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 곽혜미 기자
▲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고척, 김민경 기자] "수비 저평가요? 괜찮아요. 그런 평가가 나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외야수 이정후(24, 키움 히어로즈)는 휘문고를 졸업하고 2017년 신인 1차지명으로 히어로즈에 입단했던 19살 때부터 언제나 '최고', '최다'라는 수식어와 함께했다. 데뷔 시즌부터 179안타를 때리며 KBO리그 역대 신인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울 정도로 타격 재능이 특별했다. 지난해는 타율 0.360(464타수 167안타)으로 생애 첫 타격왕의 영광을 안았다. 

이정후는 지난 4월 17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최연소, 최소 경기 900안타를 달성했다. 나이 만 23세7개월28일, 670경기 만이었다. 종전 최연소 기록은 이승엽(당시 삼성)의 만 24세9개월13일, 최소 경기는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당시 KIA)이 기록한 698경기였다. 17일 기준으로는 960안타를 기록해 프로 데뷔 6년 만에 1000안타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수비로는 그리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유격수로 뛰다 송구 입스 문제로 외야수로 전향할 때의 잔상이 진하게 남아 있다. 외야수로 전향한 뒤로 꾸준히 1군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빠르게 정상급 수준으로 올라섰다. 오히려 외야수로 전향한 뒤로는 강한 어깨를 살려 송구를 정확히 잘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다. 타격이 워낙 특출난 바람에 수비력은 조명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정후는 저평가하는 목소리는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그는 16일 고척 두산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괜찮다. 그런 평가가 나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가 보다 하고 신경을 안 쓴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이다. 좋게 말해주는 사람의 말만 듣는다"고 답하며 웃었다. 

이런 마음가짐은 수비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정후가 프로에서 뛴 6년 동안 늘 최고였던 비결일지도 모른다. 수비든 타격이든 자기 야구에 확신이 있고, 자신감이 있기에 본인에게 도움이 되고 긍정적 영향을 줄 말들만 골라 듣는 게 가능할 것이다. 

타격을 대할 때도 소신이 있다. 올해 홈런 10개로 팀 내 1위에 올라 있지만, 굳이 20홈런, 30홈런을 욕심내며 바라보진 않는다. '나는 안타를 많이 치는 타자'라는 이미지를 더 강하게 심어주는 게 나중에 해외 리그에 도전할 기회가 생길 때 더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이정후는 "홈런 로망은 없다. 오히려 안타나 타율에 로망이 있지 홈런 수에 로망은 없다. 내게 맞는 스타일도 아니다. OPS(출루율+장타율)를 많이 보는 시대이다 보니까 안타를 많이 안 쳐도 좋은 타자로 평가받을 수 있기는 한데, 타율과 안타에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야구는 변하지 않으니까"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나는 어떻게든 인플레이 타구를 많이 만드는 타자라 생각한다. 홈런이 많아지면 헛스윙이 많아지고, 이상한 팝플라이가 많이 나온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를 평가하고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때 홈런을 원하지도 않을 것 같다. 내 장점을 더 살려서 특출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빠르게 10홈런에 도달한 것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했다. 이정후는 "나는 작년과 바뀐 게 하나도 없다. 지난해 나만의 타격이 정립된 것 같아서 올해 기술 훈련도 빨리 시작했다. 나만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랬다. 아버지께서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 힘이 좋아질 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게 맞는 말 같다. 타격 메커니즘이 바뀐 게 없는데 홈런이 많아진 건,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다"며 지금처럼 안타 생산에 더 무게를 두고 타석에 서겠다고 했다. 

▲ 이정후의 시즌 10호 홈런 공을 잡은 김진희씨(왼쪽)와 김수연씨 ⓒ 키움 히어로즈
▲ 이정후의 시즌 10호 홈런 공을 잡은 김진희씨(왼쪽)와 김수연씨 ⓒ 키움 히어로즈

한편 이정후는 15일 고척 두산전에서 시즌 10호 홈런을 칠 때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다. 오른쪽 외야 관중석에 팬 김진희(21)씨가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라고 적은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김수연(20)씨 바로 앞으로 이정후의 홈런공이 날아왔다.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이정후는 송신영 코치한테 전해 들은 뒤 영상을 다시 돌려봤고, 퇴근길에 이 팬들이 홈런공을 들고 와 사인을 요청해 사인을 해줬다. 

이정후는 "공교롭게도 거기로 갔다. 야구 역사상 볼 수 없는 장면 같고, 신기한 경험 같다. 의도해서 치진 않았다. 그랬으면 다 홈런 치고, 10할 타자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김진희, 김수연씨는 16일 고척 두산전에도 경기장을 찾았다. 일주일 전에 미리 예매를 완료해 전날과 마찬가지로 외야석에 앉아 스케치북을 들고 응원하고 있었다. 이정후의 요청으로 구단은 두 팬의 좌석을 다이아몬드클럽 좌석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이정후의 사인 배트를 선물로 전달했다. 

두 팬은 "공이 이쪽으로 넘어올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공이 날아오는 순간에도 몰랐다. 공이 떨어진 순간 멍하고 얼떨떨했다"며 "본의 아니게 뉴스에 나오고 주변에서 연락을 많이 주셨다. 성공한 덕후가 된 느낌이다. 평생 해 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돼 꿈만 같다. 앞으로도 키움을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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