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키워드 키워드 기준 i금일 기준 많이 본
뉴스 기사의 키워드 수집

한국, 아시아경기대회 출전사…(20)스포츠로 중국 직항로 뚫어…1990년 베이징 대회(1)

작성일: 2018.07.02 09:11 신명철 기자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입장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린 올림픽인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4년마다 돌아오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 해인 올해 또 하나의 국제 종합 경가 대회는 제18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다. 이번 대회는 1962년 제4회 대회(자카르타) 이후 56년 만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서는 40개 종목에서 462개의 금메달을 놓고 우정의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은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대회는 한국전쟁 와중에 불참했지만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부터 꾸준히 출전하며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한국의 아시안게임 출전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한국과 중국은 한때는 총부리를 겨눈 적대국이었다. 그리고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 1990년 9월 현재 국교가 열리지 않고 있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과 취재진은 여권 대신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가 발급한 대회 참가 증명서를 들고 입국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한국과 중국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중국이 대규모 선수단과 취재진을 보내고 한국이 베이징 대회에 임원 142명, 선수 552명 등 694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은 베이징으로 직항하지 않고 우회하는 노선을 이용하긴 했지만 제3국을 경유하지 않고 전세기로 중국에 입국했다. 중국으로 가는 하늘 길을 뚫은 것이다.

대회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제외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37개 회원국 6,000여 명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9월 22일 베이징 노동자체육장에서 막을 올렸다.

한국은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성행하는 경기인 카바디를 뺀 28개 종목에 출전해 애초 목표치인 금메달 62개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지만 금메달 54개와 은메달 54개, 동메달 73개로 일본(금 38 은 60 동 76)을 따돌리고 중국(금 183 은 107 동 51)에 이어 2회 연속 종합 순위 2위를 차지했다.

1982년 뉴델리 대회 이후 8년 만에 출전한 북한은 금메달 12개와 은메달 31개, 동메달 39개로 4위에 올랐다. 북한은 뉴델리 대회에서도 4위였다.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그리고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은 북한은 10여년 사이 한국과 경기력 차이가 더 벌어져 더 이상 비교 대상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대회에서는 ‘남북 대결’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경기력 차가 커지다 보니 한국과 북한은 각자 출전했지만 공동 응원을 펼치는 등 다른 어느 대회보다 우호적인 분위기를 보였다.

[레슬링]서울 아시아경기대회(9개)보다 많은 11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금메달 2개로 다소 부진했던 유도의 몫을 대신 채웠다. 그레코로만형은 10개 체급 가운데 7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2년 뒤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57kg급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안한봉은 그레코로만형 52kg급에서 2차전 부전승을 포함해 4연승을 거두며 가볍게 1위에 올랐다.

57kg급 시진철은 부담스러웠던 조병권(북한)과 1차전에서 14-3으로 승리한 여세를 몰아 결승에서 홈 매트 양찬닝을 7-1로 꺾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48kg급 권덕용, 68kg급 문충식, 74kg급 한치호, 82kg급 김상규, 90kg급 엄진한이 그레코로만형 금메달 행진에 합류했다.

자유형에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74kg급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박장순이 68kg급으로 출전해 1차전에서 북한의 리명복을 10-3 판정으로, 4차전에서 베트남의 누엔반 루안을 3분39초 만에 테크니컬 폴로 제압하는 등 압도적인 경기력을 발휘하며 결승에 올라 이란의 카딤 아자디 루안을 접전 끝에 2-1로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8kg급 김종신, 90kg급 오효철, 100kg급 김태우가 자유형 금메달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백현만(왼쪽)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복싱 91kg 이상급 결승에서 홈 링의 지오데린을 RSC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대한체육회
[복싱]5개의 금메달로 변함없는 효자 구실을 다했다. 1회전에서 버마(오늘날 미얀마)의 윈키를 3회 RSC로 가볍게 누르고 2회전에 오른 최경량급인 48kg급 양석진은 파키스탄의 압둘 마제드와 일본의 이치카도를 각각 24-7, 23-3의 일방적인 스코어로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해 태국의 사사쿨을 20-10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중량급인 91kg 이상급에 나선 서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백현만은 1회전과 준결승에서 인도네시아의 싱 쿨윈트를 27-5 판정, 이란의 기아로스타미를 RSC로 가볍게 물리친 뒤 결승에서 홈 링의 자오데린을 2라운드 RSC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51kg급 이창환, 57kg급 진명돌, 60kg급 이재권이 금메달을 추가했다.

복싱 경기에서는 북한은 심판 판정에 격렬하게 항의하다 아시아아마추어복싱연맹으로부터 이미 경기를 치러 패한 선수를 포함해 모든 선수의 출전을 금지당했다. 경기력이 뛰어난 북한이 경기를 치르지 못한 가운데 한국을 비롯해 7개국이 금메달을 나눠 가졌다. 북한은 우방국인 중국에서 벌어진 대회였지만 복싱과 체조 등 메달 유력 종목에서 심판 판정에 강한 불만을 보였다.

[유도]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했지만 전통적 강세 체급인 중(中)량급에서 2개의 금메달을 메쳤다. 2년 뒤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게 되는 71kg급 정훈은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뒤 2회전에서 버마의 댄골을 다리들어메치기 한판으로 누르고 준결승에서 일본의 강자 고가 도시히코(1989년, 1991년, 1995년 세계선수권대회 1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를 판정으로 눌렀다. 선수단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강호를 꺾은 정훈은 기세를 살려 결승에서 북한의 이창수를 가로누르기 한판으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리스트인 이창수는 이 대회를 비롯해 여러 국제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과 친분을 나눴고 1991년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탈북했다.

1989년 베오그라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78kg급 김병주는 금메달 기대주답게 부전승을 거둔 1회전을 빼고 2회전에서 필리핀의 바일런을 누르기, 준결승에서 일본의 다카나미 요시유키를 누르기, 결승에서 중국의 리진산을 팔가로누워꺾기 한판으로 물리치는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에 일방적으로 밀렸던 일본은 8체급 가운데 5개의 금메달을 챙겼으나 60kg급 결승에서 한국의 김종만이 경기 종료 10초를 남기고 주심의 석연찮은 지도 판정을 받은 데 힘입어 우승하는 등 심판 판정의 덕도 적지 않게 봤다. 1985년 고베 유니버시아드대회 금메달리스트인 황재길(95kg 이상급)은 유도 종목에서 유일한 금메달을 북한에 안겼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