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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리포트] '인간 승리' SK 박정배가 그리는 그림

작성일: 2016.02.19 12:00 박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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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오키나와(일본), 박현철 기자] “나이가 들고 시간이 갈수록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 만큼 정확하게 던질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야구가 생각대로 되는 것이 쉽지 않으니 그래도 정확한 쪽에 가깝게 던지려고 노력한다고 해석해 주세요.”

셋업맨으로 재기를 노리는 박정배(34, SK 와이번스)는 말 그대로 인간 승리 주인공이다. 한양대 3학년 시절 야구가 잘되던 순간 불의의 낙상 사고 때문에 왼 발목이 으스러질 정도로 심각하게 다쳤다. 야구를 할 수 있을지는 물론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부상이었으나 그는 열심히 치료하고 야구에 매달려 프로에 갔다.

2005년 두산에서 데뷔해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어렵게 온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며 은퇴 위기에 몰렸다. 2011년 전력분석원 제의를 거절하고 방출된 뒤 SK에 입단해 비로소 성공하나 싶은 순간 이번에는 어깨 부상이 찾아와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착한 선수에게 큰 시련이 계속 찾아왔으나 신념과 성실한 자세로 그 파도를 모두 헤쳐 갔다. 그래서였을까. 아직도 박정배는 “새 시즌을 앞두고 새 유니폼을 받을 때마다 뿌듯하고 소중하다”며 초심을 간직하고 있다.

18일 일본 오키나와 우라소에 시민구장. 박정배는 경기 투입 예정이 없던 동료 투수들과 3루 관중석에서 SK와 야쿠르트의 연습 경기를 지켜봤다. 올해 박정배는 FA 이적한 윤길현(롯데)을 대신해 셋업맨 자리를 채울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2014년 8월 어깨 수술을 받고 생각보다 빨리 실전에 복귀하며 지난해 24경기 2승 2패 2홀드 평균자책점 5.33을 기록한 박정배에게 2016년은 제대로 된 재기의 무대다. 박정배는 2013년 38경기 5승 2패 14홀드 평균자책점 1.65를 기록하며 특급 셋업맨으로 활약한 바 있다.

“수술 후 마음 먹은 대로 재활이 잘돼서 좋았는데 공백기는 무시 못 하겠더라고요.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해 아쉽고. 그래서 이번에는 마무리 캠프부터 어깨 보강 운동을 착실하게 했습니다. 아직은 불펜 피칭 연투는 안 하고 있고 최다 70구 가까이 던졌습니다. 청백전에서 실전은 치렀고. 별 탈 없이 몸을 만들고 있어요.”

2015년 10월 7일 SK의 마지막 경기였던 넥센과 와일드카드 결정전. SK의 마지막 투수는 박정배였다. 박정배는 연장 11회말 2사 만루에서 대타 윤석민을 내야 뜬공으로 처리하는 듯했으나 달려들어 잡으려던 유격수 김성현이 이를 잡지 못하면서 4-5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김성현도 박정배도 모두 운이 없는 순간이라 마음이 아플 법했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들이 모두 더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가을 야구인데 단 한 경기로 시즌이 끝나니 허무하고 아쉽더라고요. 물론 지금도 모든 팀들이 가을 야구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똑같지만. 지난해 좋은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해서 아쉽고 올해도 같이 뛰었으면 좋았겠지만 야구는 한두 명만 믿고 가는 종목이 아니잖아요. 함께 또 똘똘 뭉쳐서 좋은 결과 낼 수 있도록 해야지요.”

셋업맨으로 보여 준 성과가 있어 박정배가 유력한 셋업맨 후보 가운데 하나라고는 하지만 아직 알 수 없다. 뚜껑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정배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베테랑이다. 던지고 나서 체력을 회복하는 속도나 순발력이 20대 시절과는 또 다르다.

“셋업맨을 하겠다, 마무리를 하겠다, 중간 계투를 하겠다. 그런 특별한 목표는 없어요. 그저 팀에서 기회를 주시면 1이닝은 제대로 막는 것이 우선입니다. 제 공을 정확한 코스로 던지고 싶어요. 체력 회복 등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기는 하는데 약해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운동을 안하면 다른 선수에게 밀리겠다는 위기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예전보다 운동을 더 하고, 여의치 않아도 하던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운동만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베테랑들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보다 구체적으로 하는 편이다. 젊은 유망주들의 이미지 트레이닝이 '어떤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것이라면 베테랑들은 '주자는 어디에 있고 아웃 카운트는 이러한데 어떤 공을 던지고 어떤 공을 쳐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들어간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선수가 성공할 수 없는 종목이다.

“어깨 재활을 할 때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어요. 그때는 그저 다시 공을 던질 수 있었으면 하는 정도라 복귀했을 때 제 스스로도 뭉클했고.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 상황에서 저라면 어떻게 던질까. 어느 코스로 어떤 구종을 던질까.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제가 머릿속에 그려 넣은 그림에 얼마나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느냐. 올해는 그렇게 그림처럼 정확히 던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답변을 듣고 '생각대로 되는 것을 바라는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수많은 스포츠 가운데 야구는 생각대로 하기가 가장 어려운 종목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박정배는 “생각대로 한다기 보다 그림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정확하다는 개념으로 볼 수 있겠네요”라고 말했다. 야구 인생 동안 생각대로 되지 않는 시련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계획에서 살짝 어긋나더라도 유연하게 자신이 그린 그림에 맞춰 가겠다며 웃었다.

[영상] 박정배 인터뷰 ⓒ 영상취재 오키나와(일본), 송경택.

[사진] 박정배 ⓒ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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