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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 베어스는 최초의 프로야구단이다. 1982년 1월 15일 초대 구단주인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앞줄 왼쪽)이 박용민 초대 단장에게 구단기를 건네고 있다.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야구를 진정 마음으로 사랑하셨던 분이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3일 타계하자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뜻을 보내고 있다. 고인은 '글로벌 두산'의 기틀을 다진 재계의 거인이었을 뿐 아니라, 야구계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구자였다. 야구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고, 한발 앞선 구단 경영으로 초창기 프로화를 선도했다.

두산그룹 창업자인 고(故) 박두병 초대 회장의 6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OB 베어스 초대 구단주로, 최초의 프로야구팀을 창단하는 역사를 남겼다.

두산그룹의 모태는 ‘박승직상점’이다. 서울 한복판인 종로4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상점인 ‘박승직상점’이 시작돼 서울을 연고로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려 했지만, MBC 청룡이 방송사를 등에 업고 서울을 선점한 탓에 결국 대의를 위해 3년간 연고도 없는 대전으로 내려갔다가 1985년에 올라오는 조건으로 통 큰 양보를 했다. 이후 1982년 1월 15일에 가장 발 빠르게 OB 베어스 창단식을 열었다. 최초의 프로야구팀 탄생이었다.

▲ OB 베어스는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면서 최초의 우승팀이 됐다. 우승 축하연 자리에서 박용곤 초대 구단주(왼쪽에서 두번째)가 선수들과 술잔을 부딪치고 있다. ⓒ두산 베어스
창단뿐만 아니라 OB 베어스는 초창기에 모든 면에서 앞서 나갔다. 원년에 가장 먼저 어린이회원을 모집하고, 가장 먼저 우승을 하고, 이듬해인 1983년에 가장 먼저 2군을 창설하고, 가장 먼저 전용훈련장을 만들었다. 다른 구단들이 모두 OB를 보고 배워갔다. 미국 워싱턴대 유학 시절 메이저리그에 심취해 메이저리그 관전은 물론 혼자 차를 몰고 시골 마을 쿠퍼스타운에 있는 명예의 전당을 찾아갈 정도로 야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남달랐다. 초대 구단주를 맡은 박 명예회장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야구인들 또한 고인을 향한 추억이 많다. 특히 초창기 OB 베어스에 몸담았던 이들은 그의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잊지 못했다. 야구인들은 고인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 김영덕 OB 베어스 초대 감독 ⓒ두산 베어스
◆김영덕(OB 베어스 원년 감독)=프로야구 첫해 회장님 덕분에 내가 OB 베어스 초대 감독이 될 수 있었다. 그룹 회장이셨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착하신 분이었다.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야구장에 자주 오셨지만 야구에 대해서만큼은 이러쿵저러쿵 말씀한 적이 없다. 그저 현장의 요구를 들어주고 필요한 부분을 말씀드리면 대부분 들어줬다.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도전을 하고 있던 박철순을 영입해 주셨고, 그래서 원년에 우리가 우승을 했다. 우승으로 은혜를 갚았다. 잊지 못할 분이다.

◆이광환(OB 베어스 원년 코치 및 1989~1990년 감독, 현 KBO 육성위원장)=우리 한국에 그런 구단주만 있으면 야구가 훨씬 더 빨리 발전했을 것이다. 나중에 LG 감독을 맡으면서 구본무 구단주를 만났지만, 두 분 모두 진정 야구를 사랑하셨던 분들이다. 지난해 구본무 구단주에 이어 이번에 박용곤 구단주도 세상을 떠나시니 많은 생각이 난다. 그 분들이 아니었으면 한국프로야구가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 야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진심으로 현장의 야구인들을 존중해주셨다. 보통 회장님들은 바빠서 가끔 야구장에 오시더라도 1군 정도만 보고 가시는데, 2군까지 오셔서 다른 말씀 없이 밖에서 지켜보시다 가시곤 했다. 한겨울에 야구장을 방문하셨을 때 "추운데 덕아웃으로 들어오세요"라고 해도 현장의 영역이라며 라인 밖에서 절대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셨다. 그 분으로 인해 OB가 초창기에 모두 앞서나갈 수 있었다. 나도 그 덕분에 최초로 일본(세이부 라이언스)과 미국(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유학도 갈 수 있었다.

◆윤동균(OB 베어스 원년 최고령 선수이자 1993~1994년 OB 베어스 감독, 현 일구회장)=그야말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선수 시절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생각난다. "난 기업이 다른 건 다 없어지더라도 야구단 하나는 가지고 갈 거예요"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당연히 기업이 있어야 야구를 하는 거지만, 그만큼 야구를 사랑하셨다. 먼저 세상을 떠나셨지만 생전에 사모님과 함께 야구장에 자주 오셨다. 말씀이 많지 않으신 분인데 "우리가 삼성한테 이길 게 뭐 있나? 딱 한 가지가 있다. 야구는 이길 수 있다"면서 야구단에 격려를 많이 해주셨다. 그래서 원년에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도 하고 그랬는지 모른다.

▲ 박철순 ⓒ두산 베어스
◆박철순(OB 베어스 원년 에이스이자 22연승 신화로 MVP 수상)=1981년 11월쯤 미국에서 시즌이 끝나고 휴가를 얻어 한국에 들어와 있었는데, 두산그룹에서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것도 회장님이라고 했다. 약속 장소로 나갔더니 직원이 회장실로 안내를 했다. 거기에 왕회장님(박용곤 두산그룹 회장)과 형제분들이 함께 계셨다. 왕회장님이 그 자리에서 "한국에서 뛸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 그제서야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걸 알았다.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올 수 있겠느냐는 의사 타진이었다. 그땐 밀워키 소속이라 "한국에서 야구를 할 수 있으면 좋은데 밀워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한국에서 뛸 의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박용민 단장에게 지시해 밀워키와 이적협상을 벌여서 나를 한국으로 데려오셨다.

◆김인식(1995년 OB 베어스 감독으로 우승, 2001년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우승)=야구를 진정 사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야구를 많이 아시는 분이었다. 1995년에 우승하고 1996년 미국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스버그에서 전지훈련을 하는데 거기까지 사모님과 함께 찾아오셨다. 당시 미국 유학 시절에 뉴욕 양키스 경기 보러 양키스타디움에 많이 다니셨다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1995년 우승할 때도 좋아하셨지만 두산으로 팀 명이 바뀌고 2001년 우승을 했을 때도 많이 좋아하셨다.

▲ OB 베어스는 1995년 김인식 감독(왼쪽에서 2번째)의 지휘 아래 창단 2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왼쪽에서 4번째)이 우승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김인식 감독은 두산 베어스로 구단명이 바뀐 뒤 2001년에도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두산 베어스
◆구경백(원년 OB 베어스 매니저로 출발해 구단 프런트, 해설위원으로 활동, 현 일구회 사무총장)=프로야구 초창기에 베어스뿐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의 발전을 앞장서 이끄신 분이다. 따뜻하신 분이었다. 마음으로 다가오셨다. 코칭스태프, 프런트와 스스럼없이 폭탄주를 마시곤 했다. 그래서인지 두산 베어스는 지금도 인화(人和)를 바탕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역대 모든 구단주를 통틀어 야구장을 가장 많이 찾아오신 분일 것이다. 몇 년 전까지 거동이 불편하실 때에도 휠체어를 타고 잠실구장에 오실 정도였다. 아마 하늘에서도 직접 만드신 베어스가 야구하는 것을 계속 지켜보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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