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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 칼럼] ‘스포츠 엘리트 시스템’은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자

작성일: 2021.08.18 10:00 스포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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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도쿄올림픽에서 경기력과 태도에서 실망감을 안겨준 한국야구대표팀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양중진 객원 칼럼니스트]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어머니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이야기다. 우리 어머니만 그러시진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어머니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다. 좋은 대학에만 가면 연애도, 취업도, 결혼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아니 잘 할 수 있으니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사실로 믿고 싶었다. 그래야만 엄혹한 시절을 견딜 수 있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말이 또 다른 분야에도 있다.

“운동 열심히 해서 프로에만 가면 창창한 앞길이 보장돼 있다.”

‘공부’가 ‘운동’이라는 단어로, ‘대학’이 ‘프로’라는 단어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런 논리는 199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통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얼마간은 수명을 연장했던 논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나아지면서 최근에는 굳이 공부에 연연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삶이 더 나은 삶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높은 직위나 많은 연봉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는 웰빙의 시대가 도래했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말은 국가와 사회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숙되면서 수명을 다한 논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분야에 있어서는 이런 논리가 아직도 여전하다. 다른 분야는 다 변했는데도 여전히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교과 수업을 팽개치고 운동에만 모든 것을 투자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다 보니 절차나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성적지상주의, 결과만능주의가 지배하게 된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성적지상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몇몇 사례가 화제가 되었다. 자기 나라 말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열네 살짜리 금메달리스트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국가가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스포츠에 뛰어든 결과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여기에는 스포츠를 통해 국가의 영광을 과시하려는 정치인들의 의도가 개입돼 있다.

우리가 우려한 것은 그런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된 아이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온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스포츠 기계 신세가 된 아이의 처지에 대해 여론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스포츠 영웅이 된 아이는 그나마 나은 처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금메달 경쟁에서 뒤처진 수많은 아이들은 스포츠에서도, 사회에서도 도태된 채 평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슴에 자기 나라의 국기를 달지 못하고 출전한 사례도 있었다. ‘러시아’라는 이름 대신 ‘러시아올림픽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전해야 했던 선수들의 이야기다. 국가에서 선수들에게 조직적으로 금지약물을 사용했다는 의혹에 따른 결과였다.

▲ 한국야구 대표팀 강백호는 2020도쿄올림픽에서 경기에 임하는 태도 때문에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한 야구선수는 팀이 지고 있는 순간에 껌을 씹고 멍을 때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장기간 이어지는 국내 리그에서는 쉽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선수도, 팀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국가를 대표해서 출전한 올림픽이었기에 조금 더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 실제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행동했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의 실력이 우승을 하거나 메달을 따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비쳐졌다면 국민들이 이토록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자는 해당 선수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판단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판단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풍부한 야구 지식만으로 해결되지도 않는다. 야구 지식 이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지혜를 얻어야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으로 선수들에게 그런 판단력을 요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평생 운동 이외에 다른 것을 배워본 적이 없어 사회 시스템에는 문외한에 가깝기 때문이다.

▲ 여자배구 대표팀은 2020도쿄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도전하는 과정 자체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박수를 받았다 ⓒ연합뉴스
필자는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좀 더 유연해진 스스로를 발견했다. 반드시 성적이 잘 나온 종목에 대해서만, 결과가 좋은 종목에 대해서만 관심과 찬사를 보내진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필자만의 생각이나 느낌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결과보다는 과정이나 스토리에 더 많은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전력의 열세를 뒤집고 4강까지 올라간 여자배구팀, 경기에 지고도 상대 선수의 손을 들어주며 경의를 표한 태권도 선수, 계체를 위해 머리를 삭발한 여자 유도 선수 등의 사례가 그렇다.

우리의 의식수준이 이제는 결과와 성적지상주의를 넘어 과정과 스토리에 더 초점이 가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공부만이, 성적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다. 오직 스포츠만이 여전히 성적지상주의라는 지나간 시대의 유령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 근본에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이 있다. 이제는 시대적 소명을 다한 역사적 유물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양중진 객원 칼럼니스트는?

현 수원지검 1차장검사, <검사의 스포츠> 저자, 전 대한축구협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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