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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일의 NBA 액션] 잊고 싶은 기억 ① 크리스 웨버의 '타임아웃 사건'

작성일: 2015.09.30 16:58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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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조현일 해설위원]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던 일, 민망하고 황당했던 일, 차라리 겪지 않았으면 하는 사연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2015~2016 NBA 시즌 개막이 한 달여 남은 현재, 선수들의 머릿속에 있는 몇 가지 ‘잊고 싶은 기억’을 정리해봤다.

◆ 혜성처럼 나타난 ‘Fab 5

지난 2005년 미국 지역 매체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정신적 외상을 치료할 수 있는 알약이 성공적으로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매체는 머지않아 뇌에 고통스러운 기억이 저장되지 않도록 막아주고 기억으로 말미암은 아픔을 완화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크리스 웨버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온갖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아픔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첫 번째 '망각의 알약' 처방전을 발행하려 한다.

때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농구 명문인 미시간 대학교는 맥도날드 올-아메리칸에 선정된 12명의 고교 최고 선수 중 무려 5명을 한꺼번에 영입한다. 크리스 웨버, 제일린 로즈, 주완 하워드, 지미 킹, 레이 잭슨이 주인공. 이 무서운 다섯 명의 신입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미시간 대학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는 대학농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재능과 젊음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미국대학농구를 평정해갔다. '3월의 광란'이라 불리는 NCAA 64강 토너먼트에서도 미시간 대학의 상승세는 좀처럼 멈출 기색이 없었다.

결승 상대는 '전통의 강호' 듀크 대학교였다. 듀크대는 그랜트 힐, 크리스찬 레이트너, 바비 헐리가 이끄는 당대 최고 팀이었다. 미시간은 듀크에 패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주전 5명이 모두 1학년이었음을 고려하면 준우승도 대단한 성과였다. 이들은 'Fabulous Five'의 준말인 'FAB 5', 즉 '경이로운 5인'이라 불렸다. 무릎까지 오는 헐렁한 유니폼 하의와 검은색 농구화, 거침없는 트래쉬토킹에 팬들은 열광했다.

◆ 우승을 노린 미시간 대학, 그러나...

2학년 들어 'FAB 5'는 미시간 대학을 한 시즌 내내 전미 랭킹 1위로 이끌었다. 직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64강 토너먼트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단 한 번만 패해도 탈락하는 토너먼트였지만 이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파이널 포'에 진출한 미시간의 4강 상대는 켄터키 대학. 저말 매쉬번이 이끄는 켄터키는 특유의 전면강압수비가 최대 강점인 팀이었다. 그러나 미시간 대학의 날카로운 창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미시간은 연장 접전 끝에 켄터키 대학을 물리치며 2년 연속 결승 무대를 밟았다.

이번에는 듀크가 아닌 그들의 최대 라이벌 노스캐롤라이나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다투게 됐다. 노스캐롤라이나는 훗날 오랜 기간 NBA에서 활약한 조지 린치와 에릭 몬트로스, 슈터 도널드 윌리엄스 등이 포진한 강팀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전문가는 미시간의 우승을 점쳤다.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미시간대를 위협한 노스캐롤라이나는 40분 내내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윌리엄스는 폭발적인 슛 감각을 자랑했으며 몬트로스 역시 골 밑에서 우직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이에 맞서는 미시간 대학은 주전들의 고른 활약으로 박자를 맞춰나갔다.

경기 종료 11초 전, 리드를 잡은 쪽은 노스캐롤라이나였다. 그러나 점수 차는 2점에 불과했다. 미시간 대학이 공격권을 소유하고 있었던 상황. 이때 웨버가 그 유명한 별명 'Mr. 타임아웃'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펼쳐졌다. 상대 진영으로 넘어간 미시간대는 첫 번째 공격 옵션인 웨버에게 공을 투입한다. 이후 노스캐롤라이나의 수비수 2명이 곧바로 웨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패스할 공간을 찾지 못해 당황한 웨버는 주심에게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문제는 이때 일어났다. 미시간 대학이 이미 타임아웃을 다 써 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주심은 웨버의 타임아웃 신청을 받아들이는 대신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했다(타임아웃이 없는 상황에서 작전시간을 요청하면 테크니컬 파울을 부과 받는다). 심판의 오른쪽 중지가 왼쪽 손바닥을 힘차게 때리는 순간, 미시간 대학의 대권 탈환은 허망하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강력한 우승후보'는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사실 타임아웃을 요청하기 전, 웨버는 트레블링 바이얼레이션을 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심판은 그대로 경기를 속개했다. 결과론적이기는 하나 웨버의 트레블링 실책이 불렸더라면 웨버가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었던 '타임아웃' 요청도 없지 않았을까. 웨버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신의 실수로 팀이 패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언론, 대중도 웨버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결국, 웨버는 팀 동료와 스티브 피셔 감독의 만류에도 2학년을 마친 후 NBA 진출을 선언한다.

당해 대학농구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존 우든 상을 받기도 했던 웨버는 자타공인 NCAA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그러나 그 타임아웃 사건 하나로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용기를 잃지 말라"는 내용이 담긴 친서까지 보냈으나 웨버는 쉽게 아픈 기억을 떨쳐 내지 못했다. 스무 살 청년이 그 지옥 같은 순간을 이겨내기는 어려웠으리라.

◆ 성공적인 프로 생활

그러나 실수가 실력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웨버는 지난 1993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도 1픽으로 뽑힌 선수는 매직 존슨 이후 웨버가 처음이었다. 어릴 적 우상이었던 존슨의 뒤를 따랐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웨버는 신인 역대 최초로 한 시즌 1,000점, 500리바운드, 250어시스트, 150블록슛, 75스틸 이상을 기록하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신인상도 그의 몫이었다. 특히 지난 1994년 플레이오프에서 당대 최고의 파워포워드였던 찰스 바클리 위로 터트린 '면전 덩크'는 그해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사실, 웨버의 대학 시절은 나쁜 기억이 더 많다. 앞서 언급한 '타임아웃' 사건을 비롯해 입단 과정에서 금품 수수 행위가 드러나면서 당시 기록이 삭제되는 씁쓸함도 맛봤다. 프로에서도 챔피언 등극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우승을 노릴 때마다 불운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고 한창 전성기를 노릴 즈음엔 몸에 자주 탈이 났다.

프로 데뷔 초기부터 '타임아웃'이라는 자선 단체를 운영했던 웨버는 "대학 무대 결승에서 나온 그 사건은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였다. 그러나 불행한 기억을 잊는 것이야말로 행복을 얻는 열쇠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희로애락을 함께 나눴던 미시간대 동료들에 대해선 각별한 마음을 전했다. "하워드, 로즈 그리고 내가 NBA에서 뛸 수 있었던 건 킹과 잭슨 덕분이었다. 킹, 잭슨과는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있다. 우리가 쌓은 우정은 영원할 것"이라며 옛 친구들을 추억했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또 다른 은총이다. 고통스러운 기억도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일부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웨버에게 '타임아웃' 사건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서둘러 대학 무대를 떠나고 틈날 때마다 당시 기억을 잊고 싶다고 말했던 이유다.

웨버가 송아지 같은 눈망울로 심판을 쳐다보며 '타임아웃'을 외친지 벌써 22년이 지났다. 어느덧 42살 '꽃중년'이 된 웨버는 각 팀들이 '타임아웃'을 보내는 동안 열심히 경기 정보를 전달하는 NBA 해설가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 웨버의 앞길에 행복한 '기억'만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사진1] 크리스 웨버 ⓒ Gettyimages

[사진2] 'Mr. 타임아웃' 웨버를 응원하는 꼬마팬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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