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밀라 발리예바가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공식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카밀라 발리예바가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공식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한 카밀라 발리예바 ⓒ연합뉴스
▲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한 카밀라 발리예바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베이징, 이성필 기자] 전통적으로 동계 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아이스하키 결승과 함께 하이라이트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22베이징동계올림픽은 그런 느낌이 아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불명예스러운 금메달리스트의 등장 가능성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카밀라 발리예바(16, 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15일 열린 베이징 올림픽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82.16점으로 선두에 올랐다. 80.2점으로 2위에 오른 안나 쉐르바코바(17, 러시아올림픽위원회)와는 1.96점 차다. 

프리스케이팅에서 발리예바가 자멸하지 않는 이상 금메달 획득은 유력하다. 높은 기초 기술 구성과 꽉 채운 프로그램 구성 요소 점수(PCS) 때문이다. 

다양한 쿼드러플(4회전) 점프 및 4+3 콤비네이션 점프를 앞세운 발리예바는 경쟁자인 쉐르바코바와 알렉산드라 트루소바(17, 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압도한다. 

▲ 카밀라 발리예바가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공식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카밀라 발리예바가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공식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이들은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맞붙었다. 이 대회에서 발리예바는 총점 259.06점으로 2위 쉐르바코바(237.42점)를 무려 21.64점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발리예바와 다른 경쟁자의 간격은 더욱 벌어졌다.

이런 기록을 살펴볼 때 도핑 논란 속에서도 경기 출전을 강행한 발리예바의 우승 확률은 매우 높다. 베이징에서 개인, 단체전 훈련을 모두 하면서도 점프의 높이가 확연하게 달랐고 스핀 속도가 빨랐다.  

발리예바는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이 드러난 상황에서 실전을 치렀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다. 지난해 12월 25일 열린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실시한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 성분인 트라이메타지딘이 검출됐다. 협심증 치료제와 흥분제로 사용되는 트리메타지딘은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지정한 금지약물이다.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는 발리예바에게 잠정적으로 출전 징계를 내렸지만 발리예바의 항소에 이를 철회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빙상경기연맹(ISU), WADA는 징계 철회가 부당하다면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다.

CAS는 발리예바가 미성년자이며 도핑 검사 결과가 6주가 지난 지난 8일에 통보된 것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발리예바의 출전을 허락했다. '미성년'이라는 나이 제한 울타리 혜택을 본 셈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발리예바가 메달권에 진입할 경우 시상식을 열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발리예바가 이번 올림픽에서 세운 기록은 별표(*)가 붙어 공식 인정되지 않고 '잠정적' 보류로 결정했다.

여러모로 '겨울 올림픽의 꽃'인 피겨 여자 싱글은 '불편한 드라마'로 변색했다. 도핑 파문을 일으킨 선수가 금메달리스트가 됐을 때 피겨의 종목 위상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 영국 매체 데일리텔레그래프가 발리예바의 소식을 전했다. ⓒ데일리텔레그래프 홈페이지 캡처
▲ 영국 매체 데일리텔레그래프가 발리예바의 소식을 전했다. ⓒ데일리텔레그래프 홈페이지 캡처

영국 매체 데일리텔레그래프는 16일 자 신문 1면에 'The day the Olympics died(올림픽이 사망한 날)'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발리예바의 사진을 부각하며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이 나타난 발리예바가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올림픽 정신에 '죽음'을 알렸다'고 비판했다.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 저널은 '발리예바는 이제 15살이다. 그래서 그녀는 올림픽 챔피언이 가능하다'라며 미성년 보호법이 명확하지 않은 도핑 테스트 규정에 쓴소리했다.

전 미국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 대표였던 애덤 리폰(미국)은 미국 올림픽 중계방송사인 NBC스포츠에 "기분이 나빴고 내 두 눈을 믿지 못했다.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선수가 올림픽 무대에 선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비꼰 뒤 "오늘(쇼트프로그램 경기가 열린 15일)은 정말 수치스럽고 어두운 날이다"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여자 싱글 전 대표였던 애슐리 와그너도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것은 경쟁할 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말이다. 즉 성인 무대에서 경쟁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 카밀라 발리예바(왼쪽)와 지도자인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 ⓒ연합뉴스
▲ 카밀라 발리예바(왼쪽)와 지도자인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 ⓒ연합뉴스

이수경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 및 국제심판도 "발리예바의 금지 약물 복용이 사실이라면 러시아 국가 차원에서 뿌리 뽑아야 한다.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도핑 테스트를 경험한 전 피겨 국가대표는 "도핑 테스트 검사 과정은 철저하다. 보통 도핑위원회 직원 1명, 자원봉사자 1명이 경기 후 선수를 따라다니며 검사한다"라며 상황을 전한 뒤 "그런데 아무리 선수가 어려도 이를 몰랐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라고 귀띔했다.

국제 스포츠계의 수많은 비판과 의혹은 멈추지 않고 있다. 올림픽 후반부를 발리예바의 신상 문제가 끌고 가는 중이다. 매일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열리는 브리핑도 발리예바에 대한 전세계 취재진과 IOC 사이의 공방이다. 땅에 떨어진 스포츠 윤리를 어떻게 회복하느냐는 문제 의식에 "IOC는 종결되지 않은 사안이니 더 지켜보자"라는 말만 되풀이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리예바는 메달이 결정되는 프리스케이팅을 눈앞에 두고 있다. 16일 훈련에서도 발리예바는 자신이 구성한 프로그램을 점검하는 여유를 보여줬다. 인터뷰를 사실상 거절하면서 취재진 앞을 웃고 지나가는 '연기'도 했다. 약물만 아니면 분명 김연아 이후 최고의 싱글 선수가 되기에 충분했지만, 이미 모든 부정적 시선에 갇혔다. 

발리예바가 금메달을 비롯한 어떤 메달을 획득해도 플라워 세리머니, 메달 수여식은 열리지 않는다. 기록도 확정되지 않기 때문에 명예 회복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숱한 논란 속에 발리예바는 프리스케이팅에 나설 25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이유야 어떻든 발리예바가 금메달을 목에 걸 경우 '올림픽 역사상 가장 불명예스러운 금메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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