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세월도 최영을 '제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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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3년 전, 재일동포 최영(37)은 은퇴를 떠올렸다. 무릎 반월판 연골을 다쳤는데,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아팠다. '이대로 끝내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지난 12일 스포티비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최영은 "근거 없는 나에 대한 믿음이랄까? '아직 더 할 수 있다', '난 여기서 끝날 선수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며 "투지로 참아 냈다. 버티니까 통증이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완치됐다.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투지, 투지라고 말할 수밖에…"라며 허허 웃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찾아온다. 지난해부터 3연승을 달렸다. 두 번은 KO승이었다. 그리고 일본 종합격투기 중견 단체 딥(DEEP)의 미들급 타이틀 도전권을 다시 잡았다.
세 번째 타이틀 도전이었다. 최영은 2005년 우리나라 스피릿MC 미들급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얼음 송곳' 임재석에게 KO로 졌고, 2013년 딥 미들급 타이틀전에선 프라이드 출신 나카무라 가즈히로에게 0-5로 판정패했다.
2전 3기, 끝내 해냈다. 최영은 11일 일본 오사카 아베노 구민회관에서 열린 '딥 케이지 임팩트 2015 오사카 대회(DEEP CAGE IMPACT 2015 In OSAKA)'에서 챔피언 나카니시 요시유키(30·일본)를 3-2 판정으로 이겼다. 종합격투기를 시작한 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에 선 순간이었다.
"1라운드에 펀치 정타를 몇 차례 넣었다. 마지막에는 선 채로 백 포지션을 잡았고 수플렉스를 하는 상황에서 1라운드 버저가 울렸다. 2라운드는 기억이 거의 안 난다. 잽을 몇 번 맞았다. 3라운드에선 오른손 롱 훅을 맞췄다. 나카니시가 테이크다운을 3~4차례 시도했는데, 넘어간 적도 있지만 바로 일어나 포인트를 빼앗기지 않았다. 경기 영상을 봐야 정확히 어떻게 싸웠는지 알 것 같다."
최영은 "너무 죽기 살기로 싸워서 경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간절히 바라던 벨트, 그러나 기쁨보다 안도감이 더 컸다. 은퇴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격투기를 시작한 지 12년이 됐는데, 이번에 실패하면 이제까지 해 온 것이 전부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적잖은 나이니까. 물론 신체적인 면에선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지면 '계속할 이유가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승리하고 나니 다행이라는 마음 뿐이다. 더 싸울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감격스럽다는 느낌은 아니다. 왜냐면 더 높은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만족해 버리면, 여기가 끝이라고 주저앉을 수 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만족스럽지 않아'라고 되뇐다. 딥 챔피언은 목표로 가기 위한 통과점일 뿐이다."
그는 더 위를 보고 있었다.
최영은 우리나라 최초의 격투기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 '고 슈퍼 코리안'에서 이름을 알린 파이터다. 경쟁자 백종권, 이재선, 임재석에게 "제압해 봐"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2004년 데뷔해 프로 파이터 생활을 이어 오고 있다.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그가 아직까지 '반쪽 그래플러'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솔직히 반쪽짜리 선수였다. 타격을 거의 못했다. 아마 다들 아실 것이다. 타격의 필요성을 느끼고 훈련에 집중했다. 그런데 종합격투기가 재밌고 어렵다는 게, 균형을 맞추기가 참 힘들다. 타격에 집중하다 보니 그래플링 훈련을 거의 안 하게 됐다. 경기에서도 타격 비중이 늘었는데 '이상한 스트라이커', '반쪽 스트라이커'가 됐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레슬링과 주짓수 훈련에도 집중하고 있다."
2007년 경제적인 압박에 우리나라에서 고향 오사카로 돌아간 최영은 공사판을 전전한 적도 있다. 이삿짐도 날랐다. 운동할 시간이 없을 때는 막일도 훈련의 하나라고 최면을 걸었다. 격투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경호원을 겸업하며, 파이트머니로는 부족한 생활비를 벌고 있다. 4명이 하루하루 교대로 근무하는 조건이라 훈련 시간을 크게 빼앗기지 않는다.
"어떻게든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최영,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의 꿈은 '몰락한 노인'이 되는 것이다. "정점에서 크게 몰락하고 싶다. 나중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을 때 홀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내가 과거에 챔피언까지 지낸 사람이요'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야속한 세월도 제압하지 못한 그는 "운동을 같이 시작했던 나의 동기들, 친구들이 내가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을 알고 기뻐하고 있다는 마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그것이 전해져 내겐 큰 힘이 된다. 내가 계속 올라가는 걸 보고 그들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한국에 있는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제대로 몰락하려면, 내가 생각한 다다음 단계까지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떨어져야 진정한 몰락이다. 더 올라가야 몰락한 노인이 될 수 있다"며 하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그가 그리는 다음 단계 가운데엔 로드FC 미들급 챔피언 후쿠다 리키와 펼치는 '챔피언 대 챔피언' 맞대결도 있다. "후쿠다는 내가 인정하는 실력자다. 승산은 5대 5라고 본다. 서로 장단점이 있으니까. 지금은 같은 위치라고 평가한다. 우리가 만날 때까지 누가 더 성장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단체에 진출하길 원한다. "한국의 여러 파이터들은 UFC 진출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내 목표는 꼭 UFC가 아니다. 수천만 원의 파이트머니를 주는 큰 대회사와 계약하는 것이 바람이다. 돈이 반드시 중요한 건 아닌데, 파이트머니는 내 가치를 나타내는 숫자라 무시할 수 없다. 프로 파이터의 가격표 같은 것이니까"라고 말했다.
[사진] 일본 딥 챔피언에 오른 최영 ⓒMoozine.net 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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