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KBO가 신설한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스위치 투수 관련 규정을 들여다보자. 공식 야구규칙 8.01 (f)항은 “투수는 투수판을 밟을 때 투구할 손의 반대쪽 손에 글러브를 착용함으로써 주심, 타자, 주자에게 어느 손으로 투구할 것인지 표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투수는 동일 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투구하는 손을 변경할 수 없다. 단 타자가 아웃되거나 타자가 주자가 될 경우, 공수교대가 될 경우, 대타가 나올 경우, 투수가 부상당할 경우 투구하는 손을 변경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는 스위치 투수의 일반적인 상황보다는 스위치 투수가 스위치 타자를 만났을 때, 즉 서로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투구/타격하기 위한 자리싸움(?)이 벌어질 때를 염두에 두고 만든 조항이며, 투수가 자신의 패를 먼저 보여주는 것을 지시하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바로 이를 두고 ‘억지’라는 표현을 쓰며 불만을 표한 것이고.
그렇다면 한국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프로야구는 어떨까?
19세기, 18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토니 물레인, 엘튼 챔버레인, 래리 커코란, 조지 윌러 같은 투수들이 양손 투구를 실제 경기에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데드볼 시대’ 이후 현대 야구에서는 몬트리올의 베테랑 그렉 해리스가 1995년 자신의 은퇴 직전 홈경기에서 팬들에게 서비스 차원으로 오른손-왼손-오른손 순으로 4타자를 상대, 볼넷 1개와 아웃 3개를 잡아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벤트성이었으며 최우석과는 다른 면이 있다.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양키스는 밴디트를 지명한다. 이때만 해도 양키스는 이 젊은 선수가 어느 날 경기에서 양 팀 덕아웃-심판-중계진 모두를 ‘멘붕’에 빠트리는 유명인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던 것 같다. 우완 정통파의 딜리버리와 좌완 사이드암(또는 로우 쓰리쿼터)의 딜리버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정통 스위치 투수' 밴디트는 양키스의 AAA팀에서 경기를 치루다 랄프 엔리케즈와 만났다. 문제는 엔리케즈 또한 스위치 타자. 이 둘은 자신이 유리한 투구/타석에서 승부하고자 서로의 스탠스에 맞춰 좌완-우완, 좌타석-우타석을 번갈아 들어서는 치열한 기 싸움(?)을 전개한다. 당시 현지 중계진의 코멘터리를 들어보면 (다수 중략/의역)
“밴디트가 양손 글러브를 바꿔 끼니까 다시 엔리케즈가 반대편 타석으로 들어섭니다”
“제가 야구경기를 본 이래로 이런 장면은 또 처음 봅니다. 얼마나 많이 저렇게 바꿔 설수 있는걸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장면은 처음 보네요”
“스포츠 하이라이트에 뽑힐 만한 이 장면에 감독이 항의하러 나오네요”
“심판이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어떤 룰에 근거해서 타자나 투수가 몇 번이나 바꿀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