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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출신 MLB 역대 베스트 10

작성일: 2016.03.21 18:02 문상열 특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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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로스앤젤레스, 문상열 특파원] 미국과 사회주의 쿠바의 외교 관계 수립은 앞으로 메이저리그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메이저리그는 쿠바 선수들을 자유롭게 받아 들이겠다고 이미 발표했다. 외교 관계 수립에 맞춰 탬파베이 레이스는 23일(한국 시간) 쿠바 국가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펼친다. 1999년 3월 볼티모어 오리올스 이후 27년 만의 미국-쿠바 야구 친선경기 재개다.

 

쿠바 아마추어 야구는 세계 정상급이다. 외교 관계 수립 전까지만 해도 쿠바의 주축 선수들은 목숨을 걸고 조국을 탈출해 제 3 세계 시민권을 획득한 뒤 프리에이전트로 미국에 정착했다. LA 다저스 외야수 야시엘 푸이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1루수 호세 어브레이유, 마이애미 말린스 우완 호세 페르난데스 등이 그런 과정을 밟았다. 


어브레이유와 페르난데스는 아메리칸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뽑히며 정상급 실력을 인정받은 터다. 그러나 이들이 활약하기 훨씬 전에도 쿠바 출신 메이저리거들은 무수히 많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2015년 현재 310명의 회원이 선정돼 있다. 이 가운데 중남미 출신 선수는 9명이다. 9명 가운데 4명이 쿠바 출신이다. 미국과 외교 관계가 정상적이었을 때인 1960년대 이전의 올드 플레이어들이 3명이다. 역대 쿠바 출신 베스트 10 플레이어들을 살펴봤다. 현역 선수들은 제외했다.

 

-토니 페레스(1루수)

1964년-1986년 23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다. 쿠바 출신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이번 메이저리그의 쿠바 방문 때 투수 루이스 티안트와 함께 조국 땅을 밟으며 감격에 겨워했다. 1970년대 신시내티 레즈의 전성기 ‘빅 레드 머신’ 멤버다. 통산 타율 0.279 홈런 379개 타점 1,652개를 남겼다. 7차례 올스타게임에 선발됐고, 1967년 MVP로 선정됐다. 2000년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됐다.

 

-루이스 티안트(투수)

조니 쿠에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처럼 중남미 투수들은 몸을 꽈서 던지는 경우가 많다. 티안트의 영향 때문이다. 티안트는 몸을 2루로 향해 비튼 뒤 던졌다. 1964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메이저리그 경력을 시작해 1982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은퇴했다. 19년 동안 229승172패 평균자책점 3.30에 2,41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두 차례 아메리칸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고 1968년 클리블랜드에서 4경기 연속 셧아웃 게임을 작성했다. 보스턴 레드삭스(1971년-1978년)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했고, 1975년 신시내티 레즈와 월드시리즈 6차전은 최고의 피칭으로 꼽힌다. 레드삭스 'Hall of Famer'다. 삼성 라이온즈가 인스트럭터로 초빙해 한국에 온 적이 있다.

 

-토니 올리바(외야수)

박병호가 최근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통역 없이 대화했던 미네소타 트윈스의 레전더리 타자가 바로 토니 올리바다. 1962년-1976년 15년 동안 미네소타에서만 활동하며 3차례 타격왕에 올랐다. 통산 타율 0.304 홈런 220개 타점 947개를 기록했다. 8차례 올스타에 뽑혔다. 무릎이 좋지 않아 선수 생활을 오래하지 못했다. 기록상으로는 명예의 전당에 선정돼야 하지만 기자들과 원로위원회에서 외면하고 있다. 미네소타의 타킷필드에는 올리바의 동상이 있다. 그가 미네소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마음씨 좋은 동네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풍긴다.

 

-마이크 쿠에야(투수)

신시내티 레즈-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휴스턴 애스트로스-볼티모어 오리올스-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등에서 15년을 활약했다. 통산 185승 130패 평균자책점 3.14다. 1960년대 특급 좌완이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쿠에야-짐 파머-데이브 맥날리-팻 돕슨 등 4명이 한 시즌에 20승을 거둔 대기록을 세웠다. 쿠에야는 20승을 4차례 작성했고 두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 주역이다. 1969년에는 23승 11패 평균자책점 2.38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데니 맥클레인과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공동 수상했다.

 

-쿠키 로하스(2루수)

 1962년-1977년 16년 동안 신시내티, 필라델피아 필리스, 세인트루이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에서 활약하며 5차례 올스타에 선정됐다. 통산 타율 0.263 홈런 54개 타점 593개를 기록했다. 2루수로 출발했으나 외야수, 내야수를 겸한 유틸리티 맨으로 활동했다. 1988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쿠바 출신으로는 역대 3번째 메이저리그 감독이 됐다. 한 시즌 75승 79패의 성적을 남기고 물러났다. 마이애미 말린스 히스패닉 방송 해설을 하고 있다. 마이애미에는 쿠바에서 망명해 온 이들이 많다. 

 

-미니 미노소(좌익수)

티안트, 올리바와 함께 명예의 전당 감으로 충분하면서도 미역국을 먹은 레전더리다. 1949년 클리블랜드에서 메이저리그 경력을 시작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1951-1957, 1960-1961, 1964, 1976, 1980년 활약했다. 1976년 50살에 3경기, 1980년 54살에 2경기를 뛴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화이트삭스는 그의 등 번호 9번을 영구 결번했다. 17년 통산 타율 0.298 홈런 186개 타점 1,023개 도루 205개를 남겼다. 9차례 올스타, 3차례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지난해 3월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라파엘 팔메이로(1루수)

금지 약물만 아니었다면 쿠바 출신으로는 역대 최고의 타자로 꼽힐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000안타와 500홈런 이상을 함께 작성한 타자는 4명 뿐이다. 팔메이로가 이 가운데 한 명이다. 팔메이로가 미국 야구계에서 자취를 감춘 까닭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마크 맥과이어도 금지 약물을 사용했지만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벤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시카고 컵스, 텍사스 레인저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에서 20년 동안 통산 타율 0.288 홈런 569개 타점 1,835개를 기록했다. 매우 부드러운 스윙을 갖고 있었다.

 

-카밀로 파스칼(투수)

1954년부터 1971년까지 미네소타 트윈스를 비롯해 LA 다저스 등 4개 팀에서 18년을 뛰었다. 통산 174승 130패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했다. 7차례 올스타에 뽑혔다. 커브가 주 무기였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레전더리 테드 윌리엄스는 “아메리칸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커브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1962년, 1963년 2년 연속 20승을 올렸다.

 

-버트 캠파너리스(유격수)

1964년부터 1983년까지 19년을 활동했다. 쿠바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유격수로 평가 받았다. 통산 타율 0.259 홈런 79개 타점 646 개도루 649개. 1972-1974년 오클랜드 에이스의 월드시리즈 3연속 우승 주역이었다.

 

-호세 칸세코(외야수)

칸세코 역시 금지 약물로 모든 기록이 얼룩졌다. 1988년 메이저리그 첫 40-40 클럽(홈런-도루)의 주인공이다. 그해 아메리칸리그 MVP로 선정됐다. 1980년대 후반, 1990년 초반까지 마크 맥과이어와 배시 브라더스로 불리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칸세코는 16년 통산 타율 0.266 홈런 462개 타점 1,407개를 작성했다. 2005년 ‘약물에 취해(juiced)’ 책을 발간해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애초에 의도는 불순했지만 칸세코에 의해 메이저리그에 만연된 금지 약물 복용을 공론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칸세코가 명예의 전당 기준선인 500호 홈런을 쳤으면 금지 약물 문제를 까발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사진] 박병호(왼쪽)가 쿠바 출신으로 3차례 타격왕을 지낸 미네소타 트윈스의 레전드 토니 올리바와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포트마이어스(플로리다주)ㄹ문상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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