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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은 왜, 20대 때 평범한 타자에 머물렀을까

작성일: 2018.06.03 12:04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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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택(왼쪽)이 안타를 친 뒤 한혁수 코치의 환영을 받고 있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LG의 심장 박용택이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2일 잠실 넥센전에서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200홈런-300도루를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0경기를 비롯해 역대 최다 안타까지, 수많은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 나이로 마흔이 넘어선 그이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꾸준한 페이스를 앞세워 하나씩 기록을 깨 나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20대 때는 그리 매력적인 선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박용택의 야구는 2008년 이전과 2009년 이후로 나뉜다.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2008년까지 7시즌 동안 박용택이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건 2004년이 유일했다.

타격 재능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던 그였다. 하지만 늘 2할8푼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에겐 '게으른 천재'라는 반갑지 않은 평가가 따라다녔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박용택이 노력을 하지 않아 3할을 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2009년은 그 모든 평가를 뒤집어버린 시즌이었다. 타율 3할7푼2리로 타격왕에 오른 것이다. 박용택의 진짜 야구가 시작된 시기다. 이후 박용택은 단 한 차례도 3할을 실패하지 않았다. 2012년부터는 6년 연속 150안타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보통의 야구 선수들은 20대 때 정점을 찍고 서른 이후로는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러나 박용택은 반대였다. 20대 때는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서른 이후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서른 살에 뭔가 깨닫고 열심히 하기 시작하기라도 한 것일까. 정답은 '아니오'다.

박용택은 원래 성실한 선수였다. 20대 때는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을 뿐이다.

당시 박용택은 이런 말을 했다. "3할을 치라고 하면 지금도 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이상의 타자가 되고 싶다. 3할2푼, 3할5푼을 치는 타자가 되고 싶다. 지금은 그 길을 찾고 있다."

▲ 박용택. ⓒ곽혜미 기자

실제로 박용택은 2008년 시즌을 2할5푼7리로 마친 뒤 당시 김용달 타격 코치에게 부탁을 한가지 한다. "올 1년만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김 코치가 허락하며 박용택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가 2009년 타격왕이었다. 당시 박용택이 했던 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것저것 다 하다 보니 내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결국 그 폼이 김 코치님께서 꾸준히 이야기하시던 것이었다. 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확신을 갖게 되며 조금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대 때의 처절한 실패는 30대의 전성기를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때 소신을 굽혔다면 지금의 박용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야구 좀 했던 선수로 기억에 남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박용택은 아직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한다. 타격 이론에 관한한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해 온 그이지만 여전히 작은 것에서부터 배우며 노력하고 있다.

3할2푼 이상을 치는 타자를 꿈꿨던 20대. 그때의 원대한 포부는 지금 현실이 돼 그를 지켜 주고 있다. 20대 때 배웠던 것들을 이제 하나씩 꺼내어 활용하고 있다. 그때 잘못된 것을 배운 것이 아니라 그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던 탓이다. 그렇게 박용택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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