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도 실패한다" 英 전설의 의미심장한 평가…11관왕에도 1년 전 세계선수권 우승 불발 지적→"그 실패가 뉴델리 챔피언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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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과거 영국 여자복식 간판으로 당대를 호령한 질리언 클라크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해설위원이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삼성생명)을 거론하며 정상 등정에 성공한 타이틀 홀더에게 실패가 지니는 '특별한' 의미를 조명했다.
클라크 위원은 27일(한국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선수가 오랜 기간 성공의 정점에 머무는 일은 드물다. 가장 성공적인 랭커조차 자신의 스포츠 여정에서 필연적으로 오르내림을 경험한다"면서 세계 정상급 승부사가 좌절을 딛고 각성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1961년생 선배의 눈에 안세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클라크 위원은 지난해 12월 박주봉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이 안세영의 2025시즌 성과를 평가한 발언을 주목했다.
안세영은 지난 시즌 여자단식에서 무려 11차례 정상에 오르는 기록적인 한 해를 보냈다.
여자단식 1인자다운 독보적인 성적이었지만 유일하게 채우지 못한 퍼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세계선수권 우승이었다.
클라크 위원은 "박 감독은 안세영이 2025년 여자단식 전장에서 수확한 11개 우승에 관한 질문을 받자 그 가운데 월드 챔피언십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고 적었다.
이어 "(세계선수권 우승 불발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위대한 안세영의 1년에 흠을 남긴 하나의 실패라고 박 감독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 안세영은 지난 시즌 그야말로 세계 무대를 휩쓸었다.
배드민턴 연감에 오래도록 회자될 대장정을 완성했다.
7년 전 남자단식 모모타 겐토(일본)가 세운 단일 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을 작성해 GOAT 반열에 오를 가장 강력한 현역 후보로 올라섰지만 올림픽 다음가는 권위를 지닌 월드 챔피언십 정상엔 서지 못해 문자 그대로 옥에 티를 남겼다.
다만 클라크 위원이 주목한 지점은 '실패 이후'다.
종목을 막론하고 톱클래스 랭커에게 패전과 낙담은 금자탑과 대척점에 놓인 결과물이 아니라 더 견고한 '나무'로 거듭나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세계선수권 챔피언 8인이 대표적인 선례(善例)다.
남자단식 우승자 알렉스 라니에(프랑스·7위)는 지난 3월 전영오픈 1회전에서 충격 탈락했고 한 달 뒤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유럽선수권에서도 8강에서 고개를 숙였다.
한때 남자복식 세계 1위를 전유하던 량웨이컹-왕창(중국·3위) 조 역시 최근 1년간 자신들보다 랭킹이 낮은 중국 4개 페어에 연패하며 부침을 겪었다.
한국 여자복식 백하나-이소희(이상 인천국제공항·2위) 또한 굴곡이 적지 않았다.
뉴델리 세계선수권에 나서기 전까지 류성수-탄닝(중국·1위) 조를 상대로 올해 치른 5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패했다.
5전 6기 끝에 이번 파이널 매치에서 2-0(21-16 21-15)으로 '만리장성'을 허물어 국내외 배드민턴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혼합복식 톰 지켈-델핀 델뤼(프랑스·5위)는 이번 시즌 유럽선수권에서 1번 시드를 획득하고도 첫판에서 굴욕적인 완패를 당해 씁쓸히 귀국길에 올랐다.
하나 이들은 모두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2026 세계선수권에서 포디움 가장 높은 곳에 발을 올렸다.
클라크 위원은 "결국 이번 세계선수권 8인의 금메달리스트는 최근까지 저마다 '실패'라 여겨질 만한 경험을 했다"고 짚었다.
1980년대 유럽 최고의 복식 랭커로 한 시대를 풍미한 노(老) 해설자는 특히 라니에 도약을 콕 집어 주목했다.
실제 라니에 코치인 케스투티스 나비카스는 "5개월 전 전영오픈에서 당한 첫 경기 충격패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었고 이를 토대로 세계선수권 준비 과정에 변화를 줬다" 귀띔했다.
클라크 위원은 "새롭게 탄생한 월드 챔피언 모두 자신들의 실책에서 무언가를 배웠다고 기꺼이 인정할 것이라 확신한다"며 "그 시련이 이들을 지금의 뛰어난 챔피언으로 만들고 다듬는 데 큰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 단언했다.
안세영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기념비적인 단일 시즌 11승을 쌓고도 파리 세계선수권 우승을 놓친 아쉬움은 또 다른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세계 최정상에 오른 뒤에도 완벽한 성공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패배에서 얻은 교훈이 다시 정상으로 향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게 클라크 위원의 시선이다.
그는 이번 뉴델리 세계선수권을 두고 "스포츠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회였다"면서 남자단식과 혼합복식에서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비롯해 예상 밖의 챔피언이 다수 탄생한 점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올여름 뉴델리 패자(覇者)들의 약진이 "길을 가다 한 번 넘어졌다 해서 여정을 끝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름답게 일깨웠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클라크 위원은 고 넬슨 만델라의 유명한 어록을 인용했다.
"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그저 이기거나, 배울 뿐이다."
세계 최강 안세영도 패주를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의' 처신이다. 클라크 위원이 바라본 왕좌의 주인 공통점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자신의 향후 성취 양분으로 바꾸는 힘이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결승행 무산과 고질적인 왼발·무릎 통증, 지난 3월 왕즈이(중국)에게 입은 버밍엄에서의 일격, 주변의 높은 기대치, 흔들릴 수 있는 동기부여 등 숱한 난관을 돌파한 한국인 여제는 클라크표 실패론의 가장 탁월한 예증 자료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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