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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호’를 이끄는 쇼월터 감독

작성일: 2015.12.21 07:20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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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민규 기자]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에는 매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이름을 딴 든든한 순양함이 버티고 있었다. 1943년에 완공돼 태평양함대에 배속된 순양함 볼티모어호(The Cruiser Baltimore)’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마킨 섬 상륙작전, 에니웨톡 전투, 마커스 섬 공습작전, 퀘젤린 침공, 마리아나 해전 등에 참전하며 활약했다. 이후 볼티모어 호가 많은 전투에 참전했는데도 침몰되지 않고 예비역이 될 때까지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군인이자 인정 받는 리더였던 W.C. 칼훈 함장의 뛰어난 지휘력 덕분이었다.

매릴랜드주의 볼티모어를 연고지로 둔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1996년과 1997,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쓰는 팀으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각각 2위와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이후 볼티모어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단 한번도 80승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다. 1998년에 79승이었다. 한 시즌 최고 순위는 2004년 동부지구 3위에 그쳤다.

그런데 2010, 정규 시즌 종료까지 57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칼훈 함장과 같은 뛰어난 지휘력을 지닌 벅 쇼월터(59)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볼티모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쇼월터는 그해 전임 감독들이었던 데이브 트램블리(1539), 후안 사무엘(1734)과는 달리 남은 경기에서 3423패를 기록하며 팀을 쇄신해 나갔다.

현역 메이저리그 감독 가운데 순수 감독 경력이 가장 오래된 이는 샌프란시스코의 브루스 보치(21). 보치는 1995, 샌디에이고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감독 경력을 이어 오고 있다. 그러나 현역 감독 가운데 가장 먼저 감독 생활을 시작한 이는 쇼월터다. 199236살의 나이로 감독 생활을 시작하며 올해로 메이저리그 감독 17년째가 된 쇼월터가 감독으로서 기록한 1,340승은 현역 감독 가운데 세 번째로 많으며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로는 31번째로 많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유명한 쇼월터는 그의 스승이자 약팀을 강팀으로 변모시키는 데 능하고 심판들에게 격렬한 항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빌리 마틴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83은퇴한 뒤 양키스 팜 시스템의 마이너리그 코치 생활을 시작한 쇼월터는 후일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을 할 만한 인재로 주목 받고 있었다. 그런 쇼월터를 위해 마틴은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마틴은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의 감독들, 특히 쇼월터에게 감독에게 필요한 조건들을 이야기해 주었고 또 왜 이런 시간들이 중요한지를 말해 줬다.

1989, 뉴욕 알바니에서 마이너리그 감독을 맡고 있던 쇼월터는 그해 겨울, 스카우트를 하면서 양키스로 감독 복귀를 앞두고 있었던 마틴으로부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며칠 뒤 애주가였던 마틴은 친구와 술을 마시고 트럭을 타고 가다가 집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일어난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쇼월터는 리포트를 보내지 못한 채 그의 스승을 잃었다.

쇼월터는 마틴을 여전히 존경하고 있는데 지난해 9, 쇼월터가 마틴의 통산 승수인 1,253승과 타이를 이룬 것에 대해 가능만하다면 그에게 승리를 더 주고 싶습니다. 확인하진 않았지만 내 기록이 그보다 더 오래 걸렸을 겁니다라며 자신의 스승을 치켜세웠다.

쇼월터는 그의 스승처럼 약팀을 강팀으로 만드는 데 훌륭한 능력을 지녔다. 쇼월터가 맡았던 팀은 그가 떠난 후 이듬해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맡은 첫 팀이었던 양키스와 두 번째 팀이었던 애리조나가 그랬다. 양키스는 1996, 애리조나는 2001년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는데 쇼월터는 1995년과 2000년까지 양키스와 애리조나의 감독이었다.

1992, 쇼월터가 메이저리그 감독이 돼 맡은 첫 팀인 양키스는 1981년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에 패한 후 10년 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며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부임 첫날 선수들과 미팅에서 400페이지가 넘는 규정집을 나눠 주기도 했던 쇼월터는 감독 부임 두 번째 시즌부터 양키스를 완전히 강팀으로 바꿔 놓았다. 1993, 양키스는 8874패로 4년 만에 5할 승률을 기록했으며 이듬해에는 7043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에 오르며 쇼월터에게 올해의 감독상을 안겼다. 그러나 연봉 문제로 선수노조가 파업을 선언하면서 그해 메이저리그는 시즌이 단축되고 말았고 당연히 포스트시즌은 열리지 못했다.

1995, 양키스는 1981년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양키스의 구단주였던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5년의 직무 정지를 받는 동안 유망주를 키우는 데 전념하며 세대교체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쇼월터는 돌아온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간섭을 견디지 못하고 그해 포스트시즌 종료 후 스스로 양키스를 떠났다.

양키스 시절과 애리조나에서 3(1998~2000년), 텍사스에서 4(2003~2006년) 이후 쇼월터가 네 번째로 맡은 팀은 바로 볼티모어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약팀 가운데 하나였던 볼티모어를 맡은 쇼월터는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그래 왔던 것처럼 팀을 쇄신해 나갔다이듬해에는 6993패에 그쳤지만 이후 지구 2, 3, 1, 3(2012~2015년)에 오르며 볼티모어를 다시는 무시하지 못할 전력으로 키워 냈다.

쇼월터의 능력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그는 볼티모어에 부임하기 전까지 불같은 성격으로 여러 마찰로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74(이하 한국 시간), ‘ESPN’이 진행한 설문에서 쇼월터는 최고의 감독순위에서 보치(24.2%)에 이어 2(21.5%)에 올랐지만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에 대한 항목에서는 많은 표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볼티모어 감독 부임 이후 더 이상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쇼월터의 친구인 팻 조던은 쇼월터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현재는 그 일들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부드러워진 그에게 놀랄 만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라며 쇼월터가 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쇼월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쇼월터는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선수들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쇼월터는 그 인터뷰에서 감독은 명예직일 뿐이며 선수들이 나를 따르는 것은 단지 내가 나이가 많아서 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선수들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며 감독이 선수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고 선수들이 감독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감독이 한 가지 하는 일이 있다면 만약 야구팀이 어둠을 가로지르는 배라면 적어도 그 배의 방향을 제시해 줄 방법은 안다라고 말했다.

 201210, 마케팅 전문 매체인 B2C(Business 2 Community)는 야구 팬이든 야구 팬이 아니든 쇼월터의 감독 커리어에는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8가지 리더십이 있다고 소개했다. 쇼월터의 8가지 리더십은 다음과 같다.


1. 안 좋은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2.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켜라

3. 책임을 기대하라

4. 경쟁할 때 두려움을 보이지 마라

5.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여라

6. 준비하라

7. 결과를 설정하고 최선을 다해라

8. 시대와 함께 변화하라


지난 17, 볼티모어 지역 일간지인 볼티모어선은 김현수(28)가 볼티모어와 2700만 계약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아직 볼티모어의 정식 발표는 없지만 강정호와 박병호에 이어 KBO 리그 출신 야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김현수가 볼티모어와 계약하면서 쇼월터 감독은 김병현과 박찬호에 이어 다시 한번 한국인 선수와 인연을 맺게 됐다.

쇼월터는 지난 3년 간 많은 지원을 받지 못했지만 훌륭한 시즌 성적을 기록했다. 아쉬운 점은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쇼월터는 언제쯤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쇼월터가 이끄는 볼티모어호는 성공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록 참조 :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사 참조 : 스포츠 온 어스, 뉴욕 타임즈, B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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