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키워드 키워드 기준 i금일 기준 많이 본
뉴스 기사의 키워드 수집

스포츠 기자가 고 최은희 원로 배우를 추억하는 까닭은?

작성일: 2018.04.17 11:15 장우영 기자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원로 배우 최은희가 세상을 떠났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원로 배우 최은희 선생이 16일 오후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은 20064월 평생의 영화계 동지이자 배우자였던 신상옥 감독을 떠나보낸 뒤 건강이 악화됐고 타계하기 전까지 신장 관련 투병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이 한국 영화계에 남긴 업적은 여러 매체에 소개된 필모그래피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고인은 글쓴이에게 전쟁 영화 그리고 그 영화 주제가로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글쓴이가 초등학교 때 본 신상옥 감독 연출, 남궁원, 최무룡, 신영균, 최은희, 윤인자 주연의 빨간 마후라는 글쓴이 눈으로는 그 무렵 최고의 전쟁 영화였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5인의 해병등 전쟁 영화와는 다른, 정말 재미있고 신나는 영화였다.

신세대 팬들에게 2000년대 후반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이 영화를 잠시 소개한다.

▲ 세상을 떠난 원로 배우 고 최은희가 출연한 영화 '빨간 마후라'. 사진|'빨간 마후라' 포스터

이 영화는 1964년 작품이다. 전쟁 영화이지만 최무룡이 선배 장교인 남궁원이 전사한 뒤 그의 아내인 최은희를 사랑하게 된다는 러브 스토리가 깔려 있다.

50년이 넘은 시절 영화이니 얼핏 들으면 북한 말 같은 과장된 억양의 대사도 있고, 신세대들에게는 낯선 '괴뢰군'이라는 용어도 나오지만 최무룡이 자신의 고향인 함경남도 안변을 폭격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장면에서는 북한 출신인 신상옥 감독의 의식 세계가 언뜻 비치기도 한다.

▲ 원로 배우 고 최은희가 출연한 영화 '빨간 마후라'. 사진|'빨간 마후라' 스틸

당시로는 획기적인 F-86 등 제트기의 공중전 장면, 미니어처를 이용한 다리 폭격 장면 등은 신상옥 감독의 영화적 재능을 보여 준다. 적진에 비상 낙하한 최무룡을 수송기로 구출해 내는 장면은 극적이기도 하다.

신영균은 이 영화로 아시아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받았고, 이 영화는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기도 했다. 신상옥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당시 일반적으로 소요되는 34만 자[]가 아닌 10만 자의 필름을 썼다고 한다. 영화를 찍는 동안 필름이 떨어져 암시장에서 사오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 원로 배우 고 최은희가 출연한 영화 '빨간 마후라'. 사진|'빨간 마후라' 스틸

이 영화는 서울 명보극장에서만 20여만 관객을 동원했는데 그 무렵 서울시 인구가 250여 만 명이었다요즘처럼 전국 200여 개 극장 스크린에 동시에 거는 방식이라면 수백만 명은 쉽게 동원했을 것이다. '천 만 관객리스트에 올랐을 수도 있다.

영화를 보지 못한 신세대 독자들은 빨간 마후라라는 영화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할 듯하다. 알려진 대로 '빨간 마후라'는 전투기 조종사의 상징이고 이 영화에서는 사랑과 충성, 우정을 아우르는 상징물로 그려지고 있다.

▲ 원로 배우 고 최은희가 출연한 영화 '빨간 마후라'. 사진|'빨간 마후라' 포스터

그리고 빨간 마후라의 주제곡은 지금처럼 축구 국가 대표 팀을 위한 특별한 응원가와 응원 구호가 없던 1960, 70년대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올림픽과 월드컵 지역 예선 같은 큰 경기에서 응원가로 불렸다. 그때는 응원이 참 투박했다. 신나는 응원가도 없었다. 화려한 응원 도구도 없었다.

한국 선수들이 상대 진영으로 밀고 들어가면 그냥 "~"하고 소리 지르는 게 고작이었다. 요즘처럼 응원을 조직적으로 하지 못해 한 차례 함성을 지르고 나면 그 다음엔 조용했다.

어떻게 해서든 힘을 모아 응원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빨간 마후라',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 같은 대중가요였다. 한국이 골을 넣거나 일방적으로 공격해 신나면 함께 불러 보자는 것이었다.

대한축구협회 직원들이 등사(謄寫)한 악보를 경기장 출입구에서 관중들에게 나눠 줬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빠른 템포의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는 그런대로 리듬감이 있었지만 '빨간 마후라'는 영 아니었다. 두어 차례 불러 봤지만 역시 썰렁했다. 아래 가사를 느린 행진곡 풍으로 불렀으니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석양을 등에 지고 하늘 끝까지, 폭음이 흐른다 나도 흐른다

그까짓 부귀영화 무엇에 쓰랴, 사나이 일생을 하늘에 건다

그래도 즐거웠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예선 같은 큰 경기가 열리는 서울운동장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2만여 관중이 통로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꽉꽉 들어찼다. 개인별 좌석이 없어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지만 축구 보는 재미에 엉덩이가 아픈 줄도 몰랐다.

그런 아련한 기억 속에서 고인이 주연한 영화 빨간 마후라주제가가 들려온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