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파업을 반대하는 관중들
▲ 1994년 파업을 반대하는 관중들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MLB)를 정상적으로 보기가 힘들어졌다. 구단주들(사무국)과 선수노조가 끝내 새 노사단체협약(CBA) 갱신에 실패했다. 이로써 4월 1일(한국시간) 개막전이 열릴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처음부터 가시밭길이었다. 지난 CBA에서 불리한 조항이 많았던 선수노조가 이번에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이에 구단주들은 12월 초 직장폐쇄를 선언해 모든 메이저리그 업무를 중지시켰다. FA 선수들을 무적(無籍) 상태로 남겨두면서 선수노조를 압박했다. 이후 양측은 43일 동안 만나지도 않고 허송세월했다.

뒤늦게 재개된 협상은 양측의 미온적인 태도로 지켜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했다. 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스프링캠프가 밀렸다.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낙관론자를 자처했지만, 협상 분위기는 비관론에 더 무게가 실렸다.

구단주들을 대변하는 사무국은 스프링캠프 기간이 최소 한 달은 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규시즌이 아무런 차질없이 개막하려면 3월1일까지 협상이 마무리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감시한을 정하면서 또 한 번 선수노조를 옥죄었다. 선수노조 입장에서는 주도권을 가지려는 구단주들의 태도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양측은 협상 마감시한이 다가온 지난주부터 매일 만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발동이 걸렸다. 하지만 눈에 띄는 진전은 없었다. 특히 가장 민감한 사치세와 보너스풀, 리그 최저 연봉을 두고 계속 옥신각신했다. 돈이 걸린 문제라서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양측은 기존 협상 마감시한을 앞둔 1일, 무려 16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수차례 들락날락하면서 분주한 모습을 보여줬다. 적극적인 협상 의지는 분명 긍정적인 기류였다. 실제로 사무국은 "합의점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상당 부분 교감이 있었다"고 알렸다. 협상 마감시한을 늦추면서 최악의 사태는 피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결과적으로 헛된 희망이었다. 양측은 2일 마감시한 몇 시간을 앞두고 분위기가 급격하게 냉랭해졌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지 못하고 오늘의 적으로 남았다. 구단주들은 남은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 마감시한까지 늦췄지만, 노조가 어제와 다른 태도로 나오면서 협상이 틀어졌다고 지적했다. 선수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알렉스 우드(31)는 미디어를 통해 책임을 떠 넘기는 구단주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서로에게 비판 수위가 높아진 건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일단 사치세 한도부터 생각이 달랐다. 구단주들은 올해 2억2000만 달러를 3년간 유지한 뒤, 2025년 2억2400만 달러, 2026년 2억3000만 달러로 살짝 높였다. 반면, 선수노조는 올해 당장 2억3800만 달러로 시작하길 바랐다. 그리고 매년 600만 달러를 늘리고 나서 2026년에는 700만 달러를 늘린 2억6300만 달러를 주장했다.

사치세는 양측이 상충되는 부분이다. 선수노조는 사치세 한도를 크게 높여 구단들이 마음껏 돈을 쓰길 바란다. 사치세에 발목이 잡혀 구단들이 지갑을 닫는 건 선수들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력을 보강하지 않는 팀이 생기면 탱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구단주들은 사치세 한도를 무작정 높이는 걸 원하지 않는다. 사치세는 리그 발전과 구단 수익 공유 기금으로 쓰이는데, 사치세를 내는 구단들이 줄어들면 받을 수 있는 돈도 그만큼 적어진다.

사치세는 페널티도 걸려 있어서 다루기가 더 복잡하다. 그런데 이번 CBA는 다루기 복잡한 사안이 하나 추가됐다. 연봉 조정 대상자가 아닌 선수들에게 나눠주는 보너스풀이다.

양측은 보너스풀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구단주들은 3000만 달러, 선수노조는 8500만 달러다. 선수노조는 원래 1억1500만 달러에서 3000만 달러를 낮추는 대신 점진적으로 500만 달러씩 추가되는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 마지막 2026년에는 1억500만 달러로, 양측의 차이는 7500만 달러가 된다. 금액적인 측면에서는 사치세보다 더 차이가 크다.

최저 연봉도 엇갈렸다. 구단주들은 최종 제안에서 최저 연봉을 70만 달러로 올렸다(최대 74만 달러). 하지만 선수노조가 고수한 최저 연봉(72만5000달러)에는 미치지 못했다. 최저 연봉은 금액에서 비롯된 차이보다는 양측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선수노조는 구단주들의 최종 제안을 만장일치로 거절했다.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협상 결렬을 공식 발표하면서 정규시즌 첫 두 시리즈는 불가피하게 취소된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단축시즌을 제외하면 정규시즌이 밀린 건 1995년 이후 처음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에 또 하나의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첫 두 시리즈가 없어지면 정규시즌 개막은 약 일주일 정도 늦어진다. 그러나 현재 분위기로는 일주일만 늦어지면 그나마 다행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보이는 양측의 관계가 언제 회복될지는 알 수 없다.

양측은 협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쪽은 협박을 했고, 한쪽은 투쟁을 했다. 협상이 아니라 싸움이었다. 슬픈 예감이 틀리지 않은 뻔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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