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순희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유도 여자 48kg급 결승에서 일본의 다무라 료코를 누르고 북한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3일 오후 축구 팬들과 만난 스포티비뉴스 조형애 기자의 [SPO 톡] '北 원정 준비' 윤덕여 감독이 보는 북한 대표 팀 "매년 강해졌다" 관련 기사를 보면 북한이 어떻게 세계적인 여자 축구 강국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기사의 일부를 소개한다.

북한 여자 축구는 정평이 나 있다. 남자 축구와 견줄 정도로 엄청난 활동량과 탄탄한 조직력을 자랑한다. 2012년 12월 여자 대표 팀을 맡은 뒤 이듬해부터 매년 북한을 상대한 윤덕여 감독은 "북한의 객관적 전력이 (한국에) 앞선다"며 "세계 대회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북한은 정책적으로도 여자 축구를 장려한다. 지원을 많이 해 주는 것으로 안다. 매해 강해졌다"고 했다. 윤 감독이 본 북한 축구의 강점은 체력과 경험, 그리고 넓은 선수층이다.

"체력적으로 뛰어난 선수들도 많고, 연령별 대표 때부터 우승을 했던 경험을 가진 선수들로 구성이 돼 있다. 선수층도 넓다. 특정 선수가 빠져도 그 선수를 대신할 수 있는 선수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U-20 월드컵 우승, U-17 월드컵 우승도 했다. 그 선수들이 A대표 팀으로 가니, 선수 수급도 잘된다. 그게 큰 강점이다. 우리는 그렇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윤 감독은 조직력도 북한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김광민 감독이 이끄는 4.25 체육단 소속 선수들이 대표 팀에서도 함께 발을 맞춘다. 그는 "감독의 요구와 축구 철학이 잘 공유돼 있다. 경기 외적으로도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이 1980년대 후반 이후 스포츠 세계 10강 수준으로 올라서는 데 여자 선수들이 크게 이바지했던 것과 비슷하게 북한 스포츠도 여성들에게 상당한 수준에서 기대며 발전했다.

윤 감독이 설명한 FIFA(국제축구연맹) U-20 여자 월드컵에서 북한은 2006년 러시아 대회에서 처음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파푸아뉴기니 대회는 두 번째 우승이다. 이 대회에서 북한은 우승 2차례와 준우승 1차례, 4위 1차례로 세계적인 여자 축구 강국 미국(우승 3차례, 3위 1차례, 4위 1차례)에 버금가는 통산 성적을 올렸다.

2006년 대회 우승 과정을 보면 북한 여자 축구의 실력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대회 C조의 북한은 조별 리그에서 멕시코와 스위스를 4-0, 독일을 2-0으로 가볍게 제치고 1라운드를 통과했다. 8강전에서 프랑스를 2-1로 꺾은 북한은 브라질을 1-0으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그 무렵 전력이 다소 약해지기는 했지만 쑨원이 맹활약하던 시절 미국과 세계 여자 축구계를 양분한 중국이었다. 북한은 김성희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5-0의 큰 점수 차로 중국을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6경기에서 18득점 1실점의 놀라운 경기력을 보였고 홍명금 김영화 길선희가 베스트 11에 뽑혔다.

북한은 여름철 올림픽에서 금메달 15개와 은메달 15개 동메달 23개를 획득했는데 이 가운데 여자 선수가 금메달 7개와 은메달 6개 동메달 8개를 차지했다. 유도 계순희와 탁구 리분희 등 북한 여자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한국 스포츠 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북한 여자 스포츠는 축구 외에 몇몇 종목에서 세계 정상의 기량을 자랑했다. 1960년대 신금단과 한필화는 육상 중거리와 스피드스케이팅의 세계적인 선수였다. 신금단은 제 3세계 나라들이 개최한 가네포(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에 북한이 출전한 문제로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출전하지 못한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나섰다면 400m와 800m에서 금메달이 유력했다. 신금단은 이들 종목의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을 갖고 있었다. 한필화는 1964년 인스브루크 동계 올림픽 3,000m 은메달리스트다.

신금단의 뒤는 1999년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이 이었다. 김영숙 강옥선 황혜숙 등이 뛴 북한이 1972년 뮌헨 올림픽 여자 배구에서 딴 동메달은 한민족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단체 구기 종목에서 처음 얻은 메달이었다. 한국은 다음 올림픽인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서 ‘나는 작은 새’ 조혜정과 이순복 유정혜 유경화 변경자 등이 여자 배구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왼손 펜홀드 드라이브 전형에 스카이서브를 구사한 박영순은 1977년 버밍엄, 1979년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식에서 연속 우승했다. 탁구에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한민족이지만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단식에서 두 차례 세계 정상에 오른 이는 박영순이 유일하다. 그때도 중국 탁구의 위세는 대단했다. 이질 라버의 거신아이(葛新愛), 스카이서브의 장더잉(張徳英)이 세계 무대를 주름 잡던 시절에 이룬 뛰어난 성적이다.

박영순의 뒤는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의 주역 리분희와 유순복이 이었지만 박영순만큼의 성적은 남기지 못했다. 한국의 현정화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가 뛰는 모든 종목(1987년 뉴델리 대회 복식 1989년 도르트문트 대회 혼합복식 1991년 지바 대회 단체전 1993년 예테보리 대회 단식)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단식 2회 우승은 하지 못했다. 한 탁구인은 “북한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름대로 '북한형 탁구'를 만들었고 1970년대 최고의 작품이 박영순이었다"고 설명했다.

오는 4월 평양에서는 201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최종 예선 B조 경기가 열린다. 이 대회가 중계된다면 한국 축구 팬들이 남북 경기를 비롯해 ‘북한형 여자 축구’의 실력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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