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가고 있는 KIA 이의리 ⓒKIA타이거즈
▲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가고 있는 KIA 이의리 ⓒKIA타이거즈

[스포티비뉴스=수원, 김태우 기자] “아니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고교야구는 한때 혹사가 투혼 혹은 낭만의 단어를 달고 나온 시기가 있었다. 에이스라면 으레 150구, 혹은 그 이상을 던지며 한 경기를 모두 책임지는 무용담이 하나씩 다 있을 정도였다. 전국대회에서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지 못한 채 많은 공을 던진 꽤 많은 유망주들이 입단하자마자 몸에 칼을 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어린 유망주들의 몸 관리를 위해 경기마다 투구 수 제한이 있고, 투구 수에 따른 강제 휴식일이 있다. 지도자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어간다. 그래서 그럴까. 근래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의리(20‧KIA)의 사전에 150구 완투와 같은 에이스의 전용 무용담은 없다. 이의리는 “고등학교 때 118구를 던져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는 듯 시원하게 “한 번도 없었습니다”고 답했다.

그런 이의리는 3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 경기에서 7이닝 동안 118구를 던졌다. 지난해 프로 데뷔 이후 철저한 투구 수 관리를 이어온 이의리의 데뷔 후 최다 투구 수였다. 이전에는 110구 이상을 던져본 적도 없었고, 100구 이상을 던진 경기도 몇 없었다. 그래서 더 눈길을 뜬 하루였다.

6회까지 95개의 공을 던진 이의리는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KIA 벤치는 투구 수와 이닝을 조금씩 더 늘려가길 바랐다. 던져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의리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마지막 타자인 김민혁과 승부가 길어지며 118구를 던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실점 없이 삼진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거침없는 패스트볼 승부 끝에 마지막에 던진 커브가 타자를 얼어붙게 했다. 

고등학교 때도 없었던 투구 수였다. 이의리로서는 자신의 한계를 실험한 셈이 됐다. 그 실험에서 뭔가를 얻은 게 없다면 사실 무의미한 투구였다. 그러나 이의리는 뭔가를 얻었다고 했다. 일단 그 투구 수에도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의리는 “118구를 던질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었나보다”고 웃었다. 자신의 한계가 118구 이상이라는 것을 확인한 듯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집중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사실 경기마다 100구 가량을 던지는 선발투수가 모든 공에 혼을 불어넣기는 어렵다. 모든 공에 일일이 다 집중하며 던지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이의리 또한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7회 승부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투구 수가 많아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공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은 이의리는 “집중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의리는 “상황을 되돌아보면 집중력을 가지고 던져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면서 “오히려 마지막 타자를 상대할 때의 집중력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설사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 와도 집중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승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또한 그 상황에서 던져보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다.

올 시즌 중 118구를 던질 기회가 다시 있을지는 의문이다. KIA 벤치의 관리 기조는 확실하다. 지난해 1군 94⅔이닝을 던진 이의리에게 갑자기 크게 불어난 이닝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간에 관리차 휴식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180이닝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에이스가 되어야 하는 선수다. 그 가능성을 너무 급하지 않게만 좇는다면, 올해는 성적 이상의 뭔가를 남길 수 있는 시즌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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