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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합 혹은 집착, '전담 포수' 보는 다른 시선

작성일: 2017.06.10 06:05 김건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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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호(왼쪽)는 올 시즌 헨리 소사가 선발로 나선 11경기 가운데 10경기에 포수 마스크를 썼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김건일 기자] 2000년 LA 다저스 1선발이었던 박찬호가 등판할 때면 다저스 주전 포수인 토드 헌들리가 벤치에 앉고 대신 그해 팀에 새로 합류한 후보 포수 채드 크루터가 선발로 마스크를 썼다.

헌들리는 공격이 강하고 수비가 약했던 반면 크루터는 공격력이 떨어지는 대신 투수 리드를 영리하게 하고 블로킹 송구 등 수비 능력이 좋아 박찬호가 선호했다. 그해 박찬호가 등판한 34경기 가운데 32경기에서 출전해 평균자책점 2.91을 합작했다. 그해 박찬호가 헌들리와 3차례 배터리를 이뤘을 때 평균자책점은 7.91에 달했다. 크루터는 이듬해까지 박찬호의 전담 포수로 활약했다.

투수와 포수를 묶어서 뜻하는 '배터리(Battery)'라는 단어는 '두들기다', '맹렬히 포격하다'는 'batter'라는 영어 단어에서 유래했다. 전투에서 포격을 퍼부은 뒤 보병을 투입하듯, 상대 팀 타자 9명이 공격하기 전에 투수와 포수가 집중 포화로 상대를 두들겨 부숴야 한다는 의미다. 혹자는 영어로 '배터리'라고 불리는 건전지의 '음(-)과 양(+)같은 관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투수들은 포수와 궁합을 중요시한다. ESPN은 메이저리그 143승 올스타 투수 클리프 리가 2011년 자유계약이 됐을 때 뉴욕 양키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의 거액 제안을 거절하고 필라델피아와 계약한 이유로 필라델피아 주전 포수 카를로스 루이즈를 들었다. 루이즈는 투수 리드와 블로킹 및 송구 모두 메이저리그 최상급 포수로 평가받는다. 1979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마이크 플래너건은 1987년 토론토로 트레이드 됐을 때 가장 먼저 "토론토 포수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한 뼘 더 나아가 박찬호가 크루터를 원했듯 일부 투수들은 오로지 특정 포수와 호흡을 원했다. AJ 버넷은 2009년 양키스 주전 포수였던 호르헤 포사다 대신 후보였던 호세 몰리나와 함께 출전했고, 그레그 매덕스는 매 시즌 전담 포수가 바뀌었다.

KBO 리그에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삼성 1선발로 활약했던 김일융이 주전 포수였던 이만수 대신 송일수를 전담 포수로 뒀다. 김일융과 송일수 둘 다 재일 교포 출신으로 호흡이 잘 맞았다. 1985년 25승을 합작했다. OB 시절 박철순도 조범현 대신 후보였던 김경문과 배터리를 이뤘다.

당시를 떠올린 김경문 감독은 "감독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궁합을 무시할 수 없다. 아무래도 투수가 편안하게 느끼는 포수가 있다"고 말했다. 포수 출신인 조범현 전 kt 감독 역시 같은 말을 했다.

▲ 김재현(왼쪽)은 시즌 초반 박동원이 없을 때 신재영과 외국인 투수들이 나올 때면 전담 포수로 나왔다. ⓒ한희재 기자

올 시즌 장정석 넥센 감독은 주전 포수였던 박동원이 빠져 있던 시즌 초반, 투수 맞춤형으로 김재현과 주효상을 번갈아 기용했다. 퇴출 됐던 션 오설리번을 비롯해 앤디 벤헤켄 그리고 제이크 브리검 등 외국인 투수들과 신재영이 등판할 땐 철저히 김재현을 기용했고, 최근 최원태에겐 서울고 시절 함께 배터리를 이뤘던 주효상을 주로 붙이고 있다. 장 감독은 "외국인 투수들과 호흡은 김재현이 조금 안정적이다. 주효상은 투수 리드가 좋다. 다만 신재영과는 다소 맞지 않는 느낌"이라고 전담 포수 제도를 설명했다.

LG 역시 투수들에게 전담 포수를 붙인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올 시즌까지 데이비드 허프는 유강남, 헨리 소사는 정상호와 호흡을 맞춘다. 허프는 지난해 선발 등판한 11경기 가운데 8경기에서 유강남과 합을 맞췄고, 지난달 29일 유강남이 2군으로 내려가면서 조윤준이 허프의 전담 포수가 됐다. 소사와 정상호는 지난해 후반기부터 10차례 호흡을 맞췄고, 올 시즌엔 소사의 11차례 선발 등판 가운데 10경기를 함께 했다.

반면 이재원과 이홍구라는 주전급 포수 두 명을 갖고 있는 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전담 포수 제도에 부정적이다.

힐만 감독은 "난 전담 포수 제도를 생각하지 않는다. 투수와 포수의 호흡을 고려하기 보다는 당일 컨디션과 상대 팀과 전력 등을 고려한다. 물론 전담 포수가 긍정적인 효과도 많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투수가 포수에게 의존하게 된다. 만약 등판하는 날에 포수가 출전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투수로선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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