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한국 리듬체조 역사에서 손연재(22, 연세대)가 이룩한 성과는 절대 적지 않다. 리듬체조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그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수없이 달았다. 그는 최고 선수 반열에는 아직 오르지 못했다. 리듬체조 강국인 러시아 선수가 장악하는 리듬체조 무대에서 아시아 선수가 상위권에 오르는 일은 보기 힘들었다.

손연재는 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막을 내린 2016년 리듬체조 모스크바 그랑프리 개인종합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후프 종목에서 은메달을 추가했고 볼과 리본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모스크바 그랑프리는 국제체조연맹(FIG)가 아닌 러시아체조연맹이 주관하는 대회다. FIG 월드컵 시리즈와 비교해 위상은 떨어진다. 그러나 리듬체조 최강국인 러시아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다. 세계적인 기량을 갖춘 러시아 선수들이 많이 참가하기 때문에 대회 수준은 월드컵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다.

본격적인 월드컵 시리즈를 앞두고 열린 이번 모스크바 그랑프리는 경쟁이 치열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한 야나 쿠드랍체바(18, 러시아)는 이번 대회에 불참했다. 그러나 쿠드랍체바와 현역 최고 선수로 평가 받는 마르가리타 마문(20)과 '신성' 알렉산드라 솔다토바(17) 그리고 '쌍둥이 기대주' 디나 아베리나와 아리나 아베리나(이상 17, 러시아)가 출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손연재와 오랫동안 메달 경쟁을 펼친 멜리티나 스타니우타(23, 벨라루스)도 출전했다. 선수들의 수준을 볼 때 손연재의 메달 획득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손연재는 개인종합부터 종목별 예선까지 모두 18점을 넘어서며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업그레이드한 포에테 피벗과 댄스 스텝

손연재의 장기 가운데 하나는 포에테 피벗이다. 지난해 손연재는 한쪽 다리를 구부리며 회전했다. 또한 시즌 막판에는 포에테 피벗의 축이 자주 흔들렸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손연재는 이 기술을 보완했다. 한층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한쪽 다리를 곧게 편 상태에서 회전했다. 또한 이번 대회에서는 회전할 때 축이 흔들리지 않았다.

손연재는 상위권 선수와 비교해 자신의 이름을 딴 독창적인 기술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하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다른 선수들의 다이내믹한 프로그램과 비교해 밋밋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손연재가 던진 카드는 댄스 스텝이다. 기술과 안무 사이에 경쾌한 댄스 스텝을 넣었다. 올 시즌 손연재의 프로그램은 지난해와 비교해 역동적이고 경쾌하게 변했다. 동메달을 획득한 리본 프로그램 곡은 '탱고'를 선택했다. 그동안 여성스럽고 정적인 이미지를 털어 내고 강렬한 연기를 펼치는 데 성공했다.

손연재는 이번 대회 전 종목에서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반면 아직 새 프로그램에 녹아들지 않은 경쟁자들은 실수로 무너졌다. 모스크바 그랑프리에서 손연재는 행운도 따랐다. 개인종합에서 마문이 후프와 리본에서 실수하지 않았다면 손연재가 은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은 작았다. 스타니우타도 실수가 없었다면 개인종합 메달 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컸다.

손연재는 지난달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국가 대표 선발전에서 "앞으로 댄스 스텝을 꽉꽉 채우겠다. 1초라도 빈 곳이 없게 템포를 빠르고 알차게 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 올림픽 준비를 위한 강한 정신력

손연재는 어린 시절부터 '악바리' 소리를 들었다. 부상이 있는 상태에서 그는 훈련을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냈다. 누구보다 '노력형'이었던 그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을 안고 있다. 이번 모스크바 그랑프리에서도 양쪽 발목에 테이핑을 하고 경기를 했다.

자신을 둘러싼 논란도 많았다. 그러나 강한 정신력으로 이를 이겨 냈고 2010년 시니어 무대 데뷔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을 걸어왔다. 손연재는 개인종합을 마친 21일 자신의 SNS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그는 "마지막 그랑프리 감사합니다. 이제 시작이니까 끝까지 파이팅"이라는 글을 올렸다.

손연재는 아직 공식적으로 은퇴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는 출전하지 않을 모스크바 그랑프리를 마친 손연재는 '마지막 올림픽'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이번 대회에서 개인 최고 점수를 받은 그는 올 시즌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올림픽이 열리는 8월까지 큰 부상을 피하고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다. 또한 자신의 말대로 새 프로그램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것도 그의 목표다.

모스크바 그랑프리에서 '메달 풍년'을 일궈 낸 손연재는 핀란드로 이동한다. 그는 오는 26일 핀란드 에스포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에 출전한다.

[사진1, 3, 4] 손연재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사진 2] 모스크바 그랑프리 후프 종목 시상식 손연재(왼쪽) 알렉산드라 솔다토바(가운데) 살로메 파즈하바 ⓒ 유튜브 화면 캡쳐

[사진5] 손연재 ⓒ 갤럭시아에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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