한 달 전, 레이커스엔 골치 아픈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세드릭 세발로스가 4일 동안 별다른 이유 없이 팀을 떠나며 팀 분위기를 와해시켰다. 여기에 반 엑셀의 심판 폭행이 일어난 시기는 플레이오프를 겨우 7경기 남겨둔 때였다. 레이커스의 공동 주장이었던 세발로스와 반 엑셀이 약속이나 한 듯 차례로 말썽을 피웠으니 코칭스태프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매직 존슨의 극적인 복귀 효과가 극대화되지 못했던 이유였다.

반 엑셀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 휴스턴 로케츠와 원정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하지만 징계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플레이오프 4경기 평균 11.8점에 그쳤다. 레이커스는 시리즈 전적 1-3으로 허망하게 물러났다.

1995~1996시즌 후 매직 존슨은 은퇴를 선언했다. 주득점원으로 활약했던 세발로스는 이듬해 팀을 떠났다. 팀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1996년 여름, 레이커스는 샤킬 오닐을 영입하면서 우승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다행히 반 엑셀도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1997~1998시즌에는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도 뽑혔다.

그러나 레이커스와의 인연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시즌 막판 데릭 피셔에게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빼앗긴 끝에 1998년 여름, 트레이드 통보를 받고 말았다. 정들었던 LA를 떠나는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행선지는 폭력 사태를 일으켰던 덴버 너게츠.

이후 엑셀은 댈러스 매버릭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거쳐 2005~2006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NBA 경력을 마감했다. 댈러스 소속이었던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20경기 평균 19.5점 4.1어시스트로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던 반 엑셀은 은퇴 후 어시스턴트 코치로 변신,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24살의 어린 시절, 반 엑셀은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의 쓰디쓴 단면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코트 위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강인한 선수였다. 풍채 넉넉한 40대 아저씨가 된 반 엑셀. 그가 맞이한 '제2의 농구 인생'에 좋은 일만이 가득하길 바란다.

[사진] 닉 반 엑셀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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