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야구 '에이스' 총아인가 제물인가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URL복사

1983년 10월 25일 삼성으로 이적한 김영덕 감독을 대신해 OB(두산의 전신)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1988년 시즌 도중 돌연 하차하기 전까지 베어스 감독으로 재직했다. 이후 태평양(1989~1990년), 삼성(1991~1992년), 쌍방울(1996~1999년), LG(2001~2002년), SK(2007~2011년)에서 1군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지금은 한화 지휘봉을 잡고 있다.
2015년 시즌이 끝을 향해 달리는 가운데 한화는 1일까지 67승75패로 7위다. 2009년부터 2011년(공동 6위)을 제외하고 모두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던 한화는 탈꼴찌에 성공한 것은 물론 시즌 내내 쉽게 쓰러지지 않는 이미지를 보여 줬다. 그룹의 올해 모토였던 '불꽃'과도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밝은 성과 뒤에는 고역을 치르며 볼멘소리조차 숨죽여야 했던 선수들도 보인다. 야수보다는 투수 쪽에서 과부하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 가운데 좌완 박정진은 왼 팔꿈치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 아웃이다.
감독 김성근. 구단 모기업 부도로 존속 자체가 불투명했던 쌍방울을 제외하고는 모든 팀이 김 감독이 떠난 1~2년 후 암흑기를 맞아 선수단 리빌딩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당시 김 감독 야구의 '투수 총아'들은 쉽지 않은 야구 인생을 걸었고 또 걷고 있다.

◆ 1984년 OB 윤석환(57경기 146이닝 12승8패25세이브 평균자책점 2.84, 그해 신인왕 및 구원왕)
윤석환 선린인터넷고 감독은 삼성 권영호(전 롯데 수석 코치)와 함께 프로 야구 1세대 마무리로 불린다. 성균관대 졸업 후 1984년 1차 지명으로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윤석환은 씩씩한 투구로 선배 타자들을 억누르며 그해 구원왕과 신인왕이 됐다. 그러나 전문 마무리였다고 해도 57경기는 그해 6개 구단 투수 전체 1위 기록이었고 146이닝 또한 연투가 잦았던 보직을 고려하면 확실히 무리였다.
이후 윤석환은 첫해 무리했던 여파로 어깨 부상을 겪으며 1985~1987년 시즌 평범한 해를 보냈다. 그리고 1988년 40경기 13승3패14세이브 평균자책점 2.08로 커리어 하이 성적을 기록했다. 투수 분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때 108이닝을 던진 만큼 관리와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윤석환은 1991년 삼성에서 은퇴할 때까지 단 4승을 추가하는 데 그치며 만 30세에 은퇴했다.
◆ 1989년 태평양 박정현(38경기 242⅔이닝 17완투 4완봉승 19승10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2.15, 그해 신인왕-역대 신인왕 한 시즌 최다승)
김 감독은 1989년 태평양을 인천 연고 구단 사상 첫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끌었다. 상대적으로 타선은 빈약했으나 박정현-최창호(SK 퓨처스팀 재활 코치)-정명원(kt 투수 코치) 신예 투수들을 앞세운 '짠물 야구'가 돋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박정현은 2년째 중고 신인으로 말 그대로 돌고래 마운드를 지탱했다. 한 시즌 19승은 1986년 MBC 김건우의 18승을 뛰어넘은 역대 신인왕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이다.
기록이 빛나는 만큼 그늘도 어두웠다. 박정현은 지금의 박종훈(SK)처럼 땅을 긁는 듯 굉장히 낮은 릴리스 포인트를 보여 준 언더핸드 투수. 194cm 장신으로 중력을 완전히 무시한 투구를 펼친 만큼 관리가 중요했으나 1군 풀타임 첫해부터 240이닝 이상을 기록했다. 1989년 삼성과 준플레이오프에서 박정현은 19⅔이닝을 던졌는데 이는 현재까지 단일 시즌 준플레이오프 최다 이닝 기록이다. 그나마도 박정현이 허리 통증으로 주저앉아 응급실로 실려가며 이닝 기록이 끝났다.
김 감독 재임 2년째에도 박정현은 13승을 거뒀으나 191⅔이닝 9완투 2완봉승으로 많이 던진 편이었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놓은 뒤에도 박정현은 2년 간 23승을 더 거두며 349⅔이닝을 던졌다. 1993년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허리와 팔꿈치에 치명적인 부상 악화로 쓰러진 박정현은 결국 그 이후 전성 시절의 투구를 보여 주는 데 실패했다. 김 감독을 다시 만난 1999년. 박정현은 쌍방울에서 37경기 1완투 124이닝 5승11패3세이브 평균자책점 3.92으로 분전한 뒤 2000년 SK에서 31세로 은퇴했다. 1999년의 투구 장면은 프로 야구 투수로서 마지막 불꽃과 같았다.

◆ 1991년 삼성 김성길(52경기 3완투 188이닝 16승12패18세이브 평균자책점 3.30)
'부시맨' 김성길은 김 감독 재임 이전이던 1989년 34경기 12완투 14승 233⅔이닝, 1990년 33경기 6완투 13승 166⅓이닝으로 이미 많이 던진 투수였다. 김성길 또한 오른손 언더핸드 투수라 허리와 무릎에 부하가 큰 선수. 그러나 당시 삼성에서 가장 믿을 만한 투수 또한 김상엽보다 김성길이었다. 그만큼 김 감독도 그를 믿고 맡기는 경기가 많았다. 마무리는 물론 중간 계투-선발로도 전천후로 출격했다. 1999년 서정환 감독 휘하 '애니콜'로 불리던 삼성 임창용보다 더 심했다고 보면 된다.
1991년 롯데와 준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 공 80개 이상을 던지며 구원승을 올린 것은 물론 이틀 후 3차전에서 1회 구원 등판 후 13회까지 150개가 넘는 공을 던졌다. 경기 후 숟가락도 들지 못할 정도였다는 뒷이야기. 1956년생 김성길은 당시 35세였다. 이후 김성길은 급격한 하락세를 타며 1993년 쌍방울에서 은퇴했다. 나이가 있던 만큼 쇠퇴가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김성길은 이미 김 감독 삼성 취임 이전 관리 받지 못한 투수다. 그러나 김 감독 또한 결정적인 순간 관리해 주지 못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 1997년 쌍방울 김현욱(70경기 157⅔이닝 20승2패6세이브 평균자책점 1.88, 계투 20승 다승왕-평균자책점 1위)
김 감독 재임 시절 쌍방울에는 좋은 잠수함 투수가 많았다. 1997년 계투로 20승을 거둔 김현욱을 비롯해 성영재(LG 스카우트), 김기덕, 임창식 등이 돌격대 마운드를 이끌었다. 김현욱은 그 해 70경기 등판으로 8개 구단 전체 투수 중 가장 많이 나왔다. 릴리프 요원인데도 150이닝 이상을 던졌다. 전무후무한 순수 계투 20승. 대신 김현욱은 시즌 후 무릎 수술을 받았다.
무릎 부상과 수술은 옆구리 투수들이 오래 던졌을 때 어쩔 수 없이 거치는 과정 가운데 하나. 그러나 문제는 이듬해 제대로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전 등판을 서두르는 바람에 결국 2005년 은퇴까지 선수를 괴롭힌 지긋지긋한 부상이 된 것. 그 와중에서도 김현욱은 68경기 13승 129⅓이닝을 기록했다. 1999년 시즌을 앞두고 김현욱은 주포 김기태(KIA 감독)와 함께 삼성으로 이적(이계성+김광현+20억 원)했다. 삼성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무릎 부상 악화는 물론 팔꿈치 부상까지 겹치며 결국 더 던질 수 있던 35세에 은퇴했다. 그리고 삼성의 투수 코치가 아닌 '트레이닝 코치'로 일하고 있다.
◆ 2002년 LG 이동현(78경기 124⅔이닝 8승3패7세이브6홀드 평균자책점 2.67-2002년 8개 구단 투수 최다 출장)
2001년시즌 도중 이광은 감독을 대신해 LG 감독 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첫해 신윤호(전 LG-SK)를 전천후로 내세워 막판 치열한 순위 경쟁을 이끌었다. 그리고 2002년 시즌 LG 감독으로 취임했다. LG는 페넌트레이스 4위를 기록한 데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2015년 현재 LG의 가장 가까운 한국시리즈 기억이다.
이때 LG 투수진에서 가장 분전했던 투수는 바로 약관의 '로켓' 이동현. 2001년 1차 지명 출신 대형 신예 이동현은 데뷔 첫해 프로 무대 적응기를 거친 뒤 이듬해 곧바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투수 3관왕 신윤호가 흔들리자 마무리로 이동했고 미국에서 이상훈(두산 퓨처스팀 투수 코치)이 돌아오자 중간 계투로 자리를 옮겼다. 시즌 도중 투수진 개편 속 이동현은 오른팔로 팀을 위해 희생했다. 김현욱만큼은 아니지만 이동현도 순수 중간 계투로 78경기에 나와 124⅔이닝을 던졌다.
이후 이동현의 야구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2004년시즌부터 2010년 제대로 재기하기까지 실전 복귀를 위한 관리를 확실히 받지 못하는 아픔 속 두 번의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포함해 오른 팔꿈치에 세 차례 칼을 댔다. 말이 쉽지 수술 3회, 재활 기간 6~7년은 선수로 버틴다는 자체가 위대할 정도. 그리고 이동현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LG 허리를 지키는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다. 프로 통산 100홀드까지 단 하나를 남긴 33세 우완 이동현. 무리했던 만큼 고통의 터널이 매우 어둡고 길었으나 이동현은 이를 극복하며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동현은 인간 승리를 마운드에서 보여 줬다.

◆ 2009~2011년 SK 전병두(127경기 293⅓이닝 16승9패11세이브10홀드 평균자책점 3.31, 2009년 평균자책점 2위-3.11)
2000년대 후반 SK는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2007~2008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제패는 물론 KIA에 패권을 내준 2009년도 페넌트레이스 성적은 80승6무47패. 무승부를 패배로 간주하던 2009년시즌이 아닌 지금의 승률제였다면 한국시리즈 직행은 KIA가 아닌 SK의 차지였다. 2010년에도 SK는 삼성을 한국시리즈 4승으로 꺾으며 통합 우승에 성공했다. 2009~2011년 SK 마운드를 지킨 일등 공신 가운데 한 명은 바로 좌완 전병두다.
2003년 두산에서 데뷔한 뒤 KIA를 거쳐 2008년시즌 도중 2-3 트레이드(전병두, 김연훈-채종범, 김형철, 이성우)를 거쳐 SK 유니폼을 입은 전병두는 뛰어난 구위에 비해 좋지 않은 제구로 '미완의 대기' 꼬리표가 붙은 선수였다. 김 감독은 전병두에게 “제구를 신경 쓰지 말고 그저 공을 힘껏 던져라”라는 주문을 했다. 전병두는 이 지시 아래 잠재력 폭발에 성공했다. 전병두의 잠재력을 깨워 리그 A급 좌완으로 성장시킨 이는 바로 김 감독이다. 이 내용은 확실한 사실이다.
다만 전병두의 어깨 상태를 알고 있었는데도 제대로 관리해 주지 못한 내용은 두고두고 아쉽다. 이미 김 감독은 전병두에 대해 “KIA에서 건너올 때 왼 어깨 인대 세 곳이 끊어지고 한 줄기만 남아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김 감독은 전병두 혹사 논란이 니올 때마다 미안한 기색을 비쳤다.
이는 전병두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는데도 전병두 부재 때 대체 선수가 마땅하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 내보냈다는 뜻이다. 결국 전병두는 2011년 시즌 말 어깨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라 인대 재건술을 받고 4년 째 재활하고 있다. 전병두는 구단 관계자와 선수들이 입을 모아 “야구계에서 가장 착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고 칭찬하는 선수. 그는 재활군에서 이동현의 인간 승리 재현을 꿈꾼다.

# 프로야구 투수들 가운데 김 감독의 지도를 거치며 생애 최고 시즌을 보낸 뒤 하향세를 탄 이도 있고 큰 부상 없이 꾸준히 제 경력을 이어간 선수도 있다. 실제로 김 감독에 대해 '선수 생활 동안 빛을 발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라며 칭송하는 선수들도 많다. 그러나 시계를 돌려보면 '김성근 시대'가 끝난 뒤 주력 선수들의 이탈과 하향세로 암흑기에 진입한 구단이 많았고 수술과 재활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선수들이 보인다.
물론 올해 한화 투수진 혹사 논란 중심에 선 권혁, 박정진, 송창식, 안영명, 윤규진, 김기현 등이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권혁은 전 소속팀 삼성에서 줄어든 기회로 제 기회를 찾고자 한화와 4년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맺었으며 박정진은 뒤늦게 꽃을 피운 불혹의 프랜차이즈 투수다. 송창식 또한 부상과 지병으로 은퇴한 뒤 어렵게 다시 마운드에 섰고 전임 김응룡 감독 시절에도 고생이 많았다.
안영명, 윤규진은 뒤늦은 병역의무 이행 후 다시 날아오르려는 실력파 투수들이다. 원 포인트 릴리프이기는 해도 시즌 초반부터 3연투 그 이상을 견뎠던 김기현은 방출 설움을 딛고 1군에 섰던 투수다. 저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르며 선수로서 대단한 가치를 지닌, 팬들의 사랑을 받기 충분한 선수들이다.
김 감독은 해박한 야구 이론과 야구 열정에서 국내 최고 지도자다. 그러나 그 또한 실업 야구 현역으로 뛸 당시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해 20대 중반 어쩔 수 없이 은퇴한 아픔이 있다. 지도자가 돼서도 오랫동안 주류의 백안시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엄청난 훈련으로 승리를 최우선으로 놓은 그의 야구는 2000년대 후반 연속 우승으로 인정 받기 시작했고 그에게 열광하는 팬도 급격히 늘어났다.
“인간에게 한계란 없다”는 것이 김 감독의 지론. 그러나 그 한계는 사실 정신력을 뜻한다. 대부분의 야구 지도자는 물론 전문의 또한 “사람의 어깨는 지우개와 같다. 쓰면 쓸 수록 닳는 만큼 이상이 있을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영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안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자칫 그 상처의 누적으로 선수의 야구 인생이 끝난다면. 그것은 성공한 야구일까. 선수들은 감독의 야구를 펼치기 위해 필요한 부속품이 아니다. 팀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고 소중한 가장이며 사랑하는 아버지다.
[사진1] 박정진을 다독이는 김성근 감독 ⓒ 한희재 기자.
[사진2] 윤석환 선린인터넷고 감독 ⓒ 한희재 기자.
[사진3] 1989년 태평양 에이스 박정현 씨 ⓒ SK 와이번스.
[그래픽] 김성근 감독 재임 당시 기둥 투수들의 변화 표 ⓒ 디자이너 김종래.
[사진4] LG 이동현 ⓒ 한희재 기자.
[사진5] 김성근 감독-송창식 ⓒ 한희재 기자.
관련 추천 기사
야구 관련 기사
-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는데…부활 안 보이는 애제자 부진, 김태형 감독 "같이 갈 상황 아냐" 가차 없었다
2026-08-12
-
카라스코 KBO 첫 승+김진성 178홀드 韓 신기록…LG, 키움 제물로 3연패 탈출 [고척 게임노트]
2026-08-11
-
롯데 상대 승승승 질주! 이숭용 감독의 미소 "아빌라 에이스다운 피칭, 조형우-안상현 귀중한 추가점이 결정적"
2026-08-11
-
박준순 130m 초대형 3점포에 한화 무너졌다…두산 홈런 2방 맞아도 승승승승 질주 [잠실 게임노트]
2026-08-11
-
'승승승승 하더니 와르르' 비슬리 충격의 7실점…갈 길 바쁜 롯데, SSG에 또 발목 잡혔다 [인천 게임노트]
2026-08-11
-
카라스코 10이닝 연속 퍼펙트→이 타구 하나에 무결점 기록 깨졌다…그리고 첫 실점까지
2026-08-11
추천 콘텐츠
-
'이럴 수가' 中 벌벌 떤다 "이제 일본 배워야 해"…중국계 하리모토 남매 동반 우승→"탁구대-공 바꿨잖아" 황당 주장까지
2026-08-12
-
"누군가 해야 했던 일", "차량 폭발할 수도" 광주FC 선수단, 사고 차량으로 주저 없이 뛰어...큰 인명피해 막았다
2026-08-12
-
'38승 1패' 안세영 질주에 제동 걸었던 '재발성 통증'…"왼발이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 견딜까" → "80~90% 회복" 자신
2026-08-11
-
박지성 참담한 반응, '심판 성접대' 파문에 "韓축구 안 좋은 상황, 깊은 고민 필요해" → 축구협회장 선거부터 확 바꾼다
2026-08-11
-
대한민국 또 한번 도전하는 세계 무대, U-17 월드컵 100일 앞 ‘성큼’
2026-08-11
-
韓 축구 스트라이커 괴력 '공주님 안기' 화제…"어떤 응급 들것보다 빨랐다, 이호재 괴력은 팀워크의 모범"
2026-08-11
많이 본 기사
-
한국 아이돌 비주얼, 한국 잡는 실력까지…日 배드민턴 초미녀, 코리아마스터즈서 韓 혼합복식 제압 → 2주 연속 우승
2026-08-10
-
안세영에게 '세계선수권 5회 메달리스트' 온다…"17년 만에 안방 개최인데 우승길 험난" 인도 언론은 한숨→홈 이점+시드 호재 얻은 'WC 강자'와 준결승 빅뱅 가능성
2026-08-10
-
前 KIA 위즈덤 미쳤다, 이러다 21세기 기록까지 깨나… 전광판 직격 초대형 홈런, 맞으면 넘어간다
2026-08-10
-
원태인vs김백산 치열한 진실 공방?…"너 거짓말 좀 하지 마"-"밥 언제 사주실 거예요?"
2026-08-11
-
"KIA에 복수하겠다" 김도영-김태군 이름까지 똑똑히 기억 중…페덱의 복수혈전 결말은?
2026-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