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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 in 피플] 김연아-박태환 뒤를 잇는 '정현 신드롬' 어떻게 봐야 하나

작성일: 2018.01.25 05:30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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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호주오픈 8강전에서 포핸드를 치고 있는 정현 ⓒ GettyIimages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요즘 어딜 가나 정현(22, 한국체대, 삼성증권 후원) 이야기가 화제입니다. 국가 대표 팀이나 특정 구단이 아닌 한 운동선수가 이렇게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4대 프로 종목(야구 축구 농구 배구)이 아닌 아마추어 종목 선수 가운데 국민적인 인기를 누린 이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28)와 수영의 박태환(29, 인천시청)입니다. 한때 '여름 소년, 겨울 소녀'라는 타이틀로 이들이 등장한 CM도 있었습니다. 이 광고 회사는 당시 두 선수를 모두 지원하던 스폰서였죠.

김연아는 2004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뒤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동갑내기 라이벌'로 불린 아사다 마오(28)는 이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이들의 질기고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서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년 뒤 2005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김연아가 아사다를 제치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죠.

그 다음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아는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당시 여자 싱글 최고 점수였던 228.56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피겨스케이팅뿐만이 아닌 한국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잠시 은반을 떠나 한숨을 돌린 김연아는 2012년 여름,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출전 의사를 밝혔습니다.

▲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 '레미제라블'을 연기하고 있는 김연아 ⓒ GettyIimages

그리고 소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물론 스포츠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한 명의 스포츠 영웅이 퇴장했습니다.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올랐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은메달을 땄습니다.

수영 불모지인 한국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는 점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쌓아 올린 공든 탑이 2015년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인 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한때 국민 영웅이었던 박태환은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여전히 선수로 남은 박태환은 올해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출전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 박태환 ⓒ 스포티비뉴스

이들 이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국제 대회에서 엄청난 일을 해낸 이가 등장했습니다. 정현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복식에서 임용규(28, 당진시청)와 짝을 이뤄 금메달을 땄습니다. 당시 18살 소년이었던 정현에게 기대를 건 테니스 관계자들이 많았습니다. 한 분은 "지금까지 본 선수 가운데 특별한 재능이 정현에게는 있다"며 칭찬했습니다.

정현이 빛을 보는 날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우선 세계 남자 테니스의 벽은 매우 높습니다. 어린 선수들은 우선 국제테니스연맹(ITF) 퓨처스 대회에서 경험을 쌓습니다. 이후 프로 테니스 무대인 챌린지 투어와 공식 프로 무대에 나섭니다. 선수에 따라 이 과정이 길게 가는 선수가 있고 초고속으로 ATP나 여자 프로 테니스(WTA) 투어에 도전장을 던지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정현은 2013년 5월 퓨처스 투어에서 처음 우승했습니다. 퓨처스 무대에서 4번 정상에 오른 뒤 이듬해 챌린저 투어에 도전했습니다. 지난해까지 정현은 챌린저 투어에서 8번 우승 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ATP 투어에 꾸준히 출전해 경험을 쌓은 점도 정현의 성장에 밑거름이 됐습니다.

정현이 세계무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 대회는 2016년 호주오픈입니다. 놀랍게도 당시 정현의 세계 랭킹은 51위입니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올해 호주오픈에서 정현의 세계 랭킹 그때보다 7계단 낮은 58위입니다. 이 경기에서 정현은 세트스코어 0-3으로 졌습니다. 정현은 2년 뒤 이 대회 16강전에서 조코비치와 재회했습니다. 그리고 보기 좋게 3-0으로 설욕했죠.

▲ 2012년 US오픈 유소년부에서 경기하고 있는 정현 ⓒ GettyIimages

정현의 성장 원인에 대해 많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정현이 급성장하면서 화제의 인물이 된 이는 현 코치인 네빌 고드윈(43, 남아공)입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많이 키워낸 고드윈 코치의 족집게 과외가 정현의 눈을 뜨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동의하는 이도 있고 인정하지만 선수의 전체적인 성장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도 있습니다. SPOTV 테니스 해설위원인 박용국 NH농협 단장은 스포티비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정현은 특정 코치의 지도력보다 세계적인 수준에 맞춰 다양한 지도를 받고 경험을 쌓은 점이 성장의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박 단장은 "정현은 일본의 다케시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밸런스가 좋아졌다. 윤용일 코치에게도 배운 점이 있었고 지금은 고드윈 코치와 손승리(43) 코치를 영입하면서 또 성장했다. 이런 과정이 성장에 조화를 이뤘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정현에게 큰 영향을 준 이는 가족입니다. 정현은 테니스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아버지 정석진 씨는 전 삼일공고 감독을 지냈고 형 정홍(25)도 테니스 선수죠. 막내 정현은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와 친숙하게 성장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정현이 테니스에 흥미를 느끼고 즐겼다는 점입니다.

▲ 2018년 호주오픈 16강전에서 노박 조코비치를 이긴 뒤 관중석에 앉은 부모님에게 큰절을 하는 정현 ⓒ GettyIimages

이렇듯 정현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최고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김연아와 박태환 처럼 '재능'과 '노력'을 모두 겸비한 점도 비슷합니다.

정현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스폰서(삼성증권)와 매니지먼트사(IMG)의 지원입니다. 김연아와 박태환도 뒷바라지를 해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영광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테니스는 경제적인 지원 없이는 선수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종목입니다. 많은 선수들은 이 문제로 중도에 운동을 포기하거나 꿈을 접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정현은 행운도 따랐습니다.

정현은 지난해 11월 열린 ATP 투어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에서 우승했습니다. ATP 투어에서 처음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11월 17일 정현은 모교인 한국체육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정현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꼭 달성하고 싶다. 많은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의 목표는 매우 빨리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정현은 그랜드 슬램 우승에 대한 각오를 드러낸 뒤 두 달이 지난 현재 호주오픈 4강에 진출했습니다. 정현의 말투는 냉철한 경기 스타일과 비슷합니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 차분한 저음의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술술 풀어냅니다. 어딘지 친근하게 보였던 22살 청년은 두 달 전과 비교해 훨씬 거대한 존재가 됐습니다.

이번 대회가 시작되기 전 그에게 어울리는 명칭은 '한국 테니스의 간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 선수로 군림한 니시코리 게이(28, 일본, 24위)의 아성에 도전하는 선수가 됐습니다. 호주오픈이 끝나면 정현의 세계 랭킹은 니시코리를 앞지를 가능성이 큽니다.

▲ 2015년 ATP 투어 상하이 롤렉스 마스터스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정현(왼쪽)과 니시코리 게이 ⓒ GettyIimages

이런 점을 볼 때 정현은 김연아와 박태환 이후 등장한 새로운 '스포츠 영웅'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매우 빡빡한 일정 속에서 치러지는 테니스의 특징입니다. 한 테니스 관계자는 "테니스는 비시즌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라고 밝혔습니다.

피겨스케이팅은 선수 생명이 짧고 이변이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김연아는 2006년 시니어 무대 데뷔 이후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까지 최고 정점에 있었습니다. 그가 공백기를 이겨내고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점은 매우 놀라웠습니다. 김연아가 은퇴한 뒤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까닭은 '실망스러운 경기'를 좀처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테니스는 한 시즌 동안 무수히 많은 경기가 펼쳐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 생명도 길어지고 있죠. 그래서 상승곡선과 하향곡선은 늘 공존합니다. 그 대단한 페더러와 나달, 조코비치도 코트에서 항상 잘했던 것은 아닙니다. 해외 테니스 팬들과 비교해 국내 팬들은 쉽게 뜨거워지고 빨리 식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현과 조코비치의 16강전이 열린 멜버른 파크 로드레이버 아레나의 관중석에는 조코비치의 팬들이 많았습니다. 조코비치는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지난해 하반기 투어에 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기다린 응원의 함성은 여전했습니다. 지금은 새롭게 탄생한 스포츠 스타에 모두 열광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경기보다 앞으로 할 경기가 많은 정현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인내'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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