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통합 우승을 이끈 두산 베어스 장원준 ⓒ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나갈 일 별로 없을 것 같은데."

2019년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 한국시리즈를 준비할 때였다.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 눈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몸을 만들며 등판을 준비하는 베테랑 배영수(40, 현 두산 불펜 코치)가 눈에 들어왔다. 김 감독은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나갈 일 별로 없을 것 같은데"라고 한마디를 툭 던졌는데, 배영수는 "아닙니다, 한 번은 나갈 텐데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어쩌면 선수 생활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우승을 위해 땀을 흘렸다. 

두산은 한국시리즈 내내 키움 히어로즈와 접전을 펼쳤고, 김 감독의 말처럼 배영수가 나갈 만한 상황은 잘 오지 않았다. 두산이 시리즈 3승으로 앞선 가운데 맞이한 4차전. 11-9로 앞선 연장 10회말 기적처럼 배영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김 감독은 이용찬으로 경기를 끝낼 계획이었는데, 마운드를 두 번 방문하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불가피하게 투수를 바꿔야 했다. 위기에 찾은 가장 믿음직한 카드는 배영수였다. 배영수는 ⅔이닝 무실점 호투로 경기를 끝내며 헹가래 투수가 됐다.

배영수는 삼성 라이온즈의 왕조 시절을 함께한 에이스였다. 2001년, 2002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10년~2014년까지 모두 10차례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 7번 우승 반지를 꼈다. 커리어 내내 화려하기만 하진 않았다. 2015년 한화 이글스로 FA 이적했다가 2018년 시즌 뒤 베테랑이란 이유로 방출되는 아픔도 있었다. 김 감독은 그런 배영수에게 손을 내밀었고, 배영수는 기승전결이 완벽한 드라마를 쓰며 홀가분하게 유니폼을 벗었다.       

2019년 배영수를 떠올리게 하는 투수가 있다. 두산 좌완 장원준(36)이다. 장원준은 2014년 시즌을 마치고 두산과 4년 84억원 FA 계약을 맺었다. 2015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의 부임 선물이었다. 장원준은 이적 첫해부터 좌완 에이스로 자리 잡으며 황금기의 문을 열었다.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김 감독은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동안 줄줄이 FA가 유출돼도 불평 없이 "구단에서 장원준을 영입해 줬다"고 답했다. 그만큼 김 감독의 두산에 큰 지분을 차지한 투수가 장원준이었다. 

하지만 장원준은 2018년 시즌부터 부진의 늪에 빠졌다.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국가대표까지 두산 이적 후 3년 동안 쉬지 않고 던진 여파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허리, 고관절, 무릎 등 온몸이 성하지 않았고, 지난해까지 3년 동안 반등의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 장원준은 다시 마운드 위에서 웃을 수 있을까. ⓒ 곽혜미 기자
올해는 조금 달랐다. 1군 마운드에 32차례 서며 재기의 가능성을 보여준 한 해였다. 2018년부터 최근 4시즌을 통틀어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선 시즌이었다. 김 감독은 장원준을 왼손 불펜으로 활용했고, 장원준은 1패, 1세이브, 4홀드, 18⅔이닝, 평균자책점 6.75를 기록했다. 

지난 8월을 끝으로 1군의 부름을 받지 못했지만, 장원준은 퓨처스리그가 끝난 지금까지 착실히 몸을 만들며 기회를 엿봤다. 2군에서는 9월부터 19경기에 등판해 1승2패, 4홀드, 30⅔이닝, 평균자책점 3.82를 기록했다. 

두산은 정규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다. 키움과 와일드카드 결정전 2승1패, LG와 준플레이오프 2승1패를 기록했다. 외국인 원투펀치 아리엘 미란다와 워커 로켓이 부상으로 이탈한 가운데 최원준-곽빈-김민규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승기가 잡히면 이영하-홍건희-이현승-김강률 필승조를 투입해 틀어막는 전략으로 여기까지 왔다. 

플레이오프까지 올라오긴 했는데 험난했다. 미란다는 복귀가 어렵고, 곽빈마저 허리 근육통이 생겼다. 김 감독은 고심 끝에 장원준을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장원준으로선 정말 놓칠 수 없는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장원준에게 4년 전의 구위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 베테랑으로서 이미 많이 지친 후배들을 다독이고 부담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좋은 결과까지 내면 더할 나위 없다. 

2019년 시즌 뒤 은퇴를 선언한 배영수는 "이제 더는 미련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장원준도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내려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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