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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 이슈] 이젠 대통령까지…정치를 만난 축구 선수들

작성일: 2017.12.29 11:00 조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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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웨아
[스포티비뉴스=조형애 기자] 축구 선수가 평생 축구 선수만 하고 살 순 없다.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선 각자의 삶을 꾸린다. 대게는 지도자를 택한다. 선수들을 육성하고 성공을 지켜본다. '변신'을 꾀하는 선수들도 많다. 그 가운데는 가족의 삶을 넘어,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도 있다. '정치'를 택한 이들이다.

정치인이 된 축구 선수 중에 이제 대통령까지 나왔다. 아프리카 축구 전설 조지 웨아(52)가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됐다.

웨아는 29일(한국 시간) 결선 투표 끝에 조지프 보아카이 부통령을 제치고 라이베리아 대권을 잡았다. 그는 12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난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 뒤를 이을 예정이다.

웨아는 파리 생제르맹, AC밀란, 첼시, 맨체스터 시티 등에서 뛴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스트라이커다. 1995년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축구 선수 개인이 받는 최고 영예의 상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아프리카 축구 선수상은 3번(1989, 1994, 1995)이나 받았다. 축구 선수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정치를 택했다. 그때가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끝난 뒤다.

그는 2005년 처음 대권을 꿈꿨다. 하지만 엘렌 존슨-설리프에 패하여 당선되지 못했다. 현지 많은 정치 전문가들은 웨아의 얇은 정치적 기반과 '짧은 가방끈'을 낙선 이유로 들었다. 웨아는 이후 꾸준히 정치인의 길을 걸으며 기반을 다졌다. 학업도 병행해 디브라이 대학교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통령 두 번째 도전은 성공했다. 그는 '안전하고 통합된 라이베리아'를 외치고 있다.

정치인이 된 축구 선수 가운데 역시 '브라질 전설' 호마리우를 빼 놓을 수 없다. "나는 천재다", "신은 골로 하여금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나를 창조했다"고 말하는 축구계 유명한 '유아독존' 캐릭터인 그의 정치 인생. 역시 순탄하다. 2010년 정치에 입문한 뒤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 호마리우

지안니 리베라는 축구 인생과 버금가는 정치계 발자국을 남겼다. 리베라는 AC밀란의 전설로, 1969년 AC 밀란 선수 최초 발롱도르를 품에 안은 선수. 그는 은퇴 후에 부구단주가 돼 구단 경영에 힘을 쏟다 1986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밀란을 인수하자 팀을 떠났다. 그리고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조용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던 그의 정치 선언에 많은 관계자들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리베라는 2001년 국방부 차관까지 역임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우크라이나에는 두 사례가 유명하다. 먼저 1975년 발롱도르 수상자이자 디나모 키예프 최다 득점자(266골)인 올레흐 블로힌이다. 그는 1998년과 2002년, 2회에 걸쳐 우크라이나 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엔 축구인으로 돌아와 2006 독일 월드컵 우크라이나의 8강 신화를 썼다.

블로힌이 지도했던 우크라이나 축구 스타 안드레이 셰브첸코도 정치에 발을 딛은 적이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감독이기도 한 그는 1990년대부터 우크라이나 사회 민주당을 공개 지지 선언하는 등 정치적인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은퇴를 한 뒤에는 우크라이나-전진 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정당 득표가 1.58%에 그쳤기 때문이다.

▲ 로만 파블류첸코
현역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정치인을 꿈꿨던 이들도 있다. 로만 파블류첸코안드레이 아르샤빈이다. 유로 2008에서 맹활약한 러시아 공격수 파블류첸코는 2008년 토트넘 핫스퍼에 입단하기 전 정치인이 됐다. 블라드미르 푸틴이 이끌던 통합 러시아당 후보로 출마해 높은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정치인이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참으로 솔직했다. 그는 "국제 금융 위기가 자신의 연봉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블류첸코와 러시아 대표 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아르샤빈의 정치 인생은 짧았다. 그는 2007년 통합 러시아당 입후보를 발표했지만 곧 후보직을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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