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석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노소연 인턴기자] FA 보상 선수는 선수를 내준 팀에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반대로 원치 않게 팀을 옮긴 선수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보상 선수 이적 후 빛을 본 선수들에게는 '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보호 명단 밖에 있던 선수가 대박을 쳤다는 뜻인 동시에, 지금까지 보상 선수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동안 '보상 선수의 기적'이라 불렸던 이는 여럿이지만 이 선수만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든 선수는 찾기 어렵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원석

2008년 시즌을 마친 뒤 FA 시장에서 대형 이적이 있었다. 홍성흔이 두산을 떠나 롯데로 팀을 옮겼다. 그런데 아직도 회자되는 이적은 홍성흔보다 '보상 선수 이원석'이다. 주축 타자를 잃은 두산은 보상 선수로 내야수 이원석을 선택했고, 이 결정은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보상 선수 성공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원석은 2005년 드래프트 2라운드 9순위로 롯데의 지명을 받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롯데에서는 잠재력을 다 꽃피우지 못했다. 4년간 369경기는 고졸 유망주에게 적지 않은 숫자였지만 보호 명단에서는 밀려났다. 

이원석은 두산 유니폼을 입은 첫해 타율 0.298를 기록했다. 보호 명단에서 제외돼 팀을 옮긴 선수가 주전 3루수로 자리를 굳히며 '보상 선수 출신'이라는 것조차 잊게 만들었다. 두산에 녹아든 이원석은 2009년부터 2016년까지 617경기에 나와 타율 0.272, 50홈런 250타점을 올렸다.

보상 선수에서 주전으로 발돋움한 선수가 FA 이적까지 해냈다. 이원석은 2016년 시즌을 마친 뒤 삼성 라이온즈와 4년 27억원에 계약했다. 이원석은 두산을 떠났지만 '이원석 효과'는 이후 2020년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원석이 삼성으로 이적하자 두산은 포수 이흥련을 보상 선수로 지명했다. 두산은 양의지-박세혁-최재훈이라는 수준급 포수를 셋이나 보유한 상태에서 경찰청 입대가 예정된 이흥련을 데려와 안방을 두껍게 했다. 최재훈은 이듬해 한화로 트레이드됐다. 

이흥련은 전역 후 두산에서 '대박'을 치지는 못했다. 대신 SK 와이이번스(현 SSG)로 트레이드되면서 '윈윈' 효과를 가져왔다. 두산과 SK는 2020년 이흥련 김경호-이승진 권기영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흥련은 '넘버2' 백업으로 이재원을 도왔고, 이승진은 유망주에서 필승조로 떠오르며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힘을 보탰다. 

▲ 왼쪽부터 이형범-박계범-강승호 ⓒ곽혜미 기자

▶ 보상 선수 주전 또 있다

이원석 이후로도 두산은 보상 선수 지명으로 주전급 선수를 여럿 건졌다. 양의지 이적 후 이형범을 지명해 마무리투수로 기용했다. 심지어 2021년 시즌에는 주전 키스톤 콤비가 전부 보상 선수였다. 최주환 이적 후 비난을 무릎쓰고 데려온 강승호가 주전 2루수를 꿰찼다. 오재일 보상 선수 박계범은 김재호의 백업을 넘어 주전 유격수가 됐다. 

임기영은 KIA의 인내심이 낳은 스타다. 임기영은 상무 입대를 앞둔 시점에서 송은범의 보상 선수로 팀을 옮겼다. 제대하자마자 선발 로테이션에 안착하며 KIA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2017년에만 두 차례 완봉승 포함 8승 6패 평균자책점 3.65를 기록했고, 처음 경험하는 포스트시즌 경기가 한국시리즈였는데도 5⅔이닝 무실점으로 대활약했다. 이후 꾸준히 선발로 나서며 2020년 9승 10패 평균자책점 5.15, 올 시즌은 8승 8패 평균자책점 4.88을 기록했다.

임기영에 앞서 포수 한승택이 있었다. 임기영보다 1년 앞서 2014년 이용규 FA 이적 보상 선수로 KIA 유니폼을 입게 됐다. 전역 후에는 주전 포수였던 김민식과 주전 경쟁을 펼칠 만큼 입지를 넓혀갔다. 

FA로 선수가 빠지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그래도 고심 끝에 선택한 보상 선수가 팀에 자리 잡아 활약하면 다 잊을 수 있다. 22일 운명이 바뀐 삼성 김재성과 NC 강진성도 또 하나의 보상 선수 성공신화를 기대하고 있다.

▲ 왼쪽부터 임기영-한승택 ⓒ스포티비뉴스DB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