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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역사를 바꾼 위대한 인물 재키 로빈슨, 4월 15일은 로빈슨 데이

작성일: 2016.04.16 06:40 문상열 특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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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다저스타디움에서 버드 셀리그 전 커미셔너가 재키 로빈슨의 미망인 레이첼 로빈슨 여사에게 공로상을 주고 있다. ⓒ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다저스타디움, 문상열 특파원] 미국 스포츠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거쳐 갔다. 골프의 타이거 우즈, 농구의 윌트 챔벌레인,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 풋볼의 프레데릭 프리츠폴라드(최초의 프로 미식축구 흑인 쿼터백), 테니스의 빌리 진 킹 등. 이들은 미국 스포츠 역사를 바꾼 인물들이다.

언론은 '역사를 바꾼 스포츠인(Athletes who changed sports history)'의 랭킹에 관심을 갖는다. 누가 미국 스포츠 역사를 바꾼 최고 인물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단연 1위가 미국 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흑백의 장벽을 깬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이다. 15(현지 시간)은 재키 로빈슨이 1947년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날이다. 올해가 재키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입성 69년째다. 

이날 코리안 빅리거를 포함해 모든 메이저리거들은 등 번호 42번을 달고 뛴다. 로빈슨의 등 번호이다30개 전 구단에 영구 결번돼 있다. 로빈슨을 배출한 다저스는 구단주 매직 존슨, 구단 고문 돈 뉴컴,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감독(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프랭크 로빈슨 등이 참석해 다저스타디움에서 세리머니를 갖는다. 뉴컴은 다저스에서 로빈슨과 한솥밥을 먹은 사이고, 프랭크 로빈슨은 같은 시대에 내셔널리그에서 로빈슨과 함께 활동했다.

오늘날 타 인종들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차별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로빈슨 덕분이다. 흑인들은 물론이고, 중남미 선수들이 로빈슨을 추앙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로빈슨이 스포츠 역사를 바꾼 최고의 인물로 꼽히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엄연히 흑백 인종차별이 있었을 때 로빈슨은 그라운드를 누볐다. 홈런왕 행크 애런, ‘새이 헤이 키드윌리 메이스 등은 로빈슨의 빅리그 진출 이후 니그로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입문했다. 로빈슨도 니그로리그 최강팀 캔자스시티 모나크에서 한 시즌을 활동한 바 있다.

415일이 되면 메이저리그에서 로빈슨을 위한 성대한 행사가 벌어진 데에는 버드 셀리그 전 커미셔너의 공로가 절대적이다. 셀리그 전 커미셔너는 2004415일 맞아 ‘415일을 로빈슨 데이로 제정했다. 이때부터 모든 선수들이 등 번호 42번을 달게 된 것이다.

로빈슨은 단순한 흑인 메이저리거가 아니었다. 민권 운동가이기도 했다.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197253세의 나이에 당뇨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부인 레이첼 로빈슨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살면서 로빈슨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93세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탬파베이 레이스의 쿠바 친선경기 때도 참석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미국 스포츠에서 사후에도 로빈슨처럼 추앙 받는 인물은 드물다. 전기를 비롯해 수많은 서적, 여러 편의 영화, 다큐멘터리 필름 등 로빈슨을 조명하는 영역은 매우 넓다2013년 채드윅 보스맨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42’는 흥행에서 성공을 거뒀다. ‘Baseball' 'Civil War' 등의 다큐멘터리 필름의 거장 켄 번스는 재키 로빈슨 다큐멘터리 대작을 제작하고 있다.

로빈슨은 UCLA 출신의 만능 스포츠맨이다. 육상, 미식축구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로빈슨은 1947년 데뷔와 함께 호타준족을 발휘하며 내셔널리그 신인왕이 됐다. 메이저리그 신인왕은 재키 로빈슨 어워드. 6차례 올스타게임에 선발됐고, 1955년 브루클린 다저스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1949년 타격왕과 함께 리그 MVP로 뽑혔다. 두 차례 도루왕에도 올랐고 1962년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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