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 박찬숙이 18년 만에 코트로 돌아온다. 오랜 꿈인 단일팀 지휘봉을 예순네 살에 거머쥐었다. ⓒ 서대문구청
▲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 박찬숙이 18년 만에 코트로 돌아온다. 오랜 꿈인 단일팀 지휘봉을 예순네 살에 거머쥐었다. ⓒ 서대문구청

[스포티비뉴스=홍은동, 박대현 기자] ‘농구 여제’가 돌아왔다. 숙원이던 감독 직함을 달고서.

박찬숙 한국실업농구연맹 수석부회장(64)이 18년 만에 코트로 복귀한다. 오는 3월 창단하는 서대문구 여자실업농구단 초대 사령탑에 이름을 올렸다.

박 감독이 프로나 실업, 학교 등 단일팀 감독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7일 서울 홍은동 서대문문화체육회관에서 만난 박 감독은 “(단일팀 지도자는) 내 오랜 꿈이었다. 포기하지 않으니 오랜 꿈이 이뤄졌다"면서 "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와 참 설레인다. 점수를 주지 않는 농구보다 재미있는 '공격 농구'를 보여드리고 싶다”며 옹골진 출사표를 던졌다.

현역 시절 박 감독은 190㎝에 이르는 큰 키와 독보적인 농구 센스로 센터는 물론 포워드로서 플레이에도 능란한 올어라운드 빅맨이었다. 긴 슛 거리와 남다른 패스 감각, 적극적인 속공 참여로 현대농구가 요하는 빅맨 역량을 1980년대에 일찌감치 뽐냈다. 

최연소 여자농구 국가대표로 아시아 여자농구대회 4연패에 일조했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거는 등 눈부신 커리어를 쌓았다.

하나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낸 그에게 지휘봉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친정팀 태평양화학에서 코치를 맡고 2005년에는 동아시아대회 대표팀 감독 등을 맡았으나 단일 구단 사령탑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감독이 이끌 서대문구청 농구단은 프로·실업 무대 통틀어 첫 서울 연고 여자농구팀이다. 오는 5월 경북 김천에서 열리는 전국실업농구연맹전이 '감독 박찬숙'의 데뷔 무대가 될 전망이다.

그는 “농구인으로서 '큰 결정'을 해준 서대문구청에 감사드린다"면서 “흥미로운 공격 농구로 구민 분들께 (농구의) 묘미를 알려드리고 좋은 팀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 아울러 선수 기량을 발전시켜 프로행을 견인하는 것도 지도자로서 목표"라며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박찬숙 서대문구청 여자농구단 감독과 일문일답.

-서대문구 여자농구단 초대 감독에 취임했다. 소감이 어떤지.

여지껏 감독의 꿈을 꿔왔다.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꿈이 이뤄져 행복하다. 그간 대표팀 감독, 태평양화학 플레잉코치 등은 역임했지만 단일팀 감독은 처음이다. 프로 구단 지도자에 도전을 안한 건 아니었다. 하나 바람을 이루지 못했는데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다 보니 (18년 만에) 지휘봉을 잡게 됐다. 그래서 기쁨이 더 크다.

-종목을 불문하고 요즘 60대 지도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1959년생 박찬숙'의 취임은 이런 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맞다. 현재 지도자 나이대를 보면 거의가 4~50대다. 예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다. 구력(球歷)이란 말이 있지 않나. 구력은 무시 못한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원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세대교체) 속도가 조금 빠른 건 아닌지' '난 아직 감독의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물론 두려워하면서도 꿈은 잊지 않았다. '내 꿈은 언젠가 이뤄질 거야' 굳게 믿으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늦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금 머릿속이 올 시즌을 구상하느라 정말 바쁘다(웃음).

-오는 5월 실업연맹전이 데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첫 대회 목표가 궁금한데.

승부의 세계이지 않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다만 서대문구청 여자농구단은 올해가 첫해이니만큼 우승이 쉽진 않을 것이다. (실업 무대를) 체험하는 시간의 속성도 있을 거라 본다.

나도 아직 선수를 모르고 선수끼리도 서로 모르는 상황이다. 플레이를 맞춰보고 어떻게 하면 손발이 더 잘 맞는지 등을 경험하면서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나 또한 오랜만에 벤치에 앉는 거라 여러모로 '큰 체험'이 될 것 같다. 

-이달 안에 트라이아웃을 진행하는데 참가자의 어떤 면을 가장 눈여겨볼 생각인지.

최우선은 신장이다. 다른 거 안 보고 참가 선수 중에서 가장 키 큰 선수를 일단 뽑을 생각이다. 농구는 무조건 '중심'이 있어야 한다. 중심 없는 농구는 흔들리기 쉽다.

그다음은 기본기다. 기본기가 잘 닦여 있으면 농구의 모든 기술을 (수월히) 연마할 수 있다. 기본이 안됐는데 스킬을 익히면 다친다. 부상 확률이 높아진다. 농구는 결국 슛, 드리블, 패스 이 3가지다. 기본기가 갖춰지면 이 세 가지 요소가 쉬워진다. 신장과 기본기를 주의 깊게 살펴볼 요량이다.

-서대문구청에서 보여줄 '박찬숙표 농구'를 설명해 준다면.

박찬숙 농구는 공격하는 농구다. 주위에서 다들 말하지 않나. 수비 농구해야 한다고, 수비 농구를 해야 우승할 수 있다고. 난 그렇지 않다. 공격 농구를 해야 팬들도 많아지고 팀 성적 역시 좋아진다 믿는다. 

공격도 그냥 넣는 공격이 아니라 '어떤 플레이를 어떤 방식으로 구사해 득점한다'는 뚜렷한 패턴을 바탕으로 한 오펜스를 지향한다. 노룩패스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연습을 통해 패스 길을 파악해야 나올 수 있는 플레이다. (이런 플레이가 지속적으로) 원활히 나오면 팬들도 농구의 묘미를 만끽하고 선수 역시 신나게 뛸 수 있다.

-서대문구청 선수의 '프로행'도 감독으로서 목표에 속하는지.

당연하다. 내가 꿈꾸는 일 중 하나다. 이번 트라이아웃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프로에 못 간, 드래프트에서 이름이 불리지 못한 아이들이다. 또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진학이 무산된 친구도 많을 것이다.

농구는 여전히 하고 싶은데 갈 데가 마땅찮은 선수들인 셈이다. 그런 친구들을 가르쳐 프로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향상시키고픈 맘이 있다. 그것만큼 좋은 게 또 어딨겠나(웃음). 어린 선수들의 '두 번째 도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희망을 줄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

-서대문구청 창단은 국내 여자농구 활성화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농구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번 창단에 도움을 주신 분이 정말 많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님을 비롯해 (창단준비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한상호 상명대 교수 등 여러 인사의 노고가 있었다. 이분들이 안 계셨다면 실업팀 창단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지역구 체육 육성을 위해 힘써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여자농구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서대문구는 올해부터 연세대 대운동장 무료 개방 등 생활체육 진흥에 힘쓰고 있다. 이번 창단도 자치구 체육 발전 일환으로 읽힌다. 체육인으로서 서대문구의 이 같은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체육인으로서) 정말 감사드린다. 실업팀 창단을 계기로 여자농구가 활성화되고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졌다. 선수에겐 뛸 공간을 마련해 주신 거라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더 책임이 무겁다. 이성헌 구청장님을 비롯한 서대문구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 무조건 최선을 다하겠다.

-구민과 함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적극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당연하다. 적극적으로 만나고 싶고 또 그렇게 할 생각이다. (감독 취임 소식이 전해진 뒤) 구민들께서 응원을 참 많이 해주셨다. 나 역시 같은 서대문구민이 됐다는 일체감을 느끼고 있다. 이 기분이 참 괜찮고 기쁘다. 거리를 걸으면 정말 반가워들 해 주신다. 자리가 마련된다면 꼭 참석해 구민 분들과 스킨십을 늘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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