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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미수' 유망주에서 ML 전설이 되다

작성일: 2016.01.09 06:00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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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젊은 날의 '생채기'를 극복하고 미국 야구의 전설이 됐다. 실력, 인성을 두루 갖춰 야구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주변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방황했던 한 젊은이는 이제 프로 야구 선수를 꿈꾸는 모든 유망주가 우러러보는 우상이 됐다. '리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윙을 지닌 타자' 켄 그리피 주니어(47)의 이야기다.

일본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츠호치'는 8일 그리피 주니어의 젊은 날을 다루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피 주니어는 7일 '2000년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 마이크 피아자와 함께 명예의 전당 멤버로 선출됐는데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로부터 99.3%의 놀라운 득표율을 얻었다. 시애틀, 신시내티,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에서 22년 동안 빅리그 무대를 누볐다. 통산 630홈런을 때려 이 부문 역대 6위에 자리했다. '5툴 플레이어의 교과서' '빼어난 실력에 겸손한 인성도 갖춘 그라운드의 신사'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러나 그리피 주니어의 삶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피 주니어의 아버지인 켄 그리피 시니어는 빅리그에서 통산 2,143안타를 때린 당대 손꼽히는 스타플레이어였다. 프로에 갓 데뷔한 그리피 주니어에게 '그리피 시니어의 아들'이라는 주변의 기대는 부담스러웠다. 그리피 주니어 자신도 세월이 흘러 한 인터뷰에서 "당시 '그리피 시니어의 아들'이라는 말이 매일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마치 스토커 같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자살 생각까지 했다"며 괴로웠던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생각으로 그치지 않았다. 198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이듬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1988년 1월 그리피 주니어는 진통제 277정을 삼키며 자살을 시도했다. 주변의 기대 어린 시선에 스스로 무너져 버렸다. 병원으로 바로 옮겨져 생명은 건졌지만 야구계는 충격에 빠졌다.

그리피 주니어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사건이 벌어진 뒤 야구에 더욱 매진했다. 1989년 빅리거로 승격했다. 1990년 시즌에는 부자(父子)가 처음으로 한 팀에서 백투백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그리피 주니어는 "놀라운 일이다. 지금 난 행복하다.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며 한때는 관계가 틀어졌던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밝혔다.  

통산 4차례의 홈런왕, 10년 연속 골드글러브, 5번의 올스타 팬투표 1위 등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여러 기록을 만들었다. 젊은 날의 생채기를 이겨 내고 미국 야구의 전설이 됐다. 미국의 한 지역 언론은 '시애틀이란 도시를 알리는 데 결정적인 노릇을 한 2명이 있다. 1993년작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 출연했던 맥 라이언과 야구 선수 그리피 주니어다. 그리피 주니어는 '스타벅스 시대' 이전에 시애틀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고 말한 바 있다. 1999년에 완공된 홈구장 세이프코필드는 '그리피가 지은 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진] 켄 그리피 주니어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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