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수 모두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SSG의 유격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한 박성한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수비에 나갈 때마다 초긴장 상태였다.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두려움은, 첫 풀타임을 맞이하는 젊은 내야수의 어깨와 발을 짓눌렀다. 시야는 좁아질 대로 좁아졌고, 발은 족쇄를 달아놓은 듯 좀처럼 경쾌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수비가 안 된다”라는 따가운 시선에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올해 SSG의 주전 유격수로 거듭난 박성한(23)은 시즌 초반 상황에 대해 “차라리 타구가 내 앞으로 오지 않기를 바랐다. 오더라도 평범한 타구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내 자신을 못 믿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자연히 적극적인 수비가 사라졌다. 실수가 두려워 과감하게 대시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과감하게 1루로 던지지도 못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량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사이, 타자는 그런 박성한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빗맞은 땅볼을 치고 유유히 1루에 걸어 들어가곤 했다. 박성한은 “몸이 한 발 덜 가고, 뭐라고 해야 할까…”라고 잠시 생각하더니 "스스로 소극적으로 바뀌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큰 꿈을 가지고 시작한 시즌이었지만, 위기가 예상보다 너무 일찍 찾아오고 있었다.

“저런 선수 아닌데…” 내부의 동요, 김원형은 박성한을 품었다

박성한은 “움츠려 들었다는 표현도 맞다. 멘탈이 많이 흔들렸다. 결과도 안 나오고 내 뜻대로 안 됐다”면서 “바깥에서는 행동 하나하나에 지적을 했다. ‘내가 정말 못하는 선수인가’, ‘이게 문제인가’라고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 다음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건 강화도의 2군 시설이었다. 1군의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2군에 내려가기 일쑤였던 예전 기억들이 자꾸 생각났다.

박성한은 효천고 시절 아마추어를 대표하는 유격수 중 하나였다. 좋은 기량을 가진 또래 유격수들은 많았지만, 수비 하나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차세대 유격수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SSG는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전체 16순위)라는 높은 순번에서 박성한을 지명했다. 그만큼 기대가 큰 선수였다.

2군에서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수비 기본기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번 1군에 추천이 올라갔다. 2017년 2경기, 2018년 42경기, 2019년 41경기에 뛰었다. 그러나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했다. 막상 1군에 가면 그 수비 기본기가 나오지 않았다. 1군 코칭스태프의 평가는 냉정했고, 얼마 버티지 못한 채 다시 2군에 가기 일쑤였다. 그 과정이 되풀이되며 자신감은 계속 떨어졌다. 2군 코칭스태프의 그 어떤 말도, 좌절을 한껏 맛본 어린 선수에게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올해는 주전 유격수로 키우겠다는 팀의 기본적인 구상 속에 당당히 개막 엔트리에 합류했지만, 시즌 초반 실책이 너무 잦은데다 자신감 있는 수비를 보이지 못했다. 구단 내부에서도 동요가 있었다. 입대 전 그랬듯 이번에도 벽을 못 넘고 2군으로 다시 내려갈 위기였다. 박성한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강화의 2군 시설과 스카우트 팀 또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원래 저렇게 수비를 하는 선수가 아니다. 수비 폭도 넓고, 어깨도 강하다. 수비를 보고 뽑은 선수였는데 심리적으로 너무 흔들리고 있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2군으로 내려가도 할 말은 없는 상황이었다. 공·수 모두에서 팀의 기대치에는 못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2군행은 없었다. 박성한은 개막 엔트리에 합류한 이래 한 번도 2군에 가지 않았다. 1군 코칭스태프는 인내하며 기회를 주기로 한다. 일단 경기력이 떨어져 있으니 선발 라인업에서는 제외하는 일이 있었지만, 훈련과 격려로 박성한의 자신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 시즌 초반 흔들렸던 박성한은 꾸준히 1군에 머물며 공수 모두에서 계속 발전하고 있다 ⓒSSG랜더스
김원형 SSG 감독부터 박성한의 전략적 가치와 잠재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1군 감독으로서는 어쩌면 엔트리의 한 자리를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유격수 포지션에서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잊지 않고 있었다. 자신감을 조금 더 찾으면 한결 나은 선수가 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2군에 내리는 대신, 수비에서 더 많은 훈련을 하게끔 전담 코치까지 배정하며 힘을 줬다. 더 이상 2군에서 할 일은 없다고 믿었고, 또 선수를 믿었다.

박성한은 최근 활약의 결정적인 원동력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뽑는다. 주위의 진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 시간이 이어지며 심리적인 압박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박성한은 “코치님들이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찾아 주려고 하신 부분도 있었겠지만, 나는 오히려 주변의 코치님들과 선배님들이 한 마디씩 해주는 말이 더 자신감을 찾았던 것 같다”면서 “그러다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못하면 2군에 가는 것밖에 더 있겠나’고 했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해보자고 다짐했다”고 떠올렸다.

항상 좋은 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박성한은 “최정 선배님과 김성현 선배님의 말씀이 많이 도움이 됐다. 이야기를 안 해주신 선배님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한 마디씩이라도 엄청 많이 해주신다”면서 “항상 좋은 말만 해주는 건 아니고, 안 됐을 때는 따끔하게 말을 해주신다. 거기서 정신도 많이 차렸다”고 했다. 그렇게 1군의 분위기를 느끼는 과정에서 박성한은 어느덧 ‘1군 선수’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육성의 완성은, 결국 1군이 한다

그 다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공·수 모두에서 1인분을 못했던 이 경험 적은 유격수는, 이제 리그에서 가장 핫한 유격수가 됐다. 박성한은 24일까지 시즌 109경기에서 타율 0.306, 3홈런, 33타점, 10도루를 기록하며 SSG 차세대 유격수로 완전한 공인을 받았다. 아직 규정타석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팀 공헌도는 리그의 그 어떤 유격수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다. 박성한에 비판적이었던 팬들은, 어느덧 그에게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있다. 만 23세의 군필 내야수다. 환호성이 들릴 수밖에 없다.

박성한을 키운 믿음은 국군체육부대(상무) 시절에도 있었다. 박성한은 1년 반 남짓한 상무 생활을 돌이켜보며 “많이 부족한 실력이었고, 상무에서 실수도 많이 했다.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상무에서 잘한 게 아니다. 오히려 못한 수준이다. 그러나 감독님이 기회를 너무 많이 주셨다. 많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계속 믿고 써주셨고, 경험도 많이 쌓였다”고 했다. 

꾸준히 경기에 나가면서 타격과 수비 모두 정립이 되기 시작했다. 올해 ‘3할 유격수’의 타격은, 상무 시절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해봤던 박성한의 노력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상무 시절 멀리 치고 싶어서 코디 벨린저(LA 다저스)의 폼도 따라해봤다”고 웃는 박성한은 “많은 것을 해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해보고 아니면 버리고, 맞으면 계속 갔다. (SSG) 코치님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폼을 수정해나갔다. 지금 폼이 훨씬 좋다”고 했다. 

수비는 최근 어이없는 실책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안정됐다. 좌우 폭이 넓어졌고, 상황을 판단할 줄도 안다. 강한 손목 힘과 어깨에서 나오는 송구는 1루수를 향해 똑바로 가기 시작했다. 그는 “실수도 자신감 있게 실수하는지, 어정쩡하게 실수를 하는지의 차이가 있다. 더 과감하게 하려고 한다. 결과를 신경 쓰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1군 코칭스태프와 선배들의 격려와 조언, 과감한 기용은 주전 유격수 박성한을 만들어냈다 ⓒSSG랜더스
그런 박성한은 “공격과 수비 두 개 다 잘하면 좋다. 수비를 잘해도 기분은 좋은데 방망이 잘 치면 더 좋더라. 감독님이랑 다른 분들이 바라는 건 수비 잘하는 것들이지만 방망이도 잘 치고 싶다. 두 개 다 가지고 싶다”고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다. 이처럼 박성한은 자신의 플레이를 조금 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보고 또 다음 목표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잃었던 웃음도 되찾았다.

물론 앞으로 고비가 계속 찾아오겠지만, 1군 정착기에서 느낀 고비를 생각하면 성장통의 파동이 작을 수도 있다. 이처럼 박성한이라는 ‘3할을 칠 수 있는 유격수’를 키워내고 있는 건 SSG의 육성 전략에도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유망주들의 훈련을 시키는 건 주로 2군에서 담당하지만, 1군의 믿음과 과감한 기용이 없다면 육성은 완성되지 않는다. 박성한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원형 감독과 1군 코칭스태프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명제를 증명했다.

SSG가 그간 육성이 안 됐던 건 여러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성적이 좋다보니 드래프트에서 후순위로 밀렸고, 황폐화에 가까워진 인천 팜의 사정과 맞물려 좋은 자원들을 수집하지 못했다. 육성 시스템이 주먹구구처럼 보였던 시절도 있었다. 2군의 시설과 코칭 시스템은 타 팀에 비해 약했고, 심지어 1군의 프런트 오피스는 정교한 전략이 없었다.

여기에 1군이 이 포장지를 ‘까보는 데’ 소극적이었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좋은 활약을 펼쳐 2군에서 추천이 올라간 선수들을 쓰는 것에 인색했다. 그래프가 정점이었을 때가 아닌,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시점에 콜업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물며 1군에 올라가면 벤치만 달궜다. 경기 감각이 유지될 리 없었고, 그 상황에서 경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2군으로 다시 내려간 유망주들이 한 트럭이었다. 이 유망주들은 좌절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씩 달라진 점이 보인다. 김원형 감독부터 피드백이 계속 빨라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가능성을 보여준 외야수 이정범(23)의 사례도 상징적이다. 준비가 됐을 때, 추천을 받았을 때 바로 1군에 올렸고 그 다음 날 바로 선발 라인업에 들어갔다. 첫 경기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밀어붙였고, 이정범은 외국인 선발들을 상대로 인상 깊은 성과를 남겼다. 24일 인천 롯데전에 선발로 나선 신인 조병현도 그런 절차를 밟은 케이스다. 

사실 유망주들은 베테랑만큼 성적을 담보할 수 없다. 한 타석이 아까운 시즌 막판에는 소극적인 운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유망주가 1군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2군이 아닌, 1군에서 써봐야 알 수 있다. 육성의 시작은 2군에서 하지만, 완성은 1군이 한다. 올해 SSG가 얻은 최고의 교훈이다. /SSG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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