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은퇴 의사를 밝힌 정근우가 11일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잠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신원철 기자] 정근우가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를 거친 지난 16년 선수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미 시즌 중 은퇴 의사를 굳힌 그는 LG의 가을 야구가 끝난 뒤인 지난 8일 오후 구단을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11일 은퇴 기자회견에서는 30여분 동안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보며 주변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16년 동안 정규시즌만 1747경기, 포스트시즌 57경기를 더해 1800경기를 넘게 달려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정근우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11일 기자회견에서 꺼낸 정근우의 기억 보따리에서 그의 커리어를 장식한, 또 야구 인생을 바꾼 세 가지 순간을 찾아봤다. 

▲ 정근우. ⓒ 곽혜미 기자
▷ "이 팔로는 야구 못 합니다."

"고교 시절에 '입스(Yips)'가 있었다. 대학 때도 프로 때도. 합해서 세 번의 입스가 왔다. 팔꿈치 수술을 받고 이 팔로는 야구 못 한다는 의사 말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해보겠다는 의지 덕분에 입스를 이겨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근우의 역사는 곧 극복의 역사다. 고교 시절 팔꿈치 수술 후 잘못된 회복 과정을 극복한 것이 그 시작이다. 정근우는 지난해 4월 모교인 고려대 후배들과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동계 훈련을 하다 팔꿈치를 다쳤다. 2주 동안 수술을 두 번 했는데, 한 곳에서는 야구 인생이 끝났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 다른 병원에서 재수술을 하고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돌아봤다. 

여기에 입스에서 시작된 송구 문제를 기어코 이겨냈다. 프로에서는 데뷔 초 한때 외야수로 가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극복했다. 여기서 포기했더라면, 도전을 접었더라면 '악마 2루수'는 없었다. 

정근우는 "어릴 때부터 항상 키가 작다는 단점을 이겨내고, 이겨내가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달리기하고 스윙하면서 하루도 포기하지 않은 나에게 고맙다. 힘들 때도 이겨낸 나에게 감사하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 설 수 있는 나에게 감사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동안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 정근우는 2015년 프리미어12 일본과 준결승전에서 9회 추격을 시작하는 1타점 2루타를 쳤다.
▷ 2008 베이징, 2015 도쿄

정근우에게 '최고의 2루수'라는 수식어가 붙은 배경에는 화려한 국제대회 경력이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가져왔다.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준우승을 경험했고, 그의 마지막 국제대회가 된 2015년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에서는 일본과 준결승전에서 명승부를 펼친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정근우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올림픽과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이다. 프리미어12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2루수로 나가는 마지막 대회였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못 하고 자연스럽게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게 됐었다"고 회상했다. 

한국 야구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던 2015년 프리미어12 준결승전에서는 역전 드라마의 중심에 있었다. 무사 1, 2루에서 일본의 '닥터 K' 노리모토 다카히로(라쿠텐)를 상대로 1타점 2루타를 터트렸다. 한국은 정근우의 적시타로 1-3을 만들어 추격을 시작했고, 끝내 4-3 역전에 성공해 그대로 결승에 진출했다.

▲ 한화 시절 정근우. ⓒ 곽혜미 기자
▷ 끝내기만 16번, 그중에 최고는

정근우는 KBO리그 최고의 '끝내주는 선수'다. 16년 동안 끝내기 안타만 16번을 쳤다. 72경기에서 타율 0.240에 그친 올해도 5월 14일 SK전에서, 6월 12일 롯데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터트렸다. 그런데 정근우가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순간은 2018년 8월 2일 대전 kt전이다. 단순히 경기에서 이겼다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민거리를 날려준 홈런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그는 "2018년 kt전에서 끝내기 홈런 쳤을 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부상으로 빠진 선수들이 많은 와중에 순위 싸움을 하고 있었다. 당시 여러 포지션을 돌아다니면서 심리적으로 힘들었는데 그 홈런으로 자신감을 찾았다. 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홈런"이라고 돌아봤다. 

이 경기에서 정근우는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정근우는 2018년 5월 31일 경기를 끝으로 2루수가 아닌 지명타자, 좌익수, 1루수로 뛰어야 했다. 이때 정근우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2루수로 돌아가기까지는 705일이 걸렸다. 정근우는 2020년 5월 5일 개막전에서 2루수로 돌아왔다. 그리고 "2루수로 은퇴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16년을 정리했다. 

▲ LG 시절 정근우. ⓒ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신원철 기자 / 임창만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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