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키워드 키워드 기준 i금일 기준 많이 본
뉴스 기사의 키워드 수집

한국 올림픽 출전사 ⑪ 복싱,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서도 효자 노릇

작성일: 2016.07.16 07:00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지용주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복싱 라이트플라이급 결승전에서 베네수엘라의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와 접전을 펼치고 있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앞두고 분단된 나라들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문제가 앞두고 또다시 터졌다. 대회 개막 직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동독은 독일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대만은 중화민국으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고쳐 부르기로 결정하고 동독과 대만은 같은 해 111일부터 시행하는 한편 북한은 다음 대회인 뮌헨 대회부터 시행하고 이번 대회에서는 북한이라는 호칭으로 참가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에 불복한 북한은 이미 입촌해 있던 선수단을 빼 돌아가 버렸다.

또 하나의 문제는 멕시코 국내의 소요 사태였다. 9월 멕시코시티에서는 대학생들이 올림픽 반대 운동을 일으켰고 102일에는 군이 학생과 시민 200여 명을 살상하고 1천여 명을 검거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학생들이 대회 개막을 닷새 앞둔 105일 평화 선언을 발표해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멕시코시티 대회는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총과 장갑차로 질서가 유지되는 대회가 됐다.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1012일부터 27일까지 112개국에서 55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펼쳐졌다. 대회 개막식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화려했고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성화가 여성 주자인 노마 엔리케타 바실로에 의해 점화됐다. 또 인공위성을 거쳐 전 세계에 중계됐다. 여름철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여성 선수들에 대한 성별 검사와 함께 선수들의 금지 약물 복용 여부를 조사하는 약물검사도 실시됐다.

한국은 이 대회에 복싱과 레슬링, 사격, 사이클, 역도 등 입상을 기대하는 종목과 지역 예선을 통과한 남자 농구와 여자 배구 그리고 육상, 체조, 수영 등 기초 종목 등 10개 종목에 76(임원 21, 선수 55)의 비교적 적은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직전 대회인 도쿄 대회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한국 선수단이 금메달 후보로 내세운 선수는 레슬링 자유형 플라이급의 오정룡, 복싱 페더급의 김성은이었다. 오정룡은 1967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동메달리스트, 김성은은 1966년 제5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리스트였다.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분전했다. 복싱 라이트플라이급의 지용주는 준결승에서 폴란드의 휴버트 스크리크자프를 꺾고 결승전에 올랐다. 베네수엘라의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와 맞붙은 지용주는 경기 초반부터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고 2라운드에서는 로드리게스가 버팅으로 감점을 받아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3회전 들어 주심은 로드리게스의 버팅을 못 본 채 했고 지용주는 페이스가 흔들리며 몇 차례 펀치를 허용했다. 전체적인 경기 내용에서 지용주는 앞서 있었다. 그러나 판정 결과는 2-3으로 지용주의 패배였다. 경기 장소가 중미였고 결승 상대가 남미 선수였다는 점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러나 라이트플라이급은 멕시코시티 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세부 종목으로 채택된 체급으로 지용주로서는 어찌 보면 행운의 메달이었을 수도 있다. 밴텀급의 장길순(당시 이름 장규철)은 준결승에서 우간다의 프리다디 무크왕가에게 판정으로 져 동메달을 차지했다.

금메달 후보 김성은은 1회전에서 역시 메달 후보였던 오카모토 다다시(일본)3-2 판정으로 물리쳤으나 2회전에서 터키의 세이피 타타에게 2-3으로 판정패했다. 레슬링의 오정룡은 3회전에서 일본의 나카타 시게오에게 판정패한 게 부담이 돼 4차전에서 벌점이 기준치를 넘어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도쿄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올림픽에 나선 여자 배구는 개막식 다음날 벌어진 첫 경기에서 폴란드와 맞서 1, 2세트를 15-10, 15-12로 따 낸 뒤 3, 4세트를 10-15, 12-15로 내줘 승부를 마지막 세트로 넘겼다. 5세트에서도 최선을 다했으나 듀스 끝에 15-17로 아깝게 졌다. 이후 페루와 소련에 0-3으로 졌으나 미국과 멕시코를 3-1, 3-0으로 잡는 등 선전했다. 당시 세계 수준의 경기력을 자랑하고 있던 일본에 0-3(5-15 5-15 4-15)로 힘없이 물러났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불꽃 투혼을 발휘해 체코를 3-1로 따돌리고 최종 전적 34패로 애초 목표치인 5위를 차지했다.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잡았다면 1976년 몬트리올 대회가 아닌 이 대회에서 구기 종목 첫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룰 수도 있었다. 여자 배구 최종 순위는 1위 소련, 2위 일본, 3위 폴란드였다.

남자 농구는 B조 조별 리그에서 소련에 59-89로 지는 등 16패를 기록하며 13~16위 순위 결정전으로 밀려난 뒤 13위 결정전에서 아시아의 라이벌 필리핀에 63-66으로 져 14위에 그쳤다.

3명의 선수가 출전한 마라톤에서는 우승 기록이 2시간 20분대일 정도로 전반적으로 기록이 저조한 가운데 이명정이 2시간 3852초로 29위를 한 게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1970년 제 6회 방콕 대회와 1974년 제 7회 테헤란 대회에서 아시아경기대회 2연속 우승을 하게 되는 여자 포환던지기의 백옥자는 메달권 선수들과 6m 정도의 차이를 보였지만 13위를 기록해 가능성을 확인했다.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에 걸쳐 8명의 선수가 나선 레슬링에서는 기대주 오정룡 외에 자유형 페더급의 최정혁, 그레코로만형 밴텀급의 안천영 등이 메달권 진입 문턱인 4차전에서 탈락해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은 복싱에서 딴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로 108개 참가국 가운데 종합 순위 36위를 차지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